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대2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최종결정…2020년까지 관련법 개정해야
생명발달단계에 따라 국가의 생명 보호의무 달리 적용될 수도
2012년 합헌판결 당시 반대의견 대부분 수용돼
여성계·정치계는 환영…종교계는 유감 표명

▲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낙태죄 처벌 위헌 여부를 판결하기 위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낙태죄를 규율하고 있는 현행법에 대해 임신 초기의 낙태까지 금지· 처벌을 규정한 현행법 조항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헌법재판소는 11일 결정했다.

헌재는 이날 오후 낙태시술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A씨가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제269조와 270조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며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대2 의견(헌법불합치4·단순위헌3 대 합헌2)으로 위헌 결정했다.

다만 헌재는 곧바로 낙태죄 규정을 폐지할 경우 법적 공백으로 인한 사회혼란이 우려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2020년까지 낙태죄 관련 법조항을 개정하라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기한 내에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낙태죄 관련 조항은 전면 폐지된다. 

 

이날 헌재의 결정으로 1953년 규정된 낙태죄는 66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태아의 생명권 존중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사이에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존폐 논란만 이어 온 낙태죄였지만 제정된 지 66년, 그리고 2012년 헌재가 합헌결정을 내린지 7년 만에 반전을 이룰 수 있게 됐다.


◆ 쟁점 조항과 2012년 헌재의 합헌판결

현행 형법 제269조는 ▲부녀가 약물이나 기타 방법 ▲부녀의 촉탁·승낙을 받아 낙태한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또 형법 제270조는 ▲의료인이 부녀의 촉탁·승낙을 받아 낙태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과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하도록 하고 있다.

비록 모자보건법이 ▲임산부 본인이나 배우자가 우생학적·유전적 질환이나 전염성 질환을 가진 경우 ▲강간·준강간 또는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인척간의 임신 ▲임산부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등을 상기 형법 조항의 위법성조각사유로 정하고 있긴 하나, 모자보건법 시행령 제15조는 임신 24주 이내의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여성계를 중심으로 낙태죄 폐지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있어왔다.

당시 헌재는 201244의 의견으로 해당 형법 조문이 헌법에 반하지 않는다며 태아가 비록 생명의 유지를 위해 모()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 자체로 모()와 별개의 생명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돼야 한다불가피한 경우 (모자보건법에 의해)태아의 생명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보다 중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헌재 2012.8.23. 2010헌바402).

 

하지만 반대의견을 표한 4명의 재판관은 국가가 생명권 보호를 위해 인간생명의 발달단계에 따라 보호정도나 수단을 달리할 수 있다. 임신 초기에는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낙태를 허용해 줄 여지가 크다면서 낙태죄 규정이 현재 거의 사문화 돼 태아생명보호라는 공익을 해당 조항으로 달성될 것으로 보기 어렵지만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제한되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고 밝혔다.

 

 

◆ 뒤집힌 헌재 결정…7년 전 반대의견 대부분 수용


이날 이뤄진 헌재의 결정에는 2012년 당시의 반대 의견(낙태죄 조항 폐지의견)이 그대로 반영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헌재는 먼저 “자기낙태죄(형법 269조) 조항은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 예외를 제외하고 임신기간 전체의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형벌을 부과해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출산을 강제하고 있어 자기결정권을 제한한다”며 “태아 생명보호라는 공익에 대해서만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우위를 부여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학계에 의하면 태아는 22주 내외부터 독자생존이 가능하다”면서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인 동시에 임신의 유지와 출산여부에 대한 자기결정권 행사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의 낙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이어 의사낙태죄(형법 270조)와 관련해서는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도록 한 의사를 처벌하도록 하는 조항 역시 같은 이유에서 위헌”이라 판시했다.

현실에서 낙태죄로 처벌받는 사례가 거의 없어 사문화된 점 또한 위헌 결정의 사유로 등장했다. 이 역시 2012년 반대의견에 포함된 내용이다.

한편 낙태죄 폐지에 반대의견을 낸 두 명의 재판관은 “태아가 모체의 일부라도 임신한 여성에게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소멸시킬 권리, 즉 낙태할 권리가 자기결정권의 내용으로 인정될 수는 없다”며 “국가의 생명보호의무는 임신한 여성의 태아에 대한 침해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했지만 합헌 정족수인 4명에 이르지 못했다.

 

▲ 세계 여성의 날이었던 지난달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 여성계·정치계 환영목소리…종교계는 깊은 유감과 우려 표명

이날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과 관련해 여성계와 정치계에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정은 성남 여성의전화 이사는 “헌재 위헌판결은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되찾은 것”이라며 “헌재의 판결이 시대 흐름이나 여론을 반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문설희 집행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오늘은 그동안의 치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날”이라며 “낙태가 죄라면 범인은 국가였다. 오늘은 대한민국에서 66년 만에, 헌재 2012년 합헌판결 7년 만에 역사적인 진전을 이룬 날”이라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현안브리핑을 통해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고 사회적 갈등을 절충해낸 결정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낙태죄 폐지는 낙태에 가하는 사법적 단죄를 멈추라는 요구로 타당하다”며 “법적 공백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으므로 평화당은 새로운 법 개정에 최선의 지혜를 모으겠다”고 밝혔다.

바른미래당 이종철 대변인은 논평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 등의 관점에서 진일보한 판단이라 본다”면서도 “입법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예상되는 바, 사회적 합의와 판단을 모아나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주어졌다. 성숙한 논쟁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된 시민의식에 걸맞은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 전했다.

반면 종교계에서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수정되는 시점부터 존엄한 인간이며 자기방어능력 없는 태아의 기본 생명권을 부정할 뿐 아니라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 고착시키고 남성에게 부당하게 면제하는 결정”이라 평가했다.

그는 이어 “낙태는 태중의 무고한 생명을 직접 죽이는 죄이며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라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는 변함이 없다”고도 덧붙였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성명에서 “낙태위기에 처한 여성을 보호할 법적 장치를 없애고 태아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여성의건강을 해치는 생명원칙에 어긋난 판결”이라며 “태아는 국가와 개인이 보호해야 할 생명이며 여성의 건강과 출산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현행법이 유지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번 헌재의 위헌 결정은 헌법소원을 낸 산부인과 의사 A씨를 비롯, 낙태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다른 피고인들에 대한 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헌재 결정취지를 따를 경우 무죄 선고가 이어질 전망이다.

<사진제공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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