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역량·조직 효율성 방점 찍은 인사
신구 조화로 고객가치·미래시장 선점 의지
최측근 앞세워 핵심 사업 ‘투톱’ 구축
조대식 의장, 사상 처음으로 3번째 연임
대한상의 차기 회장 수락 염두한 듯
ESG 경영 전사화…계열사마다 전담조직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3일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SK를 미래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으로 진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고객 가치를 높여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디지털 전환에 선제적으로 나서 미래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구상을 보여준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0) 장기화 가운데, 세계 IT기업의 M&A, 5G(5세대 이동통신) 전환 가속화, 친환경 규제 강화 등과 같은 변수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룹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에 조응해야 한다는 게 최 회장의 판단이다. 소비자와 시장, 투자자에게 미래 비전과 성장 전략을 제시하고 신뢰와 공감을 쌓는 파이낸셜 스토리를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사회적 가치 실현만으로는 그룹의 체질 개선이 한계가 있는만큼, ICT·친환경 DNA를 곳곳에 심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할 전망이다.

 

이를 위해 신규 임원은 103명으로 지난해보다 소폭 감소했지만, 개인의 역량과 조직 효율성에 방점을 찍은 용인술을 택했다. 연륜이 풍부한 인물들에 그룹의 핵심사업인 ICT(정보통신기술)와 에너지를 맡겨 안정을 꾀했다. 동시에 바이오와 소재, 배터리 등 새로운 성장사업에 능력있는 인재들을 곳곳에 배치해 혁신의 속도를 높였다. 임원으로 선임된 인물의 68%가 미래 성장사업에서 나왔다. 특히 발탁된 지 만3년이 지난 40대 임원을 대표이사로 전격 기용해 신·구 조화 속에 혁신 효과를 최대화하도록 했다.

 

전문경영 강화 시사대한상의 차기 회장직 결심 굳혔나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부회장단의 확대다. 오너가 출신이 아닌 전문경영인 2명이 동시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현재 SK그룹의 부회장단은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과 사촌 동생 최창원 부회장(SK디스커버리), 박성욱 부회장(SK하이닉스) 3명이다. 이번에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유정준 SK E&S 사장을 부회장단으로 합류하면서 전문경영 체제를 강화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도 변화했다. 조대식 의장이 수장을 그대로 맡지만, 계열사의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가속화하고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직 개편이 이뤄졌다. 거버넌스위원회를 신설하고, 수펙스추구협의회 자율·책임경영지원단장과 법무지원팀장을 맡고 있는 윤진원 사장에게 맡긴다. 바이오소위원회, 인공지능(AI)소위원회, 디지털전환(DT)소위원회를 관련 위원회 아래에 놓아 외부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했다.

 

아울러 주력사업인 반도체와 통신, 에너지 분야에서의 의사결정 효율화를 꾀했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SK하이닉스 부회장을 겸임하게 된다. 박 부회장은 최 회장의 최측근 꼽히는 M&A전문가다. 하이닉스, 도시바, ADT캡스 M&A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첨단 기술경쟁이 심화되는 반도체, 통신 분야에 대한 이해가 깊어, 이번에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M&A에서도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과 협력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업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특히 메모리반도체 경쟁력 강화를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 사업을 담당하는 SK E&S는 공동 대표 체제로 재편됐다. 현재 대표를 맡고 있는 유정준 부회장에 이어 추형욱 SK() 투자1센터장이 대표로 합류했다. 추 사장은 그룹의 친환경에너지, 반도체 소재·배터리 소재 분야의 신규 사업 개발과 M&A를 주로 맡아왔다. 국내 민간 LNG 사업을 주도적으로 성장시켰고,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동박 사업에서는 세계 최대 동박 회사인 왓슨과 KCTF M&A를 추진했다.

 

SK E&S는 그룹 신성장동력인 수소사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함에 따라 핵심 계열사로 떠오르고 있다. 200MW 규모의 수상태양광 발전사업권을 확보한 데 이어, 2023년까지 수도권에 3만톤 규모 액화수소 설비를 건설하고, LNG(액화천연가스)를 활용해 블루수소도 생산할 계획이다. 기후변화와 탄소 배출 저감,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 에너지 분야에서 패러다임이 급속히 바뀌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업계 이해도가 높은 유 부회장과 차세대 에너지 사업을 이끈 추 사장간 협력을 통해 친환경 에너지 기업으로 전환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은 “ESG 문제를 선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최 회장의 일신상의 변화를 염두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최 회장은 최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차기 회장직을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은 이번 인사에서 최고경영인(CEO)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드러냈다. 처음으로 CEO 전원이 자리를 지켰고, 조 의장은 그룹 사상 처음으로 세 번째 연임을 시켰다. 더불어 부회장단을 늘리고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한 것은 물론, 최측근인 박 부회장과 유 부회장에게 신사업 관련 의사결정을 맡겼다. 여기에 핵심사업 의사결정체제를 투톱으로 바꿨다. 이 같은 결정은 결국 최 회장이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한 포석으로 분석된다.

 

ESG 경영 전사화계열사별 정체성 선명하게

 

한편, 그룹 차원에서 최 회장이 강조한 ESG 경영을 수혈한다는 전략이 엿보인다.

 

수펙스추구협의회는 기존 에너지·화학위원회와 글로벌성장위원회를 없애고 환경사업위원회를 신설했다. 환경사업위원회는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환경 관련 어젠다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위원장엔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이 선임됐다.

 

SK이노베이션은 현 기술혁신연구원을 환경과학기술원으로 확대 개편하고 화학연구소를 친환경제품솔루션센터로 이름을 바꾼다. SV(사회적가치) 담당조직은 EGS전략실로 확대 개편했다. 자회사들의 친환경 기조도 강화된다. SK에너지는 CIC(Company in Company) 체계를 도입하고, 친환경 프로젝트를 담당한다. SK종합화학은 그린 비즈 추진 그룹을, SK루브리컨츠는 그린 성장 프로젝트 그룹을 신설해 친환경 중심의 신사업을 적극 발굴한다. SK텔레콤도 ESG혁신 그룹을 통해 ICT 계열사들의 ESG 활동을 전담한다.

 

이와 함께 계열사별 정체성도 선명해질 것으로 예측된다. SK이노베이션은 친환경 에너지와 소재를 구체적으로 실행한다. SK네트웍스도 사업총괄과 경영지원본부를 신설하고 사업형 투자사로의 전환을 준비한다. SK텔레콤은 AI빅테크·마케팅기업으로 거듭하기 위해 핵심사업과 상품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IT 중간 지주사 전환을 추진한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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