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위행위‧봉사활동 조작 등 국감서 뭇매…도덕적 해이 심각

▲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


[스페셜경제=윤성균 기자]우리나라 헌혈 관련 사업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대한적십자사의 방만한 경영과 허술한 관리 실태에 대한 지적은 꾸준히 있었지만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장에서도 적십자사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3년 연속 국감장에 불려온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진땀을 빼며 연신 허리를 숙였지만, 작년 국감의 재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혈액 관리 부실과 불필요한 지로발송, 저조한 사업 실적 등 작년과 거의 동일한 지적이 반복됐다. 그만큼 적십자사의 방만 운영과 기강 해이는 뿌리가 깊다. 이들이 국민건강에 직결되는 혈액 사업을 독점할 자격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혈액은 사람한테서만 얻을 수 있는 한정된 자원이다. 그야말로 국민의 피를 뽑아서 하는 일이니만큼 철저한 관리와 공급 계획이 필요하다. 적십자사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현재의 혈액관리시스템을 개편해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감염병 발생지서 단체헌혈…헌혈 부작용도 급증
국민 피 뽑아 밑지는 장사…국민건강 안중 없어

올해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대한적십자사에 대한 질책이 쏟아졌다. 주로 임직원 비위 행위와 방만한 경영, 혈액 사업의 부실한 관리가 문제로 제기됐다.

봉사시간 조작 등 임직원 비위행위 191건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이 적십자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 따르면, 2014년 이후 적십자사의 비위행위가 191건 발생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4년 17건이던 비위행위가 2015년 41건, 2016년 48건, 2017년 39건, 2018년 34건으로 해마다 40여건 안팎의 징계조치가 취해졌다. 올해도 8월까지 12건이 발생해 총 191건의 비위행위가 적발됐다.

비위유형별로는 ▲복무규정위반 45건 ▲품위손상 41건 ▲직무태반 59건 ▲감독소홀 27건 등이며 ▲성비위 9건 ▲공금횡령 9건 ▲금품수수 3건도 발생했다.

특히 충북지사에 근무한 한 직원은 봉사활동 지원금을 빼돌려 무려 1억2천만원을 횡령했다가 적발됐다. 산하기관인 제주혈액원 직원 36명 중 13명이 다단계 판매원으로 가입해 영리업무 겸직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이 제출받은 내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봉사원의 중학생 자녀가 물리적으로 봉사를 할 수 없는 학기 중 평일 오전에 봉사를 했다는 가짜 봉사활동을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직원은 자녀의 봉사활동 후 규정시간 이상으로 입력해 경고 처분을 받기도 했다.

김광수 의원은 “도덕적으로 청렴해야 할 대한적십자와 산하 병원 임직원들의 비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며 “총체적인 위기로 보이는데 이러면 적십자사가 존폐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질타했다.

이에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본지>와의 취재에서 “이번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부분은 적십자 자체 감사를 통해 적발된 것”이라며 “자체감사 및 외부감사의 지적사항을 조치하겠다”고 전했다.

혈액관리에도 구멍 숭숭

적십자사 주된 임무라고 할 수 있는 헌혈과 혈액관리에서도 허점을 드러냈다. 미흡한 헌혈관리시스템으로 헌혈금지약물을 복용한 사람의 혈액이 채혈돼 무방비로 유통된 것이다.

장정숙 대안정치연대 의원에 따르면, 2014년부터 8월까지 헌혈금지약물 복용자의 헌혈이 총 2740건으로 집계됐다. 그중 수혈용으로 출고된 사례는 163건, 293유닛에 달했다.

이는 적십자사가 법무부 소속 교도소, 구치소, 보호소 등 교정시설에서 처방되는 약물정보를 전혀 공유받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무분별하게 이들 기관에서 단체헌혈을 받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적십자사가 혈액부족을 핑계로 안전성을 담보하지 않고 무분별한 단체헌혈을 실시한 정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적십자사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법정감염병 발생지역에서 총 69건의 단체헌혈이 있었다. 감염병별로는 볼거리(유행성 이하선염)가 22건으로 가장 많았고, 결핵 21건, 수두 9건 순이었다. 더욱이 수혈이 주 감염경로로 알려진 A형 간염도 3건이나 있었다.

이에 따라 헌혈에 의한 부작용 건수도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헌혈 부작용 건수는 2014년 2800건에서 2018년 7299건으로 약 2.6배 급증했다. 올해 8월 기준으로 이미 5261건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피멍을 유발하는 피하출혈이 3885건으로 가장 많았고, 100만원 이상의 치료비가 지급된 경우도 50건이 넘었다.

도 넘은 방만 경영…국민건강 안중 없어

적십자사의 방만한 경영도 고쳐지지 않았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적십자사 혈액백 담합 의혹이 제기됐는데 올해 7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녹십자엠에스와 태창산업에 과징금 77억원을 부과하면서 의혹이 현실이 됐다”고 꼬집었다.

녹십자엠에스와 태창산업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3차례 진행된 적십자사의 혈액백 공동구매 단가 입찰에서 투찰 가격을 담합했다가 발각됐다. 두 회사의 가격 담합으로 적십자는 최대 325억원가량 손해를 입었지만, 이를 알고도 방조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면역검사기기 교체를 위한 입찰이 수년간 유찰된 사실도 부실 경영 사례로 지목됐다. 면역검사장비는 간염, 에이즈 등 심각한 질병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민감한 장비인데, 적십자사가 현재 보유한 장비는 대부분 2006, 2007년산으로 10년이 넘었다. 2016년 교체계획을 세운 뒤 3년 동안 12차례 입찰 공고를 냈지만 전부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적십자사는 일부 기업에 특혜를 준 사실이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년 동안 12차례 입찰 공고를 냈고 다 실패했다. 새로운 기기, 신기술의 성능이 부적합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노후한 기존 장비로 혈액 안전성을 검사하는 건 더 믿을 수 없다”면서 “시중에서 면역검사장비가 단종될 수 있다는 소문까지 돌 만큼 이번 사업에 대한 불신이 크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혈액 관리 독과점

면역진단시스템은 특히 국민건강에 직결되는 만큼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적십자사가 국책사업으로 개발된 국산 장비를 홀대하는 등 입찰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 적십자사가 혈액사업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사용해서, 또 국민건강을 담보로 갑질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기동민 의원은 “적십자사가 혈액사업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 같은 논란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 사업을 굳이 고집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복지부 혈액관리위원회로 사업을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처럼 적십자사가 혈액 관련 사업을 독점한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도 유럽처럼 정부가 혈액 관리 시스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줄곧 있었지만, 그때마다 적십자사는 노조까지 동원해 극렬히 반대해 왔다.

이와 관련해 박경서 회장은 “헌혈과 혈액과 관련된 모든 사업을 적십자사에 일원화하고 감독하는 것은 국가가 하면 된다”며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이에 대해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본지>와의 취재에서 “대다수의 OECD 국가는 적십자사를 포함한 공공기관 또는 국가에서 혈액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며 “대한적십자사에서 국가의 위탁을 받아 혈액사업을 수행하는 것을 ‘독점’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도 외국과 같은 강력한 국가관리가 필요하고 하나로 통합된 정부조직의 컨트롤타워를 갖추는 게 필요하다”며 정부 관리 필요성을 인정했다.

 

다만 그 방식에서는 여전히 대한적십자사의 혈액사업 일원화를 주장하고, 결과적으로 기존 입장과는 큰 차이가 없다는 한계를 보였다.

 

스페셜경제 / 윤성균 기자 friendtolife@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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