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자유한국당이 29일 비쟁점 민생법안 처리를 위해 합의한 본회의 전체 안건에 대한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강행하기로 결정하며 이를 “평화롭고 합법적인 저항의 대장정”이라 규정했다.

이같은 발언은 한국당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필리버스터 진행안이 통과된 가운데 당 원내대표실에서 가진 나경원 원내대표의 긴급기자회견 도중 나왔다.

나 원내대표는 “오늘 본회의에 상정된 모든 법안(민생법안199건)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불법사보임, 안건조정위 무력화 등 계속되는 불법과 다수의 횡포에 이제 한국당은 평화롭고 합법적인 저항의 대장정을 시작하려는 것”이라 말했다.

이어 “이 저항의 대장정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바로 불법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의 완전한 철회 선언과 친문게이트 국정조사 수용”이라 강조했다.

여론의 악화를 감안하면서까지 민생법안, 비쟁점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안건 전체에 필리버스터를 건 한국당의 이번 의도는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지정 당시 물리적 충돌로 인해 검찰조사까지 목전에 둔 현 상황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패스트트랙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이 지난달 국회방송에 이어 전날(28일)에는 국회사무처까지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벌이며 자료를 확인하는 데 대한 부담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지난 9월 경찰에서 검찰로 이첩된 해당 수사에 포함된 국회의원 수는 총 110명으로 이 중 한국당 의원이 60명, 더불어민주당 39명, 바른미래당 7명, 정의당 3명이다. 무소속인 문희상 국회의장도 여기에 들어간다.

민주당의 경우 지난 26일 정춘숙 원내대변인을 끝으로 검찰 조사가 전원 마무리 됐지만, 한국당 의원들의 경우 자진 출석해 묵비권을 행사한 황교안 대표와 항변했던 나 원내대표 외 현직 국회의원들은 모두 소환에 불응했다. 두 대표를 제외하고는 최근 정치자금법 위반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해 수감 중인 엄용수 전 의원이 한국당 관계자 중에선 유일한 조사자다.

한국당은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지면서도 검찰수사가 옥죄어오는 마당에 더 이상 ‘무리수’를 둘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필리버스터는 분명 국회법 제106조의2에 따른 합법적 절차다.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은 2016년 2월 23일부터 3월 2일까지 총 192시간 넘게 진행된 테러방지법 통과 저지를 위한 더불어민주당의 필리버스터다. 단일 기록으로도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던 이종걸 의원이 진행한 12시간 31분 동안의 연속발언이 최장기록으로 남아있다.

나 원내대표는 “헌정질서의 붕괴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필사적 저항을 않는다면 역사에 큰 죄를 짓는 것”이라며 “비겁한 정치인 비겁한 야당으로 기록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각 안건마다 의원 1명이 4시간씩 필리버스터를 진행할 방침이다.

한국당 의석은 108석, 이날 본회의에 상정된 안건은 총 199건으로 한국당 의도대로 진행된다면 이론상 각 안건마다 432시간씩 총 8만6천여 시간을 벌 수 있다. 한국당은 필리버스터를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12월 10일까지 계속 이어갈 계획이다.

다만 한국당은 여론 악화를 우려해 일부 민생법안에 대해서는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고 표결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나 원내대표는 ‘민식이법은 필리버스터 없이 통과시킬 것이냐’는 질문에 “당연하다”면서도 “다만 국회의장이 선거법을 직권상정 안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안건순서를 변경하는 데 동의한다”고 말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으면 필리버스터 진행에 앞서 민식이법은 통과시키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필리버스터는 본질적으로 ‘시간끌기’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한국당으로서는 여전히 고심이 깊다.

특히 한국당이 전력으로 저지에 힘쓰고 있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의 경우 본회의 부의일을 기준으로 선거법은 내년 1월 25일, 검찰개혁안은 1월 31일 이후에 열리는 첫 번째 본회의에 무조건 상정된다.

<사진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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