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무일 검찰총장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지난달 29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당이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 사안과 관련, 문무일 검찰총장이 직접 이를 반대입장을 피력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조응천 의원도 이를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문 총장은 1일 대검찰청 대변인실로 전달한 입장자료에서 “현재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법률안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 형사사법절차는 반드시 민주적 원리에 의해 작동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에서 진행되는 형사사법제도 논의를 지켜보며 검찰총장으로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면서 “국회에서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논의를 진행해 국민 기본권이 더욱 보호되는 진전이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 등 여야4당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은 형사소송법·검찰청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2개 법안으로, 검찰의 전면적인 수사지휘권 폐지를 핵심으로 하고 있다.

해당 법률 개정안에 따르면 경찰은 범죄에 대한 1차적 수사권과 종결권을 갖게 되며, 검찰은 기소권을 보유한 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패·경제·선거·방위사업범죄 △경찰공무원의 직무 관련 범죄 △검찰로 송치된 범죄와 관련한 위증, 허위감정·통역·번역, 증거인멸·친족특례, 무고 등의 범죄에 대한 직접수사권을 갖는다.

이에 대한 대응조치로 개정안은 검찰이 경찰의 수사에 대한 보완수사 및 시정조치 요구권 등 부분적인 사법통제 권한을 갖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지휘·감독 대상에서 일반사법경찰관리가 제외됨에 따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검찰조직의 약화는 필연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예정된 수순?…2017년 검찰총장 청문회서 “수사권·기소권, 성질상 분리 못해” 주장

문 총장은 이 같은 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현재 경찰이 가진 막대한 정보력에 수사권까지 더해지면 경찰의 힘이 필요 이상으로 강해질 수 있음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특정 기관에 통제받지 않는 1차 수사권과 국가정보권이 결합된 독점적 권능을 부여하고 있다”며 “올바른 형사사법 개혁을 바라는 입장에서 이러한 방향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런 문 총장의 반대의견이 예정된 수순이었다고도 평가한다.

앞서 문 총장는 2017년 7월 24일 행해진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수사권 조정은 기관 간 권한배분의 문제가 아닌 범죄로부터 국민과 국가공동체를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하는 문제라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검찰에 기소권만 부여하자’는 견해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는 “판사가 재판을 하지 않고 선고할 수 없듯 검사가 수사를 하지 않고 기소여부를 결정할 수 없다”며 “수사와 기소는 성질상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OECD국가 등 검찰제도를 두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검찰이 기소기능과 함께 수사기능도 보유하고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경찰수사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 부여할 수 있는지의 관점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가 검찰개혁의 필요성은 분명히 언급하고 조정 자체에는 찬성의견을 표했던 점과 인사청문회 당시의 발언을 고려하면, 문 총장이 바라던 검찰개혁의 방향은 현재 발의된 ‘수사권과 기소권의 일부 분리’가 아닌 ‘경찰에도 직접적 내지 독자적 수사권을 일부 부여’하는 방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


정보기관 + 수사기관? 경찰국가화 될 수 있어…“당해봐서 안다”

한편 민주당 조응천 의원 또한 1일 공개적으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인 조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에서 수사권을 분리하기 위해 시작된 검경 수사권조정의 당초 취지와는 정반대로 결론지어진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에는 찬성한다고 밝혔다.

그는 “침묵하고 있다가 법사위로 회부된 후에 새로운 주장을 꺼내면 자칫 판을 깨자는 것으로 오해받을 소지도 있어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본격 논의 이전에 제 주장을 말씀드린다”면서도 “당론이 정해진다면 당연히 따를 것이고 법사위 심의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사보임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 말했다.

먼저 조 의원은 “당초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수사 개시 및 종결권, 기소편의주의, 형 집행권을 한 손에 움켜쥔 검찰권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수사권 조정의 당초 취지는 온데간데 없고 수사 총량만 늘려놓은 꼴”이라 전했다.

이어 “1차적 수사권 및 수사종결권을 갖게 돼 일부 사건을 제외하고는 불송치할 수 있게 됐고, 내사로만 그치는 사건에 대해 외부에서는 전혀 알 수 없다”면서 “경찰이 국내 유일 정보기관 역할을 하는데 통제받지 않는 1차 수사기관 권한까지 얻게 되어 자칫 정보와 내사 또는 수사가 호환돼 시너지 효과를 낼 경우 경찰국가화의 염려를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조 의원이 바라보는 검경 수사권의 바람직한 조정 방향은 △1차 수사권을 특정 수사기관에 부여하고 중대범죄 아닌 일반사건 수사관할을 자치경찰로 대폭 이관 △경찰에 1차 수사권을 줄 경우, 정보 업무는 경찰이 아닌 다른 기관으로 분리 △검찰의 1차 수사권을 박탈하고 경찰의 수사권 남용 등 방지를 위한 통제권한 부여 및 송치사건에 대한 보완적 2차 수사권과 소추권, 공소유지권 부여 등이다.

국정원이 국내정보 업무를 사실상 포기하며 유일한 정보기관 역할을 하고 있는 경찰에 1차적 수사권까지 부여되면 권한이 너무 커질 것이라는 우려는 부분적이나마 문 총장의 주장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 의원이 주장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 방향은 문 총장의 주장과는 또 다른 방향이다. 문 총장은 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에는 반대한 반면, 조 의원은 분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이다.

조 의원은 “저는 피의자·피고인으로서 ‘답정너’식 수사와 기소의 객체가 되어 본 경험이 있기에 수사와 기소를 같은 기관에서 담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달은 바가 있다”며 “국정원장 특보로서 국정원에 근무하며 수사와 정보가 한 기관에서 이뤄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몸소 체득한 바 있다”고 전했다.



당황스러운 청와대와 범여권…패스트트랙 모멘텀, 시작부터 제동걸리나

갖은 진통 끝에 지정된 패스트트랙으로부터 불과 하루 만에 나온 내부 발언에 민주당이나 청와대로서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청와대는 아직 국회에서 논의 중인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며 “공식입장이 없다”고 밝혔지만 내부적으로는 문 총장의 반발이 당황스럽다는 기류가 흘렀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문 총장이 반대의견을 가질 수 있다고 보기는 했지만 이처럼 갑작스레 입장을 낼 것이라 생각하진 못했다”고 전하는가 하면, 또 다른 관계자는 “패스트트랙 지정은 논의의 시작일 뿐 검찰의 입장도 충분히 국회에 전달할 수 있는데 왜 벌써 반대 목소리를 강하게 내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비단 문 총장이나 조 의원 뿐 아니라 금태섭 의원도 공수처 설치법에 대해 “검찰 개혁에 도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갈 위험이 크다”고 밝히는 등 소신발언이 계속되는 것도 청와대나 민주당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정의당과 평화당도 반대의 목소리에 대한 지적을 이어갔다.

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문 총장과 조응천·금태섭 의원의 발언에 대해 “앞으로 사개특위에서 패스트트랙을 심의 조정하며 충분히 반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근본적으로 파기하는 해석은 불필요하다”며 “서로 의견을 조정하며 반드시 성공시키는 그런 국회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문 총장의 발언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대표는 “국회의 정당한 입법절차에 대해 정부 관료가 반기를 드는 것이야말로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 원리를 망각한 행동”이라며 “이 개념 없는 언행은 기득권을 포기 못하는 검찰 권력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힐난했다.

이어 “해당 법안은 법무부와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수사권 조정 합의안에 다른 것”이라며 “법무부 장관 지휘를 받는 검찰총장의 이러한 행동은 사실상의 항명이다. 확대된 경찰권한의 민주적 통제 문제는 향후 국회 논의를 통해 해결할 문제지 항명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일”이라 덧붙였다.

이 같은 우려에는 여야4당이 어렵게 마련한 검찰개혁 모멘텀이 검찰 총장을 위시한 검사 출신 인사들의 공개적인 반발로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제공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