이건희 회장 별세..정몽구 회장 2선으로
이재용·정의선·구광모 등 젊은 오너시대

▲ 지난 1월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하는 2019 기해년 신년회'에서 이재용(왼쪽부터)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환담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25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향년 78세로 타계함에 따라 국내 4대그룹이 2·3세 경영으로 넘어가게 됐다. 특히 국내외 현장을 누비며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며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재계 1·2세들의 시대가 저물고 젊은 총수들이 전면에 나서면서 재계에는 실용·선택·집중 기조가 한층 뚜렷해질 전망이다. 

 

재계 양대 산맥 삼성·현대 3세 경영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의 손자다. 그는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이 지난 2014년 5월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뒤 그룹의 경영을 맡아 사실상의 총수 역할을 해왔다. 

 

이건희 체제에서 삼성은 안팎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다. 품질·디자인·체질 개선을 화두로 내건 이 회장이 삼성을 내수 중심 제조기업에서 수출 위주 IT기업으로 탈바꿈시키면서 매출은 40배, 시가총액은 300배 이상 늘어났다. 

 

이에 국내외에서 삼성의 위상을 사뭇 달라졌다. 스마트폰 선두기업 애플을 제치고 전세계 시장 1위에 올랐고,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20년 넘게 1위를 수성 중이다. 삼성이 올림픽 스폰서로 활동하면서 기업과 대한민국의 이름이 함께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과 삼성은 아시아 변방의 이름없는 존재에서 전세계가 주목하는 IT 선진국이 됐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의 부재에도 삼성을 흔들림없이 이끌었다. 특히 AI(인공지능)과 전장, 5G(5세대 이동통신), 바이오를 새로운 먹거리로 점찍고 133조를 투자해 2030년에는 시스템 반도체 1위에 오르겠다는 ‘반도체 비전’을 선포했다. 이 부회장의 의지에 부응하듯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퀼컴, IBM 등 대형 고객사로부터 수주를 연이어 따냈고, 5G의 경우 세계 최대 통신시장인 미국과 8조대의 계약을 체결하며 힘을 받고 있다.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이 검증된 만큼, 삼성은 지금처럼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자율경영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수년 간 그룹을 경영하며 후계구도를 다져온 만큼, 별다른 변화는 없을 전망이다. 특히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전자계열사 경영을 맡아 그룹을 이끌면서 회장직에 오를 시기를 조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계열 분리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당장 상속과 지분구조 문제로 이뤄지지 않더라도 장기적으론 창업주의 작고 이후 삼성이 한솔, CJ, 신세계 등으로 쪼개졌던 것과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삼성 울타리 안에서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다 일부는 핵심 계열사의 사업부문으로 편입됐다. 

 

현대차그룹도 최근 3세 경영의 막을 올렸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서 아들인 정의선 회장이 총수로 취임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으로부터 1996년 그룹 회장직을 넘겨받고, 1999년에는 ‘포니’ 신화를 쓴 삼촌 정세영 회장에게서 현대차 경영권까지 물려받았다. 이후 2000년 형제의 난 끝에 현대차 계열 회사를 분리·독립시키며 지금의 현대차그룹의 밑그림을 만들었다. 

 

정몽구 체제에서 분리 당시 계열사 10개, 자산 34조원였던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기준으로 계열사 54개, 234조원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0년엔 미국 포드를 제치고 세계 완성차 판매 5위에 오른 이후 현재까지 전세계 완성차 시장을 주도하는 상위 5개 브랜드로 꼽히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정의선 회장 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2년 간 경영 전면에 나선 정 회장은 지난해 3월에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대표이사로도 선임되고 올해 초 현대차 이사회 의장직까지 맡으며 조만간 회장 취임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예상보다 늦어졌지만, 수석부회장에서 재임하면서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비전을 제시하고 구체적 실행방안을 세우는 데 골몰했다.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을 목표로 삼아 자동차 50%, PAV(개인용 비행체) 30%, 로보틱스 20%로 사업을 재편 중이다. 이를 위해 C·A·S·E(연결성·자율주행·차량공유·전동화)를 중심으로 친환경·혁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산업화 역군 1·2세들 역사 속으로…젊은 오너 시대 본격화

 

1·2세대 오너들의 성장사는 한국 산업사와 맥을 같이 한다. 이들의 고민은 경영 혁신으로 이어졌고, 기술 개발과 투자는 세계 최빈국을 선진국 반열로 이끌었다. 올해를 기점으로 이들 세대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모습이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1969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1987년), 최종현 SK그룹 창업주(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2001년), 조중훈 대한항공 창업(2002년) 등이 타계한 뒤 올해 1월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 재계 1세대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미 3세 경영으로 옮겨간 그룹들도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아버지인 조양호 회장이 지난해 4월 작고하면서 그룹을 이끌고 있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사장이 핵심 계열사인 한화솔루션 대표이사로 전격 승진하며 3세 경영의 기반을 다지는 중이다. 

 

롯데그룹은 최근 신동빈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씨가 일본 롯데에 입사하면서 3세 경영 준비에 들어갔다. 신세계그룹은 이명희 회장이 아들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딸 정유경 신세계백화점 부문 총괄사장에게 지분을 증여, 경영권 승계에 들어갔다. CJ그룹은 올리브영 상장을 위한 기업공개(IPO)를 공식화하면서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부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장남, 정기선 부사장이 그룹 선박해양영업본부와 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를 겸임하고지주사 경영지원실장 등을 맡아 신사업을 이끄는 등 후계체제를 다지고 있다. 현대박화점그룹의 경우, 정지선 회장이 2007년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4세 체제로 넘어간 그룹도 있다. LG그룹은 2018년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3대 회장인 구본무 회장이 작고하면서 구광모 회장은 총수 자리에 올랐다. 구 회장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LG의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전기차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먹거리를 발굴하고 있다. 

 

GS그룹은 지난해 말 허창수 회장의 외아들인 허윤홍 GS건설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4세 경영을 구축하고 있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장남 허세홍 대표도 최근 사장으로 승진해 눈길을 끌었다. 이 밖에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이규호 코오롱인더스트리 최고운영책임자(COO) 등 경영 전면에 4세들이 나서고 있다. 

 

재계에서는 세대교체의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고객가치 증대와 기업의 체질개선을 위한 혁신적 변화를 위해서는 오너의 유연성과 추진력, 개방성이 중요하다. 젊은 오너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효성그룹,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그룹 등 오너들이 고령에 접어들면서 건강상태도 확신할 수 없기도 하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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