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반복되는 선거 전 그들식 정계개편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치공학적 요소가 많이 작용하는 선거를 꼽으라면 단연 총선일 것이다. 최근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이 검찰 수사선상에 놓이며 지방선거도 예외가 아님이 드러났지만 입법부를 구성하는 총선에 비할 바는 못 되는 것 같다.

유권자들은 선거 전 의석을 앞두고 행해지는 통합이 머지않아 분열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당하는 처지다. 사실 유권자 입장에서 달리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집합적 목소리를 내는 경우라야 정치인들은 가장 두려운 ‘표심 이탈’을 의식해 (부분적으로)반영할 따름이다. 

이번 국회만 하더라도 국민의당은 바른정당과 통합해 바른미래당을 만들었고, 여기에 반발한 일부는 떨어져 나가 민주평화당을 꾸렸다. 탄핵정국에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던 이들은 유승민계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복당했고, 평화당 일부는 다시 대안신당으로 갈라졌다. 바른미래당에서는 바른정당 잔류파(새로운보수당)가 떨어져 나왔으며, 안철수계의 탈당도 사실상 확정된 상태다.

그동안 유권자들은 이같은 이합집산에 박탈감을 느끼면서도 ‘저 바닥은 원래 그렇다’며 정치권에서 되풀이되는 관례쯤으로 인식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20대 총선에서 대거 국민의당에 표를 몰아줬던 호남 민심은 대부분 돌아선 분위기다.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의 통합에도 ‘탄핵정국의 배신자’들을 받아선 안 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흘러나온다.

정당이 나아갈 방향을 잃으면 그저 대중의 외침만 좇으며 ‘반대만을 위한 반대’, ‘맹목적 아군 비호’같은 행태가 나타난다. 이같은 양상은 ‘내로남불’과 혼재돼 등장하기도 한다. 윤석열 체제에 엄정수사를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이 일련의 사건 후 ‘정치검찰’로 바뀐 것도 방향성을 잃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여당의 존재가 대통령 위신을 세우기 위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번 주 스페셜경제는 가치와 선거를 앞두고 철학을 상실한 정당이 통합과 연대라는 이름으로 어물쩍 넘어서려는 시도를 진단해본다.

이유 없는 자기추천…거절하니 탈당


총선을 앞두고 지난달 신당 창당을 선언한 안철수 전 의원을 시작으로, 바른미래당·대안신당·평화당 등 호남연합 재구축에 이어 9일에는 새보수당 유승민 의원이 한국당과의 통합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 정치권의 움직임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선거를 목전에 둔 ‘정치꾼들’이 의석확보에만 골몰하는 행태는 매번 제기되는 지적임에도 좀처럼 개선의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의석(권력)의 획득·유지를 위한 정치조직’이라는 정치학적 정의에 따른다면 새삼 놀랄 일은 아니지만, 당의 주체적 철학도 없이 그저 집권을 통한 기득권의 유지만 바라본다는 비판은 면할 길이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안철수 전 의원의 신당 창당(국민당)과 유승민 의원의 통합 발표다.

그간 안 전 의원은 실용적 중도정치의 가치를 거듭 강조해 왔는데, 그의 발언이나 행보 어디에서도 과거와 다른 새로움은 찾을 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20대 총선과 달리 이번 총선에서는 이른바 ‘안철수 돌풍’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이미 호남민심을 배신한 걸 목격했는데 또 속겠냐는 것이다.

특히 지난달 27일 그가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의 회동에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과 본인에게 비대위원장직을 맡겨줄 것을 제안하고, 거절당한지 하루 만에 탈당의사를 밝힌 것은 창업주로서 자연스럽게 바른미래당 지분을 흡수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도 제기된다.

안 전 의원의 제안에 손 대표는 유승민·안철수계가 요구해오던 내용(사퇴요구)과 다를 게 없었고, 결국 당대표인 자신을 내쫓으려 했던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왜 안 전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맡아야 하는지, 왜 지도체제를 개편해야 하는지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것이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안 전 의원과 바른미래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국민당과 바른미래당은 모두 민주당·한국당이라는 거대 양당제를 타파할 중간지대 마련에 분주하다. 갈등과 대립으로 점철된 양당제에서 피로감을 느낀 유권자들이 제3정당, 중간지대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다만 바른미래당은 당초 ‘미래세대’를 우선적으로 통합한 뒤 제정치 세력을 통합하려 했다는 점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 안철수 국민당 창당준비위원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정과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혁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0.02.13. (사진=뉴시스)


손 대표는 “미래세대와의 정치적 연합을 1차적 과제로 생각하고, 이후 기존 정당들과의 통합을 추진하려 했다”고 언급했다.

안 전 의원의 탈당에 명분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한 안철수계 관계자는 지난달 안 전 의원 탈당 직후 스페셜경제와의 통화에서 “(안 전 의원의)신당 창당 이야기는 비공식적으로 거론돼 온 것으로 안다. 이번 (비대위원장직)제안은 신당 창당을 위한 구색 갖추기 용이라 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 안철수계 일부 인사들은 안 전 의원 탈당 직후 이어진 대규모 탈당러시에 참여하지 않고 현재까지도 바른미래당에 남아 있는 상태다.


변한 건 없지만…‘믿어보겠다’


해결되지 않은 탄핵 문제

비슷한 지적은 유승민 의원의 새보수당-한국당 통합 발표에 대해서도 이어진다.

지난해 11월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처음으로 유 의원에게 공개 러브콜을 보냈을 때, 유 의원은 ▲탄핵의 강을 건널 것 ▲개혁보수로 거듭날 것 ▲새 집을 지을 것 등 보수재건 3원칙을 제시했다.

세 가지 조건 중 가장 문제시 되는 것은 탄핵 문제였다. 탄핵정국 당시 이를 주도하며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을 탈당했던 이들은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이 ‘반란’에 대해 친박(親朴)계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었다. ‘유승민 만큼은 절대 안 된다’, ‘유승민과 통합하면 탈당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유 의원은 ‘탄핵의 강’ 조건을 철회하지 않았다.

통합논의가 시들해지자 한국당에서는 ‘탄핵문제를 묻어두고 가자’는 말이 은연중에 돌기 시작했다. 이같은 발언은 지난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에서 개혁법안 통과 저지 실패를 전후로 나왔다.

하지만 유 의원이 제시한 ‘탄핵의 강’ 조건은 탄핵문제를 묻어두는 것이 아닌 극복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촉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담겨있었다. 지난달 보수 시민단체와 정당이 참여한 혁신통합추진위원회의 보수 대통합 범위에 이른바 ‘진박(眞朴)’인 우리공화당이 포함된 것을 두고 유 의원은 “상식적으로 우리공화당과 통합하면 탄핵의 강을 건너고 탄핵을 극복하는 통합이 되겠느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유 의원이 한국당과 통합을 추진한다고 발표하기까지 한국당에서 친박 세력의 거취나 입장에 대한 어떤 논의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당이 친박화 되어간다는 것은 진작부터 제기되던 문제다. 

 

▲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보수재건위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보수 통합 및 총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2020.02.09. (사진=뉴시스)

새보수 지지율은 답보상태

새보수당은 지난달 3일 출범 직후 처음으로 실시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5.3%를 기록, 단숨에 3순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이후 조사에서는 조금씩 등락을 반복하며 현재는 3.8%에 머물고 있다(각각 1월 16일, 2월 13일 리얼미터 조사·발표 기준, 자세한 결과는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는 탄핵문제에 대해 전혀 정리가 되지 않았음에도 결국 당에 어떤 비전도 철학도 없이 의석확보만을 위한 정쟁에 뛰어드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유 의원은 9일 기자회견에서 “3원칙을 지키겠다는 약속, 믿어보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손학규 대표는 10일 “신설합당을 표방했지만 결국 흡수합당으로, 한국당으로 들어가겠다는 선언”이라며 “말로는 중도보수를 표방하면서 저를 내쫓고 바른미래당을 접수해 한국당에 바쳐 정치적 기회를 얻으려 했던 의도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라 혹평했다.

과거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으로 바른미래당이 탄생할 때도 정치권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중도를 지향한다고는 하지만 서로간의 성향이 너무 달라 쪼개질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실제 이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바른미래당에서 정확히 유승민계만 떨어져 나왔고, 뒤이어 안철수계의 기약 없는 이탈까지 예고된 상태다(다만 안철수계와 당권파의 알력은 성향 차이 보다는 주도권 다툼의 소지가 크다).

제3지대 통합 잡음…묻지마 사퇴? 손학규 노욕?


최근 호남신당 통합 문제를 두고 긴밀한 접촉을 이어가고 있는 바른미래당·대안신당·평화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특히 바른미래당의 경우 최근 이찬열 의원에 이어 김관영·김성식 의원까지 탈당하며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하자 손 대표는 곧 대안신당·평화당과의 통합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지난 5일 손 대표는 “저는 미래세대와의 정치적 연합을 1차적 과제로 생각하고, 이후 기존 정당들과의 통합을 추진하려 했지만 정치적 상황이 급변함에 따라 기존 정당들과의 통합이 급선무가 되었다”고 했다.

미래세대가 우선이었다고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선거를 앞둔 정치공학적 통합임은 손 대표도 자인한 셈이다. 이러한 면에서 제3지대 통합 역시 한국당-새보수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선거를 앞두고 움직인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3당은 당초 오는 17일까지 조건 없는 통합을 이루기로 합의했지만 손학규·정동영 대표의 거취 문제로 다시 잡음이 일며 현재 논의는 주춤한 상태다. 손 대표는 공개적으로 사퇴 요구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고, 정 대표 또한 이를 수용할 의사가 없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통합 논의가 결렬될 것이란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손 대표는 미래세대와의 통합 문제를 본인이 마무리 짓고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하지만 대안신당은 믿을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관계자는 “(손 대표가)말은 그렇게 하지만 누가 믿겠느냐”고 전했다. 이같은 반응에는 ‘추석 전 지지율 10%’, ‘안철수 복귀시 전권 부여’ 등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며 손 대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바른미래당 관계자에 따르면 손 대표가 최근 강조하고 있는 ‘미래세대’는 청년 등 특정 ‘계층’이 아닌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단체’로, 최근까지 손 대표가 함께하자고 제안했지만 30%정도만이 여기에 응했다고 한다.

이같은 사정은 손 대표가 당권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는 데 설득력을 더해주는 셈이다. ‘미래세대’에 대해서는 당직자들조차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과의 협상이 난항을 겪자 손 대표가 궁여지책으로 3당 통합을 추진하면서도 무리하게 대표직을 사수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 박주현(왼쪽 두번째 부터) 평화당 통합추진위원장, 박주선 바른미래당 대통합추진위원장, 유성엽 대안신당 통합추진위원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평화당-대안신당-바른미래당 3당통합추진회의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0.02.11. (사진=뉴시스)

‘일단 이기고 보자’…눈앞 적에만 몰두하는 이들

 

이번 총선은 크게 민주당, 통합보수신당, 제3지대, 정의당, 안철수 신당의 구도로 흐를 전망이다. 전국구로는 민주당과 통합보수신당이, 호남 지역에서는 민주당과 제3지대의 대결양상이 뚜렷하다.

다만 선거를 앞두고 매번 반복되는 정치공학적 이합집산에 유권자들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호응의 목소리가 예전처럼 높지는 않다.

최근 인재영입을 마치고 연대를 위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을 찾은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필요할 때만 친구로 생각한다”는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안철수 영입이 통합의 완성’이라며 보수통합 노선을 중도보수통합으로 변경한 혁신통합추진위원회 역시 수차례에 걸쳐 “관심 없다”고 확인사살을 당했다.


비전 없이 움직이는 정당은 포퓰리즘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추구하는 바가 없어 눈앞의 적에게만 몰두하기 때문이다. 활용되는 것은 국민이다. 일단 선거에서 이기고 보자는 식이다.

이들은 숙적을 먹이로 파벌과 계파를 형성하고 반대하는 자는 ‘적’으로 간주한다. 이런 상황은 데마고그(demagoggue·선동가)의 등장과 함께 전체주의가 발현하기 쉬운 환경을 조성한다. 또한 소위 ‘가진 자’, ‘있는 자’들끼리의 기득권 획득·유지 모색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상황을 야기하기도 한다.

데마고기와 정치적 무관심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노선과 방향이 분명하지 않은 정당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잉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관심을 먹고 자란 전체주의는 다른 의미에서 빅브라더를 낳을 수도 있다. 이념과 철학이 결여된 채 선거철만 되면 통합과 연대를 외치는 모습을 두고 ‘묻지마 통합’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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