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악화에 백기 들었지만…한화손보 불매운동 ‘꿈틀’

 

[스페셜경제=윤성균 기자]한 보험사가 고아가 된 12살 초등학생을 상대로 2천만원 규모의 구상권을 청구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어머니는 집을 나가 연락이 두절됐다. 아이는 보육시설에 맡겨진 상태였다. 이에 법원은 이행권고결정을 내렸다. 보험사가 요구한 금액을 다 갚을 때까지 연 12% 이자를 지급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사람들은 “누구를 위한 보험인가” “무엇을 위한 법이냐”며 분노했다. 일부는 해당 보험사에 대해 불매운동과 주식투매까지 주장했다. 여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보험사 대표가 이례적으로 나서서 사과했다. 소송도 취하하고 재발방지도 약속했지만,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며칠간 인터넷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었던 한화손해보험 이야기다.

현행법상 보험사는 우선 지급한 보험금에 대해 원인제공자에게 청구할 권리가 있다.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 다만 이 경우는 지급능력이 없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거액의 구상권을 청구한 점이 문제가 됐다. 소송에 대응할 능력도, 돈을 지급할 경제력도 없는 미성년자에게 사회의 가혹한 논리를 들이댄 것이다. 요즘 말로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에 다름없다.

보험사가 사과하고 소송을 취하면서 이번 사건은 매듭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사건을 둘러싼 질문들은 여전히 남는다. 네티즌들은 “내가 들어놓은 보험 때문에 내 자식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거 아니냐”, “살려고 가입한 보험이 사지로 내모는 격”이라며 여전히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험사들은 구상권 청구 딜레마에 빠지는 모양새다.

 

12살 고아에 2천700만원 구상권 청구…법대로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등장…“파렴치한 보험사” 공분 폭발

지난 25일 강성수 한화손해보험 대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강 대표는 “최근 국민청원에 올라온 초등학생에 대한 소송 관련해 국민 여러분과 당사 계약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고개 숙여 깊이 사과한다”고 말했다. 취임하고 한 달도 채 안돼서 벌어진 일이다. 어쩌다 신임 손보사 대표는 대국민 사과에까지 나서게 됐을까.

초등생 고아에 고액 구상권 청구
이번 사건의 시작은 6년 전인 2014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남 장흥의 신호등 없는 교차로에서 적색점멸신호에 진입한 오토바이를 황색점멸신호에서 진입한 승용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망하고, 승용차 조수석의 동승자가 크게 다쳤다.

과실 비율은 50:50 쌍방과실로 결정됐다. 승용차 동승자에게 보상금으로 약 5천300만원이 지급됐고, 오토바이 운전자 A씨에게 사망보험금 1억5천만원이 나왔다. 하지만 사망보험금이 전부 지급되지는 않았다. 베트남 국적인 A씨의 아내가 사고 이전에 집을 나가 연락이 닿지 않았고, 아들인 B군만 남았다. 상대차량의 보험사인 한화손보는 보험금 지급을 A씨의 아내와 B군에게 각각 6대4의 비율로 책정했다. 하지만 실제로 지급된 보험금은 B군 몫의 6천원만 뿐이고, 나머지 9천만원은 A씨 아내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화손보가 현재까지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한화손보가 승용차 동승자에 지급한 보험금이다. 통상적인 사고였으면 상대방 보험사가 지급했겠지만, A씨가 무면허, 무보험 상태였기 때문에 한화손보 측이 우선 지급하고 A씨 과실에 해당하는 50%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하기로 했다.

실제로 한화손보는 B군에게 먼저 지급된 보상금 약 5천300만원 중 약 2천700만원에 대해 구상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법원은 B군에게 한화손보가 요구한 금액을 갚을 것과,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이자를 지급하라는 이행권고결정을 내렸다.

이행권고결정은 법원이 확정판결을 내리기 전 피고에게 원고의 요구를 이행하라고 권고하는 민사사건 처리제도를 말한다. 3천만원 이하 소액 사건의 경우, 법원에서 피고에게 서면으로 이 결정 등본을 송달한다. 이행권고 결정문은 B군이 현재 생활하고 있는 보육원 주소로 배달됐다.

한민철 변호사 “비인간적인 보험사”
이 같은 사실은 지난 23일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인 한문철 변호사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사연을 소개하며 알려졌다. B군의 큰아버지로부터 해당 사연을 제보받은 한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보험사가 너무 심한 소송을 했다. 부모 없이 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아이에게 2천700만원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적으로 뭐라고 할 수 없지만 인간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성토했다.

특히 한 변호사는 사망보험금 중 A씨 아내 몫은 손보사가 쥐고 있으면서, 구상금은 B군에게 전액 청구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사망보험금을 부인과 자녀에게 6:4의 비율로 책정했다면 구상금도 똑같은 비율로 책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B군이 보험사에 지급해야 할 금액은 약 1천80만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한 변호사는 과실 비율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통상 신호가 없는 교차로에서 서로 직진하던 차량이 충돌했을 때 넓은 도로 측 차량에 우선권이 있다고 보지만, 이 사건의 경우는 차 대 오토바이였고 사망사고인 점을 감안해 5:5 쌍방과실로 결정됐다. 하지만 한 변호사는 상대 차량이 브레이크를 밟은 흔적이 없고, 충돌 후 33미터 더 나가 멈춘 점을 봤을 때 과속 내지 전방주시 태만이 의심된다며 상대 차량의 과실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한 변호사는 유사한 사건에서 승용차의 과실이 80%로 결정된 대법원 판례가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고아인 B군이 법적으로 배상액을 경감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민법 제765조에 따르면, 배상의무자는 그 손해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 배상으로 인해 배상자의 생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경우에 법원에 배상액의 경감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지적하며 한 변호사는 “비인간적인 보험사는 앞으로 그러지 못하도록 이의신청서를 내서 승소판결을 만들어 보겠다”며 강경하게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국민들 공분
B군의 사연이 소개된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다수의 청원이 올라왔다. 대부분 한화손보의 비윤리적인 행위를 성토하는 글이었다. 24일 올라온 ‘고아가 된 초등학생에게 소송을 건 보험회사가 어딘지 밝혀주세요!’라는 청원글에서 청원자는 “사람의 목숨으로 돈 계산을 하는 보험사가 있다”며 “이 파렴치하고 인간을 자본주의의 도구로 여기는 보험사가 어디인지 공개하길 바란다”고 성토했다.

‘초등학생한테 상계소송 건 보험사 공개 요청 드립니다’라는 또 다른 청원글에서 청원자는 “보험을 가입한 내가 죽으면 남은 내 가족에게 힘이 돼야지 빚이 되면 안된다”며 “만약 보험사에서 올바르고 공정하게 처리를 한 거라면 떳떳하게 해명하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는 한화손보를 비난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일부 네티즌들은 “보험회사들 진짜 나쁜 사기꾼들이다. 자기들 이익만 챙긴다” “아이가 성인되자마자 빚쟁이 될뻔했다. 악마도 이런 악마가 없다” “불법대출업체에서나 할 짓을 서슴없이 하네” “사람을 숫자로 환산하는 괴물들 답다” 등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다. 일부 네티즌들은 한화손보 불매운동과 주식투매까지 거론하기도 했고, 실제로 인증샷이 올라오기도 했다.

여론이 좋지 않자 한화손보는 즉각 해명에 나섰다. 한화손보는 크게 두 가지를 주장했다. 첫째는 단순히 소멸시효 문제로 업무절차상 소송이었다는 것, 둘째는 이미 유가족 대표와 구상금의 일부를 하향 조정하기로 합의해 소를 취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변호사는 추가 영상을 통해서 한화손보측과 유가족측이 합의를 논의한 것은 사실임을 밝혔다. 다만 한화손보 주장대로 즉각 소를 취하한 것은 아니었다. 유가족측은 한화손보가 구상금 750만원 중 500만원을 입금하면 소를 취하하겠으니 나머지 250만원은 다음 달 입금하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유가족측의 주장이 사실이면 한화손보가 여론 눈치보기에 급급해 거짓해명을 한 셈이다.  

 

강성수 한화손보 대표, 사과문에 소송 취하까지
누구를 위한 손해보험인가…불매운동 확산 조짐

 



고객 신뢰 잃은 손보사
한화손보의 공식 사과 이후에도 여론이 식지 않은 것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손해보험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다. 손해보험은 우연한 사고로 손해가 생겼을 때 이를 보상받기 위해 가입하는 보험이다.

그런데 손해를 보상받기 위해 가입한 보험이 오히려 구상권 청구로 되돌아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목격한 셈이다. 일부 소비자들은 “내가 들어놓은 보험 때문에 내 자식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거 아니냐”, “살려고 가입한 보험이 사지로 내모는 격”이라며 혼란스러워했다. 보험사 입장에서 중요한 고객들의 신뢰를 크게 잃은 셈이다.

특히 한화손보는 고객들과의 과거 소송 사례까지 언급되며, 돈만 밝히는 ‘파렴치’, ‘자낳괴’로 내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한화손보는 금융소비자연맹의 분석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보험계약 무효확인 및 부당이득 반환청구소송 민사조정 건수에서 1위(527건)를 차지했다. 소송패소율 또한 66%로 1위였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번 일로 보험사들이 일제히 내부 프로세스 점검에 들어갔다”면서도 “보험사 입장에서는 구상권 청구를 안 할 수는 없다”고 토로했다.

직장인 익명게시판 애플리커이션인 ‘블라인드’에서는 보험업계 종사자들의 하소연도 눈에 띈다. 보험업계 종사자들은 “보험사는 이미지 관리 너무 힘든 것 같다”, “과실이 있으면 구상대상인건 당연하다. 보험사는 땅파서 장사하나” 등 한화손보를 옹호하는 의견을 올렸다. 그러나 이런 하소연마저도 소비자의 불신을 증폭시킬 뿐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기업의 자부심은 단지 매출이나 이익과 같은 숫자만이 아닌, 주주와 고객을 비롯한 사회의 신뢰를 얻는 데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화손보는 그 말의 의미를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본지는 한화손보 측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취재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았다. 

 

(사진제공=한화손해보험)

 

스페셜경제 / 윤성균 기자 friendtolife@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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