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무능·실책 비판하면 친일·매국?…집권세력의 선동
[스페셜경제 = 김영일 기자]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지리적으론 가깝지만, 우리에겐 임진왜란은 물론 식민지배라는 역사의 상처 및 고통의 후유증이 상당한 탓에 정서적으로 먼 나라일 수밖에 없는 게 일본인데, 문재인 정권 들어서는 더욱 먼 나라가 돼버렸다.
문재인 정권은 피해자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일 위안부 합의 결과물인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결정했고, 지난해 10월엔 일본 전범기업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졌다.
문재인 정부와 사법부의 이 같은 결정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국제적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나라와 나라 간의 관계도 성립되지 않는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 있는 대응을 바란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고, 급기야 지난 4일에는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수출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까지 단행했다.
안 그래도 문재인 정권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수출·설비투자 악화, 실업자 수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한국경제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에 일본의 경제보복까지 더해지는 바람에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은 아베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며, 비판하고, 또 비판하는데, 그 뿐이다. 반일감정을 부추기며 아베 정부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내놓는 데는 너나 할 것 없이 열성적인 집권세력이지만,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공감을 사는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게 집권세력의 현주소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아베도 아베지만,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냉정하고 현실적 해법 모색은 없고 그저 반일감정을 부추겨 자신들의 외교무능과 실책을 덮는데 안간힘을 쓰는 문재인 정권의 ‘관제 민족주의’에 대해 짚어봤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일본에 대한 감정이 썩 좋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일본 제품을 이용하기도 하고, 여행도 가며, 때로는 일본인과 우정 또는 사랑을 나누기도 하지만 마음 속 저 깊은 곳엔 반일감정이 자리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임진왜란과 식민지배 등 일본이 우리에게 저지른 만행에 대한 상처 및 고통의 후유증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이 그동안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유감 표명 수준의 사과가 아닌 진정성이 담긴 사과, 이에 따른 마음에서 우러나온 보상은 아니었다는 게 대다수 국민들의 공통된 시각이자 감정일 것이다.
그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일제 강제징용 문제 등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우리 국민들은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촉구하기도 한다.
‘국민들의 이런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서였을까’ 여부는 따져볼 문제지만, 아무튼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정권에서 합의했던 한·일 위안부 협의의 결과물인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결정했고,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문재인 정권의 결정과 판결을 애국적 또는 민족주의 관점에서 보면 진정성 있는 사과와 보상이 없는 일본을 겨냥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韓 화이트리스트 제외하겠다는 日…‘전례 없는 비상상황’
다만, 어떠한 일이든 보는 이에 따라 시각차가 있고,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듯 외교적 관점에서 보면 상대국인 일본과의 충돌이 우려될 수밖에 없는 결정과 판결이었다.
문재인 정권의 결정과 판결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국제적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나라와 나라 간의 관계도 성립되지 않는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 있는 대응을 바란다’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급기야 지난 4일에는 일본 의존도가 높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리지스트·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의 한국 수출규제를 강화했다.
일본 기업들이 해당 품목을 한국에 수출 할 때마다 매번 허가 심사를 받도록 한 것이다. 기존엔 일정 기단 동안 한번만 수출 허가를 받으면 됐다.
일본 정부가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경우 우리 기업 입장에선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입길이 막힘에 따라 부랴부랴 국산화·수입선 다변화를 꾀하고 있다.
국내 및 중국산 소재에 대한 테스트를 마친 뒤 실제 제조공정에 투입했을 때 일본산 소재 대비 수율(생산품 대비 완벽한 제품의 비율)저하가 없다면 다행이겠지만, 반대로 불량품 대량 발생 등 품질저하가 야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례 없는 비상상황’이라고 인정했을 정도로 한국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는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베 정부는 이르면 7월말 8월초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 우대국)’에서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화학약품 ▶공작기계 ▶탄소섬유 등이 추가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고, 나아가 ▶한일 은행 간 크레딧 라인 차단 ▶일본이 보유한 한국 기업 주식에 대한 의결권 행사 ▶한국 투자계획 철회 ▶한국에 들어온 일본 자금 회수 등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타격은 불가피해진다.
대화로 풀고자 하는데…대답 없는 아베?
아베 정부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방침과 관련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대응책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 주까지는 1차적으로(수출규제 품목이)정리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그러면서 ▶단기적으로 기업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에 미리 대비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포함해 일본의 부당성에 대한 국제사회 공조 노력 ▶부품·소재 국산화 지원대책 강구 등 원론적인 대응책을 내놓는데 그쳤다.
‘단기적 대응책은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당연히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내용을 일일이 말씀드리면 일본에 보고하는 형태가 되는 제약이 있다는 걸 이해해 달라”며 구체적 언급을 삼갔지만, 실상은 효과적인 단기 대응책이 없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는 이런 말도 했다.
“일본의 수출제한 조치는 경제 외적인 징용자 배상 문제 관련 대법원 판결이 발단이었다”고.
이낙연 국무총리의 대일 특사 여부와 관련해선 “우리 측과 일본이 만나 협의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열린 자세로 계속 협의를 제안’하고 있다”면서 “다만, 일본 측에서 ‘호응’이 없어서 진전이 안 되고 있다. 테이블에 앉을 자세가 돼 있다는 점을 (일본 측에)여러 차례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홍 부총리의 설명대로라면 문재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촉발된 이번 한일 갈등을 대화로 풀고자 하는데, 아베 정부는 이에 대해 호응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부터 수출규제까지…손 놓고 있었던 文 정권
한일 갈등을 대화로 풀고자 하는 문재인 정부의 협의 제안에 왜 아베 정부는 호응을 하지 않는 것일까.
협의를 거부하고 있는 아베 정부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선 먼저, 이번 한일 갈등의 발단이 된 한국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판결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정권 당시인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맺어지는데, 일본은 무상 3억달러와 차관 2억달러 등 총 5억 달러의 자본을 한국에 제공한다.
당시 청구권 협정으로 제공된 자금에 강제징용 피해 배상이 포함됐다는 게 일본의 주장인 반면, 국가가 맺은 청구권 협정과는 별개로 개인 배상 청구가 가능하다는 게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주장으로 2005년 일본 전범기업(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1심과 2심에선 소송을 제기한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졌으나, 2012년 대법원은 “손해배상 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사건을 2심 법원으로 돌려보냈고,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일본 기업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일본 기업은 이에 불복했으나, 지난해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은 한일 협정에도 불구하고 소멸하지 않았다’며 배상 판결을 내렸다.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아베 정부는 지난 1월 외교협의를 요청했다.
한일청구권협정 3조 1항에 따르면 양국 간 분쟁은 외교 경로를 통해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일 양국이 외교협의를 통해서도 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제3국이 참여하는 중재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아베 정부 측의 외교협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아베 정부는 지난 5월 다음 단계인 제3국이 참여하는 중재위 구성을 요청했으나, 문재인 정부는 지난 6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며 사실상 중재위 구성을 거부했다.
그러자 아베 정부는 지난달 28~29일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끝난 직후인 지난달 30일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를 예고했고, 실제로 지난 4일 수출규제 조치가 실행됐다.
무능한 외교력과 실책이 불러온 한·일 갈등
정리하자면, 강제징용 판결→아베 정부 한일청구권협정대로 외교협의 요청→이에 응하지 않은 문재인 정부→아베 정부 제3국이 참여하는 중재위 구성 요청→문재인 정부 거부→수출규제 카드 꺼내든 아베 정부→발등에 불 떨어지자 그제 서야 협의 제안하는 문재인 정부.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베 정부 입장에선 문재인 정부의 협의 제안에 쉽사리 호응해 줄 이유가 없는 셈이다.
특히나 아베 정부가 일본 기업의 피해를 일정부분 감수하더라도 한국과의 치킨게임을 각오했다면, 나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사전조율까지 마쳤다면 적정선에서 타협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결국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이후 지난 8개월 동안 외교적으로 풀지 않고 방치했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격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9월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한·미·일 정상 오찬에서 “미국은 우리의 동맹이지만 일본은 우리의 동맹이 아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아베 정부 입장에선 일본은 동맹이 아니라는 문재인 정부를 굳이 수출 우대국으로 대우해줄 이유가 없는 셈이다.
이쯤 되면 한국을 겨냥한 수출규제는 물론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는 아베 정부의 방침에 대해, 과연 일본만 비난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인지는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외교협의 및 한·일·제3국 중재위 구성 거부, 나아가 면전에서 대놓고 일본은 동맹이 아니라고 한 문재인 정부의 무능한 외교력과 실책이 상황을 이 지경까지 만든 것은 아닐는지.
반일감정 선동 ‘관제 민족주의’…과거에 함몰된 민족에게도 미래는 없다!
아베 정부의 이번 경제보복 조치로 인해 우리 국민들 사이에선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고 있다. 국민들의 자발적 ‘반일운동’은 이번 일본발(發) 경제위기에 돌파구를 마련할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자발적 반일운동이 아닌 외교무능과 실책을 덮기 위한 집권세력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언급했으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학농민운동을 소재로 한 노래 ‘죽창가’를 올렸고,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국채보상운동’과 ‘외환위기 금 모으기’ 운동을 거론했다. 집권여당의 일본경제침략대책 특별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재성 의원은 ‘항일 의병’을 운운하기도 했다.
집권세력이 앞장서서 반일감정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읽혀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지난 8개월 동안 아베 정부가 한국을 겨냥한 치밀한 경제보복을 준비하고 있을 동안 이를 손 놓고 방치하고 있었던 문재인 정권의 외교무능과 실책에 대해 비판이라도 할라치면 집권세력은 앞장서서 친일이니, 매국이니 등의 낙인을 찍고 있다.
그렇다면 집권세력이 친일이니, 매국이니 낙인을 찍을 자격이 있는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은 오사카 성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했고, 과거 제국주의를 찬양했던 초세 노무라만사이를 계승한 노무라만사이의 연극을 관람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으며, 해외 이주 논란에 휩싸인 문 대통령의 딸 문다혜 씨는 일본 우익 단체 인사들이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고쿠시칸 대학에서 유학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순신 장군을 입에 담았던 대한민국 대통령의 실상이 이렇다.
이쯤 되면 친일·매국 운운할 자격도 없는 집권세력이 부추기고 있는 반일감정은 선동의 일환인 ‘관제 민족주의’로 정권의 외교무능과 실책을 덮기 위한 술수가 아닌가 싶다.
집권세력의 관제 민족주의 선동으로 국민들이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로 인해 대한민국이 망가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명언이다. 다만, 역사를 잊어서도 안 돼지만 과거에 함몰돼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민족에게도 미래는 없을 것이다.
<사진제공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영일 기자 rare0127@speconom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