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충원 없는 주52시 근로제…‘무료노동 집배원, 얼마나 더 죽어야’

 

 

[스페셜경제 = 김봉주 기자] 우정사업본부의 우편 집배 노동자들이 과로로 잇달아 사망하고 있다. 지난해 7월 1월 우편업이 특례업종에서 제외되면서 제한 없이 연장 근무가 가능했던 우편집배원들도 근로기준법에 따라 주52시간 근무제 적용 대상이 됐다. 우정본부는 이러한 근로기준법을 지켰다는 입장이지만 실제 근로 현장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 52시는 적용됐지만 실제 집배원들의 근무 시간은 52시간을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편집배원들은 잇단 사망 소식으로 이미 여러 차례 ‘사망 경고음’을 울렸다. 그러나 우정본부는 그들의 경고를 한 귀로 흘린 것처럼 보인다.

지난 13일 공주우체국 소속 비정규직 집배원 이은장 씨(34)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할 정도로 건장한 젊은 청년이었다. 우편업계 관계자들은 과로에 따른 뇌·심혈관계 질환이 사망 원인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집배원들의 잇따른 죽음은 어제오늘 알려진 사실이 아니다. 사회공공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8년 말까지 숨진 우정본부 소속 노동자는 331명에 이르렀고, 그 가운데 166명 집배원이 근무 중 교통사고나 과로사 등으로 숨졌다. 특히 과로에 따른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숨진 사람은 82명으로 나타났다. 34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집배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정본부는 여태껏 집배원들이 보내온 ‘사망 경고음’을 무시한 것으로 보인다. 더 큰 사고를 막을 기회는 없지 않았다. 지난 2017년 8월 우정본부와 전국우정노동조합, 민간전문가 등 10명으로 구성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추진단’을 발족했다. 이 기획추진단은 2018년 10월, 약 14개월만에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권고안에는 정규직 집배원 2천명 증원과 안전보건관리시스템 구축, 업무강도 완화를 위한 제도개선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해당 권고는 이행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 우정본부는 “올해 안으로 인력 부족을 해소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인력 문제는 적자를 핑계로 아직 해결하고 있지 않는 모양새다. 우정본부의 무책임한 처사에 대한 질타가 일각에서 쏟아지고 있다. 우정본부가 집배원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스페셜경제>는 사면초가에 빠진 ‘우정사업본부’의 방만경영 논란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무료노동 집배원들의 사망 경고음
‘죽음의 우체국현장’ 이끌어낸 우본

 

우편집배원들의 과로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회공공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8년 말까지 우정본부에서 재직하다 순직한 331명의 노동자 가운데 166명의 집배원이 근무 중 교통사고나 과로사 등으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우편집배원들의 과중한 업무에 대한 질타가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우정사업본부 노사와 전문가로 구성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기획추진단’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집배원들의 연간 노동시간은 2745시간으로 나타났다. 이는 임금 노동자 연평균 노동시간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임금 노동자 연평균 노동 시간은 2052시간(2016년 기준)으로 나타났다. 하루 8시간 노동을 했다고 간주했을 때 노동자들이 평균 257일을 일한 반면 집배원들은 343일, 평균보다 86일을 더 일한 셈이다. 1년 전체로 따져 봐도 365일 가운데 343일을 일한다면 1년 동안 겨우 22일정도 쉴 수 있는 셈이다.  


이달 12일과 13일 우체국 소속 집배원 3명이 연이어 세상을 떠나 화제가 된 가운데 공주우체국 소속 집배원 이 씨의 형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을 통해 고인의 일상을 담아 우체국집배원의 고된 업무환경을 알렸다. 고인의 형은 청와대 게시판에 “(동생이) 평소에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다”면서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에 퇴근한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실제 퇴근은 미리 기록해놓고 매일 2~3시간 연장근무를 해야 했다. 우편물을 집에까지 가져와서 분류작업을 할 정도였다. 주말에도 밀린 일을 하러 나갔다”고 말했다. 우정본부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그는 “현재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제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해주지 않아 저희 가족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다”면서 “우정사업본부에서 제 동생의 과로사를 인정해주길 바라며 더 이상 과로사로 인한 집배원들이 숨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집배원 과로사 논란이 확산하자 우정본부는 20일 설명자료를 내고 “공주우체국 소속 집배원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계신 유가족분들께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며 “산재보험 적용 여부는 근로복지공단이 판단하는 사안으로, 우정사업본부는 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유가족 요청에 최대한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정본부는 “올해 들어 우편물량 감소와 인건비 상승 등으로 재정상황이 악화돼 지금 당장 집배원 인력을 증원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며 “향후 어려운 재정 여건과 우편시장 전망, 우편물량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추진할 계획”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우편업계 관계자들은 일각에서는 우정본부의 해명이 궤변일 뿐이며 괜한 적자 탓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1일 우편요금은 50원 인상됐다. ‘국내통상 우편요금 및 우편이용에 관한 수수료’ 고시 개정안에 따라 기존 330원(25g이하 기준)인 규격 우편물 요금을 380원으로 50원 인상됐다. 우정본부는 우편요금 인상을 알리면서 “집배원 증원을 위한 재정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올해) 우편요금 10원을 인상할 때 약 200억원의 재정 확보가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우본에 따르면 상시 집배원 1,000명 채용에는 연 300억원가량이 든다. 


집배원들이 보내온 ‘사망 경고음’ 무시할 만큼 중요했던 재정 문제?

 

과로사한 집배원에 적자 핑계를 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확보된 재정이다. 50원의 우편요금 인상으로 인해 앞으로는 연 1,000억원의 재정이 확보된다. 올해 5월부터 계산하더라도 이번해 말까지 최소 600억원 이상의 재정이 확보된다. 상시 집배원을 1,000명 채용해도 300억원의 여유재정이 확보되는 셈이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는 재정상황 악화를 이유로 당장 집배원 인력을 증원하지 않았다. 수많은 직원들의 과로사에도 인력 확충을 뒤로 미루고 적자 메꾸기를 우선시했다는 지적이다. 수백명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신규인력 충원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뒤 또 다른 과로사가 벌어지자 이제 와서 적자 때문이라고 답변하는 것은 설득력 떨어지는 해명이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봉주 기자 seraxe@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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