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생명보험업계와 손해보험업계 전속 설계사의 13월차 정착률이 각각 38.2%, 53.3%로 집계됐다.

 

[스페셜경제=이정화 기자]설계사들이 갈수록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빈번해지면서 소비자들이 필요할 때 보장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생판 본 적 없는 설계사에게 계약이 이관되는 혼란을 겪고 있다. 보험사들이 초기 등록 기준을 하향하는 등 설계사 문턱을 한층 낮췄으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업계는 정착률에 집착하기보단 남아 있는 설계사의 꾸준한 역량 제고를 위한 환경 구축에 힘써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생명보험업계와 손해보험업계 전속 설계사의 13월차 정착률이 각각 38.2%, 53.3%로 집계됐다. 새로 채용된 설계사 두명 중 한명 꼴로 회사를 그만뒀다는 얘기다. 13월차 정착률은 보험설계사로 신규 등록한 후 1년 이상 정상적인 보험모집 활동에 종사하는 인원을 평가하는 지표다.

보험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생보업계 소속 설계사가 손보업계 설계사보다 정착률이 15.1% 낮다. 최근 생보산업이 역성장하며 부진한 반면 손보산업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성장기회가 높은 시장에 정착하고자 하는 설계사들의 성향이 정착률에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보험연구원은 "생명보험 설계사들의 주력 판매상품인 개인보험의 경우 2016년 이후 역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며 "손해보험의 자동차보험 등은 생명보험의 종신보험이나 변액보험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품구조가 단순해 판매가 용이한 측면이 있어 성장률이 비교적 양호하고 설계사 정착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고 전했다.

 

▲보험회사 전속설계사 정착률 추이(그림=보험연구원)


보험소비자에게도 설계사의 잦은 이탈은 달가운 소식이 아니다. 계약을 관리했던 설계사가 사라지면 적시에 보장을 받지 못하거나, 낯선 설계사에게 계약 관할이 옮겨지는 불확실성에 처할 우려가 있다.

OO생명보험 고객 A씨는 "상품 가입할 때 설계사 경력도 봐야한다는 소리를 전부터 들었다. 오래됐다고 안 그만둔다는 보장은 없지만 경력 1년 이하 설계사로부터 상품을 들었다가 병원갈 일 생겼을 때 연락해보니 담당자가 바뀌어버려서 당황스러운 적도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속설계사의 이탈은 고아계약(설계사 이직 등으로 유지관리 서비스를 못 받는 보험 계약)과 승환계약(이탈한 설계사가 기존 고객에게 새로 옮긴 회사와 계약을 맺도록 부추기는 금지 행위) 등 소비자 피해를 야기할 우려가 있다"며 "고객이 시간과 금전 등의 자원을 쏟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설계사 정착률 유지 개선의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대두되고 있다"고 전했다.

설계사의 잦은 이직이나 퇴직 등은 불완전판매(승환계약)를 늘리고 적절한 정보 및 서비스 제공을 제때 하지 못해 소비자 피해와 보험민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존에 신뢰를 형성한 모집인으로부터 유대가 약화돼 계약 유지성이 저하되면 보험사 이미지 신뢰도도 함께 떨어질 우려가 있는 만큼 보험사들은 원인 해석과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설계사 이탈은 고질적인 문제다"며 "근래 GA채널이 성장하고 있고, 수수료 수당도 비교적 높아 모집인들이 옮겨가는 경향이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수수료 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지켜봐야 할 문제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수수료를 많이 준다고 해서 개인의 이익도 똑같이 높아질 거라고는 장담하기 어렵다. 뭇 설계사들이 수수료 액수에만 의존해 옮기는 현상이 씁쓸한 이유다"고 덧붙였다.

최근 여러 보험사들이 설계사 등록 기준을 낮춰 등록 인원은 높였지만 정작 정착률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각 사마다 다르지만 전속 설계사 등록시 환산 점수 등 평가 지표로 쓰이는 업적 기준이 마련돼 있다. 최근들어 몇 보험사가 파격적으로 등록 기준을 낮추면서 많은 보험사도 문턱을 내린 바 있다"며 "많은 이들이 설계사로 등록돼 교육을 받고 영업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정착 초기 단계에서 힘들어하는 설계사가 많았던 것으로 안다. 기준 문턱을 내렸지만 입구에서 막혀버린 것이다"고 밝혔다.

설계사 정착률이 저조한 이유로는 전속보다 영업이 더 자유롭고 더 좋은 판매수수료를 제시하는 GA(보험대리점)로의 이직과 저연차 설계사들의 적응 실패 등 많은 요소가 있다는 분석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모든 보험사가 마찬가지다. 지난해 뿐 아니라 올해도 코로나 여파로 인해 정착률이 주춤했다"며 "지난 3월부터는 대면활동이 거의 불가능할 만큼 영업환경이 어려워져 계약 등 성취가 줄어들고, 보험사도 통상적인 과정을 통해 설계사를 육성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업계가 정착률에만 휘둘리기 보단, 어려운 영업 환경 속에서도 남아있는 각 사의 설계사들이 계속해서 생산성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전문적으로 육성 및 교육할 수 있는 환경과 역량을 보유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며 "설계사가 '정착'을 한다는 건 계약을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과 같다. 설계사들이 자가발전할 수 있도록 보험사에서 제공할 수 있는 한 교육 커리큘럼을 언택트 방면에서도 폭넓게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본다"고 전했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그림=보험연구원)

 

스페셜경제 / 이정화 기자 joyfully7@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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