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대(對)한국 백색국가 제외를 하루 앞둔 27일 일본은 예정대로 조치를 단행한 뒤 한국의 반응을 지켜보며 추가 보복 카드를 검토 중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일 일본이 기존 반도체·디스플레이 규제 품목 중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을 허가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과의 대화의지를 내비치며 양국 관계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지난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발표한 데 이어 25~26일 이틀 간 독도방어훈련을 전개한 데 대해 일본이 크게 반발하며 과거사 문제는 결국 경제 문제로 확전이 불가피하게 됐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일본 경제산업상은 이날 한국을 ‘그룹A(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을 28일부터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일본이 백색국가 제외 조치를 철회한다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또한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일본 정부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이 총리의 제안에 대해 “지소미아와 일본 정부의 수출관리 운용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라 일축했다.

까다로워질 수출 절차, 핵심품목 규제 가능성

28일부로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가 발효되면 한국에 ‘전략물자’로 분류된 1,120개 품목을 수출하는 일본 기업들은 기존 3년 단위의 ‘일반포괄허가’ 대신 품목 별로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단, 전략물자 중 ‘비민감품목’으로 설정된 857개 품목에 대해서는 자율준수프로그램(CP) 인증을 받은 기업에 한해 개별허가를 면제하고 3년 단위의 포괄허가를 내주는 ‘특별일반포괄허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CP인증을 받지 못한 일본 내 중소기업과 거래하는 국내 중소기업들은 특별일반포괄허가도, 일반포괄허가도 불가능하고 오직 개별허가만이 가능한 관계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전략물자 중에서도 ‘민감품목’으로 분류되는 263개 품목에 대해서는 오직 개별허가만이 가능하다. ‘불허’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일본은 ‘비전략물자’에 대해서도 한국이 대량살상무기(WMD) 등 군수용도로 사용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캐치올(Catch-All) 규제’를 통해 추가적인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

캐치올 규제가 적용될 경우 해당 비전략물자가 군수용으로 사용되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일본의 판단에 의하므로 사실상 규제 대상으로 거론될 수 있는 품목 수는 전략물자 1,120개를 아득히 넘어선다.

향후 국제 정세와 일본 여론 및 한국의 반응을 지켜보며 필요한 경우 한국의 아픈 곳을 찌를 수 있는 품목들에 대해 캐치올 규제를 적용할 수도 있다.

日, 즉각 보복 나설까…政, ‘강대강’ 대치

일각에서는 일본 내에서도 자성론이 일고, 한국과의 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어 곧바로 추가적 보복조치에 나서진 않을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개별허가로 전환하는 구체적 품목들을 규정하는 시행세칙인 ‘포괄허가취급요령’에 손을 대지 않고 있는 점도 이러한 전망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

게다가 일본이 탄탄한 내수시장을 보유하고 있다지만 규제 강화시 대(對)한국 수출 비중이 90%를 넘나드는 자국 기업들의 경영악화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도 이러한 분석에 한 몫 한다.

한편으로는 ‘한국 때리기’로 지지율 상승이라는 재미를 본 아베 내각이 과감한 추가 보복조치를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23~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정권의 지지율은 무려 5%p 급등한 58%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여기엔 강경한 대외기조가 보수파의 결집을 촉진시킨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조사에서는 한국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에 대해 응답자의 65%가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한국이 지소미아를 파기한 데 대해서는 83%가 ‘이해할 수 없다’고 답했다.

한편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에 대한 맞불 조치로 한국 정부 또한 일본을 한국의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 발표를 하고 있다. 전략물자 수출지역 구분 변경은 가 지역을 세분화해 가의1·가의2 지역으로 구분한다. 가의2 지역은 나 지역 수준의 수출통제 수준을 적용하지만 개별허가 신청서류 일부 및 전략물자 중개허가는 면제한다. 개정안은 20일간 행정예고를 실시해 의견을 수렴한다. 2019.08.12.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현행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상 백색국가인 ‘가 지역’을 ‘가의1’과 ‘가의2’로 세분화 한다”며 “기존 백색국가는 가의1로, 일본은 가의2로 분류한다”고 밝혔다.

해당 개정안은 행정절차법에 따라 20일 이상 의견수렴, 규제심사,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9월 초부터 효력을 발휘할 예정이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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