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유치원3법'의 신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하며 방해하는 한국당 관계자들과 언쟁을 벌이자 한국당 주호영 의원과 임이자 의원이 막고 있다. 2019.12.16.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국회법에 따르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법안은 270일 간 상임위원회 논의 및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심사를 거친 뒤 60일 간의 부의 기간을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다.

국회는 2015년 국회법 개정 당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이 국회에서 표류할 수 있는 법정최장기한을 지정해 이 기간 동안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으면 330일이 지난 뒤 열리는 첫 번째 본회의에 자동으로 상정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유명무실한 조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나오던 패스트트랙에 대한 지적은 최장 1년 가까운 기간이 소요되는 것이 과연 ‘패스트(fast)’트랙이 맞느냐는 것이었다.

여기에 최근 유치원3법이 330일을 보냈음에도 본회의 통과는커녕 상정조차 되지 못하면서 패스트트랙 절차에 대한 허술함 또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국회가 갈등을 빚지 않는 비쟁점 법안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필요 없이 안정적으로 의결정족수를 넘어서며 통과된다. 본회의 상정까지의 과정도 제법 순탄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쟁점 법안의 경우에는 말이 다르다. 서로 자신들의 입장을 굽히지 않다가 데드라인이 무르익어서야 부랴부랴 협상에 나서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현재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본회의 부의된 법안은 △유치원3법(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공직선거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 등이다.

선거법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활동기한 종료가 임박했던 6월 말과 8월 말에 이르러서야 논의가 진행됐고(물론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검찰개혁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지난해 12월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유치원3법은 330일이 지나도록 단 한차례의 논의조차 없었다. 패스트트랙에 330일 씩이나 부여할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상임위 회부 기간 등에 있어 해석의 여지가 분분한 선거법과 검찰개혁안은 일단 제외하더라도 유치원3법은 어떻게 계산해도 최장기간을 모두 넘긴 상태다. 즉 현재 본회의 상정 0순위 법안은 유치원3법이 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정쟁이 일상인 ‘꾼’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

감사 대상 91%가 비리 연루…투명성 제고 안중에도 없는 국회


“오늘 열릴 본회의에서도 유치원3법은 선거법,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보다 여전히 뒤에 있다”

16일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유치원3법의 조속한 통과를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자리에서다.

박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2013~2017년 전국 시도교육청이 전국 6,153곳 유치원 중 2,058곳에 대한 감사 결과 밝혀낸 비리 유치원 1,878개 명단을 공개하며 ‘국감스타’로 떠올랐다. 국감 당시 박 의원이 공개한 비리유치원 비율은 감사 대상의 91.25%에 달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박 의원은 12월 27일 유치원3법 패스트트랙 지정을 주도했다. 유치원3법에는 ‘에듀파인’ 시스템 도입 등 사립유치원의 회계 투명성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를 극구 반대하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와 자유한국당의 연대 속에 유치원3법은 이날까지 355일째 본회의장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본회의 부의기간 60일을 넘긴지 한 달이 돼가도록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유치원3법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날로부터 최장기간인 330일이 되던 시점은 지난달 21일. 현재 유치원3법은 당장 본회의에 상정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다.

앞서 언급했듯 국회법에 따르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은 330일이 지난 뒤 열리는 첫 번째 본회의에 자동으로 상정된다. 그러나 지난달 21일 이후 오늘까지 본회의는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 10일 단 한 차례 열렸고, 유치원3법은 맨 마지막 순위로 밀렸다. 심지어 이날 본회의에서는 ‘민식이법’ 등 일부 민생법안을 통과시킨 뒤 마무리되지 못했던 예산안 협의를 위해 정회 후 늦은 밤 재개되며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이날 본회의에서 유치원3법은 끝내 통과되지 않았다.


▲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서 자유한국당과 황교안 대표에게 '유치원3법'의 신속한 처리를 위한 협조를 촉구하고 필리버스터 철회를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하자 한국당 관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12.16. (사진=뉴시스)

정쟁 속 묻혀버린 ‘민생법안’

박용진 의원은 16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재 한국당 의원들이 선거법·공수처 패스트트랙 법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농성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이날 박 의원은 유치원3법의 조속한 본회의 통과를 위해 한국당의 협조를 촉구하고 필리버스터 철회를 요청하기 위해 국회 기자회견장(정론관)이 아닌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 의원들과 잠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부끄러운 줄 알라”는 박 의원의 외침에 “쇼 그만하고 정론관 가서 하라”는 한국당 의원들의 야유가 이어졌다.

박 의원은 한국당의 유치원3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철회를 요구하며 “355일 동안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아이들을 위한 법에 어떻게 이견이 있을 수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어 “한국당이 이렇게까지 유치원3법을 반대하는 이유가 황교안 대표 때문 아니냐고 우리 국민들은 묻고 있다. 심지어 기자회견도 방해하고 있다”며 “국민들이 1년 넘게 통과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유치원3법을 우선 처리하고 선거법, 공수처법 등 개혁 법안에 대한 이견을 좁혀가는 것이 국민을 먼저 생각한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길”이라 강조했다.

앞서 황교안 대표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고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사유재산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법률 자문까지 했다는 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한유총은 국내 사립유치원들을 대변하는 단체로, 지난해 12월 27일 유치원3법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자 유치원 개학을 이틀 앞두고 개학연기 카드를 꺼내며 격하게 반발했다. 이에 서울시 교육청은 한유총의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하며 강대강 대치를 이어갔지만, 지난 7월 서울행정법원은 한유총의 법인허가 취소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박 의원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바로 뒤에 있는 한국당 의원들에게 다가가 “필리버스터만 철회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남의 자리 와 왜 이러냐. 그만하고 가라”는 한국당 김상훈 의원의 반응이었다.

말 뿐인 자동상정…돌려 막으면 그만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렸던 지난 10일 유치원3법은 비록 마지막 순번이긴 했지만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우선순위에서 밀리며 결국 표결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는 패스트트랙 법안이 330일 경과하더라도 ‘자동으로 본회의가 열려 상정’되는 방식이 아닌 ‘언제든지 열리면 상정’되는 불완전한 조건을 달고 있는 것도 모자라 다른 법안과 함께 상정되는 경우 ‘패스트트랙 법안을 우선순위로 상정해야 한다’는 규정마저 없기 때문이다.

국회법 제85조의2 제6항과 제7항은 패스트트랙 법안이 부의일로부터 60일 이내에 본회의에 상정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해당 기간이 지난 후 처음으로 개의되는 본회의에 상정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즉 본회의가 열리지 않으면 330일이 지나더라도 패스트트랙 법안은 한 달이든 두 달이든 본회의가 열릴 때까지 계속 부의상태로 간주된다. 의결정족수를 확보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방법을 고려할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패싱’으로 인한 여론 악화를 감수할 용기가 있을 때의 얘기다.

국회 관계자는 스페셜경제와의 통화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이라 해서 우선 상정돼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오늘 열릴 본회의에서도 유치원3법은 선거법, 공수처법 보다 여전히 뒤에 있다. 왜 아이들이 항상 맨 마지막이냐”며 “정치권 문제와 여야 이해관계를 담은 선거법이나 공수처법보다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3법을 먼저 처리하면 정말 안 되는 것이냐”고 외쳤다.

그러나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날 예정돼 있던 본회의 개의를 취소했다. 여야가 데모크라시(democracy·민주주의)는 없이 비토크라시(vetocracy·거부정치)만 반복하며 접점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총선 전 통과되지 못할 경우 모두 폐기된다.

선거법과 검찰개혁법 통과를 위해 구성된 4+1(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는 붕괴 위기에 놓여있고,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법안과 민생법안은 물론 임시국회 일정 안건 등에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신청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뒤 ‘나를 밟고 가라’며 본회의장 입구를 점거 중이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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