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 개선에 골몰‥4대 그룹 인사, 효율성 부각
체질 개선 극대화·성장 동력 확보에 방점 찍을 듯
LG·삼성, 수장은 그대로‥임원급엔 신상필벌 반영
SK,ESG 경영 가속화‥젊은 인재 발탁 두드러질 전망
현대차, OB 용퇴 속 제2의 루커 동커볼케 영입 가능성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재계가 이달 말을 기점으로 인사 시즌에 들어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올해는 수익성 개선에 골몰했던 시간이었다.

 

더욱이 탄탄한 내수가 받쳐주는 미국이나 중국, 일본 등과 달리 공급·해외시장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에게 엄혹한 시기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고개를 든 보호주역주의는 코로나19 이후 더욱 확산된 가운데 유통망 폐쇄와 재개 등으로 판매량이 부진했고, 미중 무역분쟁과 미국 바이든 정부 탄생, 일본 스가 내각 출범과 같은 변수가 이어졌다. 중국과는 사드 보복의 여파가, 일본과는 강제 징용 배상 문제로 인해 불편한 관계가 지속됐다.

 

대내적으로도 썩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가 누그러진 반면 정부·여당의 기업 견제 압박은 거세지고 있다.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을 비롯해, 반기업·친노동 기조가 강화된 법안 입법화 의지가 강하다.

 

복합 위기의 파고 앞에 총수는 위기를 말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한국 재계를 이끄는 4대 그룹 수장들은 위기와 생존을 입에 올리며 안정적 경영 환경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코로나19 속에서도 해외 출장을 감행했고, 직접 스마트폰과 반도체, 가전 사업장을 찾아 현안을 챙겼다. 최태원 SK 회장과 구광모 LG 회장은 사업 재편의 속도를 올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삼성, LG, SK와 협력을 모색하며 친환경 모빌리티에 집중했다.

 

이러한 기조는 올해 인사에서도 이어져 위기 돌파에 방점을 찍는 인적 쇄신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3,4세 승계의 동력을 확보하고, 그룹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체질 개선 효과를 최대화하는 데 무게가 쏠릴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단기적으로는 비대면 문화를, 장기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이끌 IT 인재와 70년대생이 전면에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세대 교체는 계속임원 규모는 줄어들 듯

 

한국 재계는 세대 교체가 본격화되고 있다. 기업분석 전문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주요 200대 그룹 내 1966년 이후 출생한 오너경영인은 36명으로 나타났다. 오너의 평균 연령이 젊어지고 ICT 산업과의 합종연횡이 활발해지면서 임원들의 연령도 낮아지는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인사를 단행한 그룹들에서 이러한 기조가 두드러진다. 한화그룹의 경우, 지난달 한화큐셀·한화첨단소재·한화케미칼을 합병해 출범시킨 한화솔루션에서 전략을 총괄해왔던 김동관 신임 사장을 승진시키며 3세 경영의 닻을 올렸고, 40대 대표이사와 그룹 최초의 여성 대표를 전격 발탁했다. 이로써 그룹 최고경영자(CEO) 평균 연령이 58.1세에서 55.7세로 낮아졌다.

  

4대 그룹 역시 세대 교체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상경영 시기라는 점에서 임원의 수는 예년보다 줄어들 수 있다.

 

다음주 인사가 있을 LG그룹은 주력 계열사의 최고 경영진을 대거 교체하며 친정 체제를 다져온 만큼 수장은 유임하되 그 외 임원들을 변화를 주는 방향으로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권영수 LG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등 네 명의 부회장단은 유지될 것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LG화학은 역대급 실적을 기록한데다 SK이노베이션과의 소송전, 배터리 부문 분사 등이 진행돼 유임쪽에 무게가 실린다. LG생활건강과 LG유플러스도 영업이익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몇몇 계열사는 승진설이 제기된다. 분기 사상 최고 수익을 내며 상고하저의 징크스를 깬 LG전자는 권봉석 사장의 부회장 승진설이 나온다. 또 사장단을 2~3명 늘려 성과를 치하할 가능성이 있다. 다음달 출범할 LG에너지솔루션(가칭)도 김종현 LG화학 전지사업본부장이 수장에 앉을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이 과정에서 인적 쇄신의 흐름을 지속하기 위해 40대 젊은 인재의 약진이 두드러질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생산 효율화와 폼펙터 혁신에도 불구하고 20분기가 넘도록 적자행진 중인 모바일 부문을 임원급 교체와 조직 축소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음달 초 인사가 예정된 SK그룹은 인사폭이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력 계열사의 최고 경영진은 유임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말 장동현 SK대표이사 사장이 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 커뮤니케이션 위원장으로,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에너지·화학 위원장으로 선임된 터라 교체 가능성이 적다는 게 재계의 전망이다.

 

게다가 SK 주력계열사들은 수장을 교체하기엔 위험 부담이 적잖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과의 소송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현대차의 전기차 배터리 부품사로 선정돼 관련 이슈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경영적 판단이 중요하다. SK하이닉스는 인텔의 낸드 사업부 인수가 진행 중이고, SK텔레콤도 모빌리티 사업 분사를 추진하고 있다. 때문에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모두 자리를 지킬 것으로 여겨진다.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지난해 연임에 성공한데다 최태원 회장의 신임이 두터워 재기용이 예상된다.

 

다만 최태원 회장이 매력적인 목표와 구체적 실행 계획이 담긴 파이낸셜 스토리가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기업가치가 높아지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ESG 성과가 임원 인사에 반영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코로나19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거점오피스, 유연근무제와 같은 업무 혁신을 가속화하면서 디지털 전환과 근본적 혁신(딥 체인지)을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에 조직에 유연성을 더할 젊은 인재 발탁이 단행될 수 있다. 실제 SK텔레콤은 최근 거점오피스 사업을 이끌 프로젝트 리더에 입사 3년차의 30대 직원을 발탁했다.

 

이 밖에 최 회장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 수락 여부,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관련 비자금 의혹 수사 등으로 일부 경영진은 교체될 수 있다.

 

단단하고 강하게’ 인적 쇄신으로 체질 개선 극대화

 

정기 인사를 없애고 연중 수시 인사로 전환한 현대차그룹은 정의선 회장 취임 이후 첫 인사라는 점에서 다소 변화가 점쳐진다. 정 회장이 2018년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했을 당시 정몽구 명예회장의 측근들은 대거 물러났다.

 

현대차그룹은 내년 전용 플래폼을 장착한 전기차를 출시하는 등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예열에 들어갔다. 수소차 등 친환경차, 자율주행, 커텍티드카, UAM(도심항공 모빌리티) 등 미래 모빌리티 사업도 가속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룹의 체질 개선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관련 기술을 고도화할 외부 전문가 영입과 젊은 인재 발탁이 동시에 이뤄질 것으로 여겨진다.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 정진행 현대건설 부회장, 김용환 현대제철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등 부회장단에서 용퇴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대신 정 회장과 손발을 맞춰온 공영운 사장, 김걸 사장, 하언태 사장, 이원희 사장, 이광국 사장이 부회장단에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 사장단 역시 출 4,50대 임원을 주축으로 꾸려 체질 개선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특히 외국인 임원이 합류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피터 슈라이어, 알버트 비어만, 호세 무뇨스 등을 적극 영입해 온 정 회장은 최근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을 CCO(Chief Creative Officer)에 다시 앉혔다.

 

재계 맏형 삼성의 인사는 예년보다 다소 늦게 이뤄질 거라는 게 업계의 전반적인 의견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의 1인자로 행하는 첫 인사지만, 이 부회장이 사법리스크에 묶여 있는데다 이건희 회장이 타계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다. 삼성은 2016년에도 이듬해 5월과 10월로 인사를 늦췄고, 지난해에도 인사를 연기해 올 1월 발표했다.

 

삼성 인사의 핵심은 이 부회장의 승진 여부다.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선고는 내년 초,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재판은 향후 2~3년 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회장직 승계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이로 인해 안정 속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인사의 폭은 크지 않겠지만 쇄신을 위한 고민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김기남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부회장과 고동진 무선사업(IM)부문 사장, 김현석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 등 3각 대표 체제는 유지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재계는 보고 있다. 이재용 체제 본격화를 위해 삼성은 노태문 사장에게 스마트폰 사업을 맡기는 등 세대교체를 진행해왔지만 올해엔 경영 변수가 많아진 까닭이다.

 

다만 이 부회장이 차기 성장 동력으로 꼽은 시스템반도체와 5G, AI(인공지능), 바이오, 전장 등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인재 발탁이 활발할 것으로 보인다. 또 올해 실적이 좋았던 모바일과 반도체, TV와 생활가전 사업부는 신상필벌에 의거, 대거 승진이 점쳐진다. 반면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 이영호 삼성물산 대표,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 김용관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장, 이왕익 부사장, 김종중 삼성바이오로직스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재판에 연루된 현직 읨원들은 변화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부회장이 준법 경영의지를 거듭 강조해 온 데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부정부패와 같은 과거의 폐단을 끊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장은 코로나19라는 상수 속에 안정적인 경영과 성장 동력 확보를 동시에 추구하고자 세대교체를 지속할 것이라며 “70년대 젊은 임원이 전면에 배치되고 외국인과 여성 인재 발탁도 두드러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어 오 소장은 경영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어 임원 수는 전반적으로 축소될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선 마땅한 대응책이 적다보니 기존 패턴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다소 있을 순 있다고 밝혔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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