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삼성전자의 반도체 성공신화를 이끈 권오현 상임고문(전 종합기술원 회장)이 총수 역할론을 강조했다. 최고경영자의 헌신과 리더십 덕분에 반도체 기술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와 미·중 무역갈등, 일본 징용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 조치 등으로 반도체 업계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쟁사인 TSMC와 인텔의 실적은 올 2분기 삼성전자를 앞질렀다.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양쯔메모리테크놀러지(YMTC), 푸젠진화반도체(JHICC) 등 메모리 반도체 업체와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SMIC 등은 반도체 자립화를 꿈꾸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기술 격차를 좁혀나가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사법리스크에 묶여 2016년 이후 수조 이상의 과감한 투자를 결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권 고문의 발언은 이같은 삼성전자 안팎의 상황을 염두한 것으로 풀이된다.

 

권 고문은 28일 오전 사내방송 인터뷰에서 반도체 사업은 앞으로도 과감하게 결정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의 결단이 필요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인터뷰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64메가 D램 시제품을 생산한 199281일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후 일본을 넘어선 것은 물론,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선두에 설 수 있었다. 이같은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중요과학기술자료로도 등록되기도 했다.

 

권 고문은 미래를 향한 끊임없는 도전이란 부제가 달린 인터뷰에서 기술 초격차를 유지한 동력과 경쟁력에 대해 이병철 선대회장, 이건희 회장 등 그룹 총수의 책임감과 도전정신, 임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꼽았다.

 

특히 권 고문은 일본과 기술 격차를 벌리며 메모리반도체 1위 자리를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경쟁력은 총수 경영 시스템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모험을 감수하며 적기에 투자를 단행한 까닭에 시장의 흐름을 만드는 퍼스트무버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삼성이 반도체 사업을 한다는 자체가 난센스 같은 일이었다이병철 회장께서 반도체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이후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건희 회장이 지속적인 투자를 해서 동력이 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반도체 사업은 워낙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르고 투자 규모도 커서 위험부담이 있는 사업인데 위험한 순간마다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의사결정이 성공을 가능하게 했다1990년대 일본의 반도체 기술 수준이 높았지만 이후 잃어버린 10이 됐다. 일본은 ‘100% 경영전문인 시스템이라 빠른 결정을 못했고, 불황기에 (전문경영인이) 투자하자는 말을 못해서 투자 시점을 잘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도 총수의 강력한 리더십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재용 부회장이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것을 언급하며 과거 경험에 비춰보면 어려운 시기일수록 제일 중요한 것은 강력한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권 고문은 “(반도체 사업은) 순간적으로 빨리빨리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경영인과 최고경영자층이 원활한 소통·토의를 해야 한다저도 전문경영인이었지만, 사업이 적자를 보거나 업황이 불황인 상황에서 수 조원을 투자하자고 말하기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최고경영진과 전문경영인의 역할 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권 고문은 삼성전자 반도체의 미래 준비를 위한 실천 과제로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 구축을 제언했다. “옛날에는 이렇게 해라, 무엇을 해라하는 기준점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기준점을 우리가 세팅해야 한다고 운을 뗀 권 고문은 초등학생이 공부하는 방법과 박사과정이 공부하는 방법은 다르다. ‘지금까지 성공해 왔으니 그대로 열심히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 외에 세상의 트렌드를 잘 봐야 한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발전이 더디게 된 것은 트렌드 세팅을 해야 하는데 자꾸 트렌드를 쫓아가기만 하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시대는 굉장히 다이내믹하기 때문에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럴 때는 새로운 지식이나 지혜를 넓히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에 접근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당부를 덧붙였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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