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라이즌과 8조 규모 계약‥통신장비 단일 수출로 최대 규모
미국, 세계 최대 이동통신시장‥진출 20년 만에 핵심 사업자로
5G 기술리더십에 보안성까지 인정‥해외 추가 수주 ‘청신호’
국산화 비중 높은 삼성…국내 협력업체 매출·고용 낙수효과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삼성전자가 국내 통신장비 산업 역사에 새 역사를 썼다. 미국 버라이즌과 8조원에 육박하는 5G(5세대 이동통신) 장비 공급 계약을 맺었다. 통신장비 산업 단일 수출로는 최대 규모다.  

5G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목하는 미래성장동력이다. 이 부회장은 대규모 투자를 통해 5G 기술력을 강화하는 한편, 직접 버라이즌 최고경영자(CEO)를 만나는 등 시장 공략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삼성전자는 미국 진출 20년 만에 기술력과 보안을 모두 인정받으며 세계 시장 주도권을 선점할 기회를 잡게 됐다.  

7일 삼성전자는 종속회사인 삼성전자 미국법인이 버라이즌과 79000억원 규모의 네트워크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버라이즌은 미국 최대 통신사업자이자 매출 기준 세계 1위 통신사업자다. 이번 계약으로 삼성전자는 버라이즌에 5년 간 5G 장비를 포함해 네트워크 솔루션을 공급하게 된다. 

이번 계약으로 삼성전자는 미국 시장에서 5G 리더십을 확인시키며 핵심 사업자로 부상할 전망이다. 미국 이동통신 시장은 2500억달러 규모로 세계 최대 시장이자, 세계 기지국 투자의 20~25%를 차지하는 핵심시장으로 손꼽힌다. 이 중에서도 버라이즌은 미국의 1위 통신 사업자로, 18300만명(6월 시장조사기관 옴디아 기준)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통신장비 시장의 문을 계속 두드려왔다. 1999년 스프린트(T모바일에 인수)2G CDMA를 수출하면서 처음 미국 시장에 진출한 뒤 기술 리더십 확보를 위해 공들였다. 그 결과 한국과 미국, 일본에서 5G 상용화를 주도하며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2018년 미국의 4대 전국 통신사업자 가운데 버라이즌, AT&T, 스프린트 등 3개사와 5G 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연말 국내 통신 3사와 함께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에 성공했다. 올해 3월에는 일본 KDDI5G 상용서비스를 개시했다.  

더욱이 삼성전자는 이번 계약으로 미국 최대 통신사업자의 검증을 통과하며 기술력에 보안까지 인정받았다. 삼성전자는 5G의 핵심기술인 RAN(Radio Access Network)·코어 통신장비와 모뎀·RFIC(Radio Frequency Integrated Circuit)·DAFE(디지털-아날로그변환 칩) 등을 모두 직접 개발·제조한다. 제조부터 공급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우수한 기술력, 공급망과 보안에서의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효율성은 장기간 합을 맞춰야 하는 통신사에겐 매력적인 동반자로 인식되기 충분하다.  

특히 미국 정부의 제재로 인해 5G 시장에서 화웨이 퇴출이 가속화되고 있어, 삼성전자가 시장 점유율을 더욱 끌어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세계 통신장비 1위 사업자인 화웨이에 대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제재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안보 위협을 들어 자국을 넘어 영국, 프랑스 등 동맹국에게 화웨이 퇴출을 종용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화웨이 장비 신규 도입 금지 및 2027년까지 장비 철거를 결정했다. 인도 정부도 5G 네트워크 구축 과정에서 화웨이와 ZTE의 입찰을 제한하기로 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화웨이가 주춤한 사이 5G 시장 영토를 본격적으로 늘려나가고 있다. 최근 캐나다 비디오트론, 텔러스, 미국 US셀룰러, 뉴질랜드 스파크 등 세계 유수의 통신사들로부터 신규 네트워크 장비 수주를 잇따라 성공시켰다. 영국 정부로부터 새로운 5G 네트워크 구출 사업자로 거론되기도 했다.  

세계 시장에서의 추가 수주에 청신호가 켜지면서 삼성전자의 점유율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시장조사기관 델오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삼성전자의 5G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은 13.2%로 화웨이(35.7%), 에릭슨(24.6%), 노키아(15.8%)에 이어 4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와 온라인 쇼핑, 동영상 시청 증가 등으로 통신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졌다. 지랩스 분석에 따르면 화상회의 트래픽은 218%, 온라인 교육 437%, 게임 2065%으로 급증했다. 폭증하는 트래픽을 소화하기 위해 국내외 네트워크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 북미 지역에서 2019년부터 2025년까지 360조원에 달하는 5G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증권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삼성전자의 이번 계약은 국가 경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통신장비 사업은 인프라 성격이 강하다. 한번 사업자로 선정되면 네크워크 상용화와 운용 기간을 고려해 장기간 사업을 수행한다. 다음 세대 네트워크로 변경하더라도 이미 구축된 설비를 활용하기 위해 기본 사업자와 협력을 지속하는 게 보통이다. 이에 따라 코로나19로 인한 수출 공백을 매우고 충소 협력사들의 매출 확대·고용 창출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높다.  

삼성전자는 국내 중소 장비부품회사 86개사와 협력해 네트워크 제품을 제조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5G 장비는 국내 부품 비중이 40~60% 수준에 달할 정도로 국산화 비중이 높다. 삼성전자의 수주가 확대될수록 국내 중소기업의 매출과 고용창출에 낙수효과가 미치는 것이다.  

한때는 매각을 고려할 정도로 어려웠던 통신장비 사업이 잿팟을 터트린 배경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의지가 있었다.  

이 부회장은 20183년 간 25조를 투자해 5GAI(인공지능), 전장 부품, 바이오를 4대 미래성장 사업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2019년 새해 첫 경영 행보로 5G 네트워크 통신장비 생산라인 가동식에 참석해 새롭게 열리는 5G 시장에서 도전자의 자세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의지를 다졌다. 그 뒤 이 부회장은 5G 영토 확장의 선봉장을 자청했다.  

이 부회장은 미국, 아시아, 유럽 등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리더들과 교류하며 5G 관련 협력 방안을 논의해왔다. 지난해 2월 모하메드 빈 자이드 UAE 왕세제와, 5월에는 일본 NTT도코모, KDDI 등 주요 이동통신업체 경영진을 만났다. 6월 독일 도이치텔레콤의 팀 회트게스 최고경영자(CEO)와 회동했다. 인도 최대 통신기업 릴라이언스 지오를 소유한 릴라이언스그룹 무케시 암바니 회장의 자녀 결혼식과 약혼식에도 잇따라 초청받아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이같은 노력은 계약 수주로 이어졌다. 7월에는 한·일 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와중에도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KDDI5G 통신장비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버라이즌과도 지난해 한스 베스트베리 CEO를 직접 만나 사업협력을 논의한 데 이어 이번 계약을 앞두고 여러 차례 화상통화를 하며 설득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진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공들여 왔던 5G 시장에서 결실을 맺은 점에 주목하고 있다. 통신장비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이재용 시대 플래그십(전략) 사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평가다. 특히 반도체를 잇는 삼성전자의 새로운 수익창출원(캐시카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통신장비 시장에서의 시장 주도권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월 삼성리서치 산하에 차세대통신 연구센터를 설립하고 5G 경쟁력 강화 전략을 연구 중이다.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6G 선행 기술 연구를 진행하는 한편, ‘새로운 차원의 초연결 경험을 제공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6G 백서를 발간하며 6G 표준화와 기술 선도 의지를 드러냈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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