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개혁이냐”…도리어 개악된 선거법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예산부수법안과 공수처법, 유아교육법 개정안 등을 안건으로 제372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가 열리기 전 생각에 잠겨 있다. 2019.12.23.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이하 ‘협의체’)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단일안에 합의하고 27일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지 242일 만이다.

그동안 협의체는 석패율제와 연동의석 적용 상한(캡) 문제로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대체로 상부상조 관계를 유지해오던 민주당과 정의당은 각축을 벌이다 지난 23일 군소야당이 석패율제를 포기하고 연동 캡 또한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에만 적용하도록 했다. 

이는 비례대표 75석 전체에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던 원안에서 한참 후퇴한 것이다. 심지어 지역구 대 비례대표 비율도 현행(253대 47)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원안에 비해 정작 변한 것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처리는 민주당이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협의체가 제출한 수정안을 기초로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이번 선거법 개정안의 최대 수혜자는 정의당이 아닌 민주당이다. 또다른 쟁점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역시 백혜련 의원 원안이 사실상 거의 그대로 단일안으로 채택됐고, 한국당을 제외한 야당의 협력 아래 예산안까지 통과시켰으니 민주당으로서는 일석삼조인 셈이다. 

당초 선거법 개정의 목적은 비례성과 대표성의 확보였다. 예를 들어 40%를 얻어 당선자를 배출한 지역구에서 나머지 60%는 사표가 되어 버리는데 과연 이 40%의 지지가 나머지 60%까지 대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 후보자 개인이 아닌 정당에 투표하는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 비례성과 대표성을 동시에 확보하자는 것이 협의체가 강조하던 선거법 개정의 취지였다.

그러나 이러한 취지가 무색하도록 민주당과 한국당은 거대 양당제를 계속 이어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당 원내지도부는 선거법 개정안 상정에 맞서 ‘비례한국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한국당이 비례정당을 만들면 민주당 역시 맞대응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양당이 비례정당을 들고 나오면 이번 선거법은 개혁이 아닌 개악으로 퇴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진다.

이번 주 스페셜경제는 개정된 선거법의 통과가 내년 총선에 과연 어떤 식으로 다가올 것인지를 양당의 비례정당 전략을 중심으로 전망해봤다.

결국 통과된 선거개혁안…패트 지정 242일, 부의 31일만


지난 27일 선거법이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본회의에 부의된 지 31일만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23일 이를 본회의에 상정했지만, 이에 결사반대하던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신청하며 임시국회 회기가 종료되던 25일까지 표결에 이르진 못했다.

국회법에 따라 필리버스터로 지정된 안건은 해당 회기 내에서만 유효하다. 민주당은 직전 임시국회에서 한국당의 필리버스터를 소진시키고 곧바로 다음 임시국회를 열어 단계적으로 패스트트랙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전략을 세워 26일 새 임시회를 열고 그 다음날 선거법을 통과시켰다.

이번 선거법 개정안의 핵심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이었지만 비례대표 의석이 현행과 차이가 없는데다가 적용 의석마저 30석에 연동률 50%로 한정되며 그 의미가 많이 축소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국당을 제외한 야당은 개정안의 내용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일단 개혁의 첫걸음을 내딛는데 의미를 둔다는 입장이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23일 “선거제 개혁의 초심과 취지로부터 너무 멀리 왔고 비례의석 하나 늘리지 못하는 미흡한 안을 내놓게 된 데 대해 국민들께 송구스럽다”며 “그럼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첫 발이라도 떼는 것이 중요하다는 국민의 뜻을 받들겠다”고 말했다.

목표 :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연동형 비례제 도입 논의는 민주당과 한국당 등 거대 양당이 무의미한 정쟁만 반복한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비롯됐다. 이는 한 지역구당 한 명만 선출하고 나머지는 사표가 되는 소선거구제에서 시작된 문제로,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거대정당을 제외한 정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당초 협의체 내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던 석패율제는 비록 일부지만 한 선거구에서 두 명의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선거구제의 성격을 갖기도 했다. 군소야당이 궁극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를 통한 다당제를 유도해 거대 양당제의 축소를 통한 참여정치의 활성화를 목표로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산식에 따르면 의석수는 정당 득표율에 연동되는 만큼 정당 득표율이 높을수록 비례의석 확보에 유리하다. 이는 특히 지역구 의석수(2석)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통상 6~10%)을 확보하고 있던 정의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크다. 실제 계산 결과를 보더라도 약 6배의 지지율 차이를 갖는 민주당과 정의당의 연동의석 30석의 차이는 각 12석, 10석으로 큰 차이가 없지만, 현행 선거법대로 계산되는 17석은 민주당이 8석, 정의당이 1석을 가지며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민주·정의 6·7석 늘 때 한국 2석 감소…결국 비례정당 선포

스페셜경제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관계자 및 여야 관계자들에게 자문한 결과를 바탕으로 수정안의 산식을 따라 예상 획득 의석수를 계산해봤다. 

이는 리얼미터가 23일 발표한 정당지지율(민주당 39.9%, 한국당 30.9%, 정의당 6.6%, 바른미래당 4.8%)을 득표율로 간주하고, 차기 총선에서 각 정당들이 현 지역구 의석을 그대로 이어갈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3% 미만 지지율을 얻은 정당은 봉쇄조항(비례의석확보 최저 득표율)에 걸리는 것으로 간주해 포함시키지 않았다.

(※조사의뢰 YTN. 조사기간 16~20일. 조사대상 2,508명. 표본오차 95%신뢰수준에 ±2.0%p. 자세한 결과는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편 4개 정당 지지율의 총합이 82.2%인 관계로 이를 100% 기준으로 환산했다. 이에 따른 정당 득표율은 민주당 48.54%, 한국당 37.59%, 바른미래당 5.84%, 정의당 8.03%다.

수정안의 산식을 토대로 이를 계산해보면 결과는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먼저 비례대표 의석 47석은 30석과 17석으로 구분해 계산한다. 30석은 연동형 캡을 씌운 고유의 산식에 따르지만, 17석은 현행 선거법을 따른다.

 

▲ 여야 4+1(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23일 합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토대로 21대 총선 의석변화를 비례대표 중심으로 계산한 결과. (그래픽=강민철 디자인 팀장)

먼저 민주당은 비례대표 의석에서 20석을 얻으며 총 135석(+6석)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정의당은 7석 증가한 13석을 차지하며 당초 목표로 하던 교섭단체 구성까지는 다소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비례대표 의석이 감소(75석→50석→47석)하고 연동형 캡(30석)이 도입된 영향이 크다.

한국당은 비례대표 의석에서 2석이 감소하며 총 106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됐다.

바른미래당은 비례대표 2석 획득에 그치며 가장 큰 손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유승민계가 준비 중인 ‘새로운보수당(새보수당)’ 소속 의원들의 당적이 여전히 바른미래당인 관계로 함께 포함된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새보수당은 이미 탈당 및 신당창당을 예고한 상태고, 최근 안철수 전 의원의 바른미래당 합류 가능성도 거론되는 등 당내 사정이 안정되면 새보수당과 함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세부적으로 연동의석(30석)에서 민주당은 11석, 한국당은 8석, 바른미래당 1석, 정의당 10석을 가져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선거법을 따르는 17석 중에서는 민주당이 8석, 한국당 7석, 바른미래당과 정의당이 각각 1석으로 계산됐다.

이에 따라 각 정당이 획득하는 총 의석은 ▲민주당 135석(+6석, 지역116석·비례19석) ▲한국당 106석(-2석, 91석·15석) ▲바른미래당 17석(-12석, 15석·2석) ▲정의당 13석(+7석, 2석·11석) 등으로 나타난다.

이는 한국당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결과다. 의석수가 부족해 이번 패스트트랙 처리 과정에서도 필리버스터 외에 저지할 수단이 없는 가운데, 실제 21대 총선에서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경우 민주당(135석)·정의당(13석) 연합만으로도 과반에 근접하는 의석수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당 지도부는 비례정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비례한국당 나오면 한국 연동의석 73% 획득…총 12석 증가

지난 19일 의원총회에서 한국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연동형 선거제를 밀어붙인다면 우리는 ‘비례한국당’을 만들 수밖에 없음을 미리 말씀드린다”고 했다. 선거법이 본회의에 상정돼 필리버스터가 진행 중이던 24일 김재원 정책위의장도 “법이 통과되면 곧바로 비례대표 전담 정당을 결성할 것임을 알려드린다”고 엄포를 놨다.

이는 신규 영입인재 등 지역 기반이 약한 인사들을 비례정당에 모아 비례대표로 출마시키고, 지역 기반이 있고 인지도가 있는 중진급 정치인들은 기성정당에 남아 지역구에 출마한 뒤 총선 직후 합당을 통해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비례정당 창당은 절차상으로 문제가 없다. 별개의 정당을 창당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20일 스페셜경제와의 통화에서 “독자적 당헌·당규를 갖는 전혀 다른 정당”이라며 “어떤 정당이 비례대표만 노리든 지역구만 노리든 법적으로 문제될 건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여기에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연동의석(30석)을 산출시 지역구 의석수를 빼는 과정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지역구(후보자투표)와 비례대표(정당투표)에 각각 한 표 씩을 행사한다. 문제는 연동의석 계산방식인데, 연동의석수는 먼저 의원정수(300)에서 ‘의석할당정당(득표율 3% 이상 혹은 지역구 5석 이상 정당)이 추천하지 않은 지역구국회의원당선인수’(위 예시의 경우 평화당+우리공화당+민중당+무소속)를 제한다. 276명이 이에 해당된다. 여기에 정당 득표율을 적용한 뒤 해당 정당의 지역구 의석을 뺀다.

따라서 득표율이 높고 지역구 의석이 얼마 없는 경우 연동의석을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올라간다. 극단적으로 한국당만 비례정당을 구성해 정당득표율(보정값 37.59%)이 모두 비례정당으로 쏠리고, 비례정당은 지역구를 갖지 않는다고 가정할 경우 연동의석(30석)은 민주당 4석(-8석), 한국당 22석(+14석), 바른미래당 0석, 정의당 4석(-6석)으로 한국당 지분이 크게 오른다.

▲ 여야 4+1(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23일 합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토대로 자유한국당만 비례정당을 구성했을 때 21대 총선 의석변화를 계산한 결과. (그래픽=강민철 디자인 팀장)

민주당의 한 연구위원은 “민주당이 비례당을 안 만들면 한국당이 거의 반을 쓸어간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같은 내용은 24일 이원욱 원내수석부대표가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알려졌다.

▲ 이원욱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예산부수법안과 공수처법, 유아교육법 개정안 등을 안건으로 열린 본회의에서 한 연구위원으로부터 석패율제 관련 문제점을 보고받고 있다. 2019.12.24. (사진=뉴시스)

비례민주당 출현 시 양당 딜레마…의석 격차 ‘더 커질 수도’

이런 이유로 민주당 역시 ‘비례민주당’을 맞불전략으로 심각하게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 의원은 23일 스페셜경제와의 통화에서 “(한국당이)비례정당을 만들면 비례의석과 지역구까지 다 먹힐 수밖에 없다. 우리도 (비례정당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한국당에 맞서 비례정당을 구성할 경우 국회는 오히려 양당제가 극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정의당 연동의석은 2석에 그치고 총 의석수는 1석 감소할 것으로 계산됐다.

비례민주당과 비례한국당 두 개의 페이퍼정당이 등장할 경우의 예상 연동의석 변화는 다음과 같다.

▲ 여야 4+1(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23일 합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토대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비례정당을 구성했을 때 21대 총선 의석변화를 계산한 결과. (그래픽=강민철 디자인 팀장)

즉 민주당과 한국당 양당이 연동의석 30석 중 28석을 가져가고 그 결과 군소야당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는 것이다. 이는 당초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 취지를 역행시키는 결과로 도리어 개악이라는 비판을 모면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비례정당 구성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말을 아끼면서도 한국당이 실제 비례정당을 창당할 경우 맞대응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한국당에게 있어서도 민주당의 맞불조치는 난립하는 정당이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의석차가 현재(21석 차)보다 더욱 벌어지는데다(개정안대로 갈 경우 29석 차, 비례정당 두 개 등장할 시 30석 차) 민주당이 총 140석을 가져가며 단독으로 과반에 근접한다는 점은 불안요소다. 과반의석은 본회의 의결정족수다.

이에 한국당은 비례정당 출연을 공식화하면서도 미리 비례민주당 견제에 나서는 모습이다.

23일부터 진행된 선거법 필리버스터의 세 번째 토론 주자로 나선 권성동 의원은 비례한국당 창당을 재차 거론하며 “민주당은 이 제도를 개혁이라고, 민주주의의 진일보라고 했으니 절대로 비례민주당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며 “(비례민주당을) 만들면 정당을 해체하라”고 경고했다.

심재철 원내대표도 25일 “민주당이 준연동형(비례대표제)을 밀어붙이면서 ‘비례민주당’ 운운하고 있으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며 “비례민주당을 만들면 심·손·정·박(심상정·손학규·정동영·박지원)부터 민주당을 맹비난할 것”이라 말했다.

‘비례정당, 정말 가능할까’ 회의론 솔솔

창당 전 : 홍보불가 문제

한편으로는 비례정당 전략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에 의구심을 갖는 시각도 있다.

먼저 ‘비례의석 보전’이라는 목적의 이 전략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비례정당이 기성정당의 득표율을 온전히 얻고 지역구 의원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대전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선거법에 따라 후보자 등이 다른 정당이나 후보자를 위해 벌이는 선거운동은 금지된다.

즉 기성정당 차원에서 비례정당에 대한 홍보가 불가능한 관계로 이를 인식하지 못한 유권자들 일부가 비례정당이 아닌 다른 보수정당으로 표를 줄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경우 표가 갈리며 비례정당이 봉쇄조항(3%)에 걸릴 가능성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다.

게다가 ‘비례한국당’이란 당명은 이미 선관위 창당준비위원회 목록에 올라 있어 한국당은 연대를 추진하거나 한 눈에 봐도 자유한국당임을 알 수 있는 새로운 비례정당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김재원 정책위의장은 24일 긴급기자회견 당시 “(비례정당은)우리가 선거운동을 할 필요가 없는 정당이다. 우리 당 지지자들이 어디에 투표해야 하는지 그 당의 이름을 알면 되는 것”이라 면서도 “‘비례한국당’은 다른 분이 사용하고 있다. 그 분과 정식으로 접촉해보겠다”고 말했다.

비례한국당 최인식 창준위원장은 24일 스페셜경제와의 통화에서 “(한국당으로부터) 제안이 온 뒤에 생각할 문제”라며 “아직은 말 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했다.

창당 후 : 반란, ‘꼼수정당’

실제 비례정당을 창당한 뒤에도 문제는 남아 있다. 위성정당이라 해도 일단 법적으로는 별개의 정당인만큼, 선관위에 정식 등록만 이뤄진다면 절차상의 문제는 없다.

그러나 비례정당은 기성정당과 공식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도 당 윤리위원회나 당무감사위원회 등에 회부될 걱정이 없다. 정무적으로 얽혀 있을 뿐, 비례정당은 독자적 당헌·당규에 묶이는 관계로 다른 행보를 펼치는 ‘반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비해 한국당은 황교안 대표가 공천을 끝내고 비례정당으로 옮겨 당 대표를 맡는 방안까지 고려중이지만, 이미 독자적 계획을 품고 있는 인사들 위주로 비례정당이 구성될 경우 당헌·당규에 따라 선출될 당대표에 한국당이 개입할 명분은 없다.

이미 홍준표 전 대표와 이재오 전 의원 등 친이·비박계 일부가 ‘국민통합연대’를 창립하며 보수 통합을 명분으로 세 불리기에 나선 가운데 이를 신당창당의 포석이라 해석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특히 최근 들어 한국당에 ‘도로 친박일색’이란 지적이 제기되는데, 이에 반감을 갖는 의원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의 입김이 비례정당까지 미치며 반란으로 이어질 경우 한국당으로서는 신당 창당을 물적으로 지원해준 꼴이 된다.

이같은 우려에도 한국당은 현역의원도 30명가량 비례한국당으로 옮기는 ‘의원 꿔주기’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당의 투표 기호는 의석수로 정해지는데, 한국당이 신규인재로만 비례정당을 구성할 경우 현역 의원이 없는 관계로 후순위로 밀린다. 그러나 한국당이 30명가량의 현역의원을 비례한국당으로 배치시키고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으면 원내3정당인 바른미래당 의석수(28석)를 넘어서는 것과 동시에 정당투표용지에서 ‘자유한국당’이 사라지면서 지역구와 비례대표에서 정당 기호 모두 2번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 내부적으로는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다. 제1야당을 두고 비례정당으로 가서 위험을 무릅쓸 사람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의심의 바탕에는 페이퍼정당 구성이 유권자들에게 ‘꼼수정당’으로 비춰지면서 비례한국당에 표를 줄 것인지 예단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혼재돼 있다. ‘개혁을 말한다면 비례정당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심재철 원내대표와 권성동 의원의 발언 취지는 이런 지적에 대한 반증이 된다.

개혁 아닌 개악…참여가 민주정치 핵심

거대 양당제로의 회귀

여야는 선거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한국당은 비례한국당을 만들지 않으면 2석 감소에 그친다. 이에 대비해 비례정당을 구성할 경우 연동의석 상당부분을 차지할 수 있지만, 민주당이 비례민주당을 들고 나오면 오히려 격차는 더 벌어진다. 게다가 ‘꼼수정당’이라는 비판까지 감수해야 한다.

민주당으로서도 비례한국당에 맞서 비례민주당을 구성하면 분명한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선봉에 서서 주도한 ‘개혁법안’을 스스로 좌초시킨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양당이 비례정당을 구성하면 거대양당제가 극도로 심화된다는 것이다.

현 20대 국회 비례대표 의석은 총 47석. 이 중 민주당이 13석, 한국당 17석, 바른미래당 13석, 정의당이 4석을 차지하고 있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비례의석의 63.8%를 차지하고 있는 와중에 비례정당까지 출현해 비례의석을 흡수할 경우 양당으로의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비례정당이 등장할 경우 예상되는 양당의 비례의석 점유율은 93.6%에 달한다.

역대 국회의 구성비를 보더라도 17대 거대양당의 의석 점유율은 299석 중 273석으로 91.3%를 차지했다. 18대는 234석으로 78.3%지만, 이 당시는 한나라당(한국당 전신) 공천파동으로 친박세력이 집단 탈당해 친박연대가 원내에 진입했음을 감안해야 한다. 19대 국회도 300석 중 양당이 279석으로 93%를 가져갔다. 20대 국회에 들어서야 비로소 안철수 전 의원의 급부상으로 국민의당이 제3정당으로 자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었다. 원내 자체 교섭단체가 3개 이상 구성된 것은 15대 국회 이후 처음이다.

▲ 17~20대 국회에서의 거대양당 의석 변화. 민주당계와 한국당계 양당은 90%를 넘나드는 의석 대부분을 유지해왔다. 20대 국회에서 국민의당 독자 교섭단체가 꾸려진 것은 15대 국회 이후 약 20년 만이다.(그래픽=강민철 디자인팀장)

 


개혁 아닌 개악…핵심은 ‘참여’

결과적으로 이번 개정안 뿐 아니라 패스트트랙 협상의 최대 수혜자는 민주당이 됐다. 외부의 비판을 차치하면 선거법 개정과 관련해 ‘민주당만’ 살아남을 전략은 존재한다. 당초 한국당이 500조 미만으로 감액을 공언했던 예산안은 1조2천억 원 감소에 그쳤고, 공수처 단일안은 사실상 민주당의 안이 그대로 반영됐다. 협의체가 마련했던 단일안 초안의 기소심의위원회마저 철회되고 공수처장 임명에도 국회 동의는 요하지 않는다. 이 역시 본회의 표결만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한 치의 양보 없이 정무적 판단만을 앞세운 결과다. 군소야당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면 한국당 당선 가능성도 덩달아 높아진다는 우려 속에서 마련한 졸속법안에 오히려 발목을 잡힌 셈이다. 양당제의 폐해를 없애자는 움직임에서까지 양당제의 폐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앞선 시뮬레이션은 지역의석수나 지지율 등을 ‘주어진 것’으로 간주했다. 향후 정국에 따라 결과가 변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다만 시뮬레이션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비례정당이 등장할 경우 양당에 끌려 다니는 현 체제에 변함이 없을 거라는 사실이다.

민주정치는 참여를 기초로 한다. 고대 아테네 폴리스부터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배경에는 아고라(agora·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피력하며 이를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권장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 말한 것은 이러한 자유로운 의사교환을 곧 정치행위로 간주한 데 있다.

거대양당이 페이퍼정당을 꾸리지 않는다면 부분적이나마 다수정당에 의한 ‘정치’가 실현되는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다. 이미 정치권은 2016년 20대 총선 당시 불어 닥친 ‘국민의당 열풍’에서 그 가능성을 목도했다. 특정 인물이나 특정 정당 몇몇에 좌우되는 정치는 전체주의로 가는 지름길에 불과하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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