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채용자 61명 중 41명 근무중
은행마다 입장 달라…채용취소 어려울듯

 

[스페셜경제=윤성균 기자]2018년 은행권 채용절차 모범규준이 마련되면서 은행권 채용에 큰 변화가 있었다. 시중은행 채용에 필기전형이 일반화됐고, 성별·연령·출신학교·출신지·신체조건 등을 이유로 차별할 수 없도록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됐다. 부정입사자에 대해서는 채용을 취소하고, 관련 임직원은 징계할 수 있도록 했다. 2017년 국정감사에서 처음 불거져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은행권 채용비리’가 가져온 변화다.

잠잠하던 은행권 채용비리 이슈는 올해 국감장에 3년만에 재등판했다. 2017년 드러난 은행권 채용비리 사태의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다. 부정채용자 상당수가 버젓이 은행을 다니고 있고, 피해자 구제는 없던 일이 됐다.

결국 은행 경영진이 국감장에 불려가 한바탕 곤혹을 치렀다. 논란이 커지자 우리은행이 처음으로 부정입사자에 대한 채용 취소 절차에 돌입했다. 아직 법률 검토 단계이지만 향후 결과에 따라 파장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한은행, 국민은행, 하나은행 등 나머지 주요 시중은행에도 부정입사자 상당수가 근무하고 있어 이들에 대한 조치에 이목이 쏠린다.

21일 배진교 의원이 분석한 은행권 채용비리 관련 재판기록에 따르면, 대법원 최종 판결에서 유죄로 인용된 부정채용자 61명 중 상당수가 아직 시중은행에 근무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은행·신한은행, 부정입사자 37명 근무 중
은행권 채용비리 사태를 촉발했던 우리은행의 경우, 전 국가정보원 처장의 딸 A씨가 OO지점 계장으로 근무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015년 공채에 지원해서 졸업학점 2.83으로 서류필터링 대상이이었다. 전 국정원 처장인 아버지가 직접 나서 “딸의 학점이 썩 좋지 않으니 잘 부탁한다”고 청탁한 결과 최종합격했다.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의 조카인 B씨도 A씨와 같은 해 공채 지원했다. 서류탈락 대상이었지만, 면접 기회가 주어졌고 최종 합격했다. B씨는 OO지점 계장으로 근무 중이다. 이런 부정채용자가 총 19명에 달한다.  

 

▲ 대법원 확정 판결로 인용된 은행권 부정채용자 현황 (자료출처=배진교 의원실)

금감원의 첫 전수조사에서 4대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무풍지대였던 신한은행은 이후 재조사에서 채용비리가 대거 드러나면서 거센 후폭풍을 맞았다. 특히, 신한은행 인사부서는 경영진의 추천 명단을 별도로 관리해 전 금융지주 회장 등 전·현직 임원의 친인척과 관련인 추천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전 금융지주 최고경영진 관련인, 지방 언론사 주주의 자녀, 전 고위관료의 조카 등으로 표기된 지원자들이 연령초과 등의 이유로 서류심사 대상 선정기준에 미달하고 일부는 실무면접에서 최하위권 등급을 받고도 해당 전형을 모두 통과해 최종 합격했다. 이런 방식으로 합격한 부정채용자 중 18명이 아직 근무 중이다.

국민은행·하나은행, 수백건 채용비리 재판 중
국민은행은 검찰의 채용비리 수사에서 가장 많은 368건의 사례가 적발됐다. 국민은행은 2015년 신규 채용 당시 남성을 더 많이 뽑기 위해 남성 지원자 113명의 점수를 높이고 여성 지원자 112명의 점수를 낮추는 방식으로 여성 합격자를 탈락시켰다. 또 청탁대상자 20명을 포함한 총 28명의 면접점수를 조작했다.
▲ 은행권 채용빌 관련 하급심 재판 상황 (자료출처=배진교 의원실)

하나은행은 검찰 조사에서 국민은행 못지 않은 239건의 사례가 적발됐다. 금감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2016년 공채에 앞서 55명의 이름이 담긴 리스트를 작성했다. 리스트에 포함된 55명 전원이 서류전형을 통과했고, 이후 필기전형을 거쳐 6명이 남았고 임원 면접에서 전원 합격했다. 또 하나은행은 특정 대학 출신 지원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임원 면접점수를 조정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실제로 S대를 나온 한 지원자는 당초 임원면접에서 5.00점 만점에서 2.00점을 받아 불합격 위기에 놓였지만, 면접 종류 후 점수가 4.40으로 조종돼 최종 합격했다. H대 분교 출신인 또 다른 지원자는 임원면접에서 4.80점의 고득점을 받아 합격권에 들었다가 이후 3.50점으로 하향 조정돼 탈락했다.

채용비리에 연루된 하나은행 인사담당자 4명은 최근 검찰로부터 1년 6개월 등 징역형을 구형받아 내달 20일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채용취소 절차 돌입…타행으로 확대될까

시중은행들은 과거 채용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부정채용자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없고, 면접 자료가 이미 파기돼 피해자를 특정하기 힘들어 구제도 쉽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올해 국정감사에서 채용비리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배진교 의원은 “2018년 은행 채용비리 사태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해당 직원의 채용을 유지하며 정당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민병덕 의원은 “우리은행 채용 채용비리에서 부정청탁에 연루된 것으로 나타난 직원 27명 가운데 19명이 아직 근무하고 있다”며 “이런 상태에서 재발 방지대책을 이야기하기는 어렵다”고 따졌다.

결국 우리은행이 먼저 칼을 빼들었다. 채용비리 부정입사자들의 채용 취소와 관련해 법률적 검토 절차에 들어갔다. 법적으로 채용 취소가 가능한지 여부와 채용 취소 이후 소송 가능성에 대해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법률 검토에 들어갔다고 해서 당장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법률 검토라는 게 정확하게 이뤄져야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외부 로펌에 맡겨야 하니 금방 결론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채용취소 절차에 돌입했지만, 나머지 시중은행은 여전히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아직 법원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채용취소 등 조치에 대해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나은행과 국민은행 관계자도 지금 시점에서는 채용 취소를 논의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일각에서는 시중은행별로 채용비리에 대한 입장이 달라 채용취소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권 채용비리로 함께 묶이고 있지만, 은행마다 상황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경우 구체적인 청탁자와 채용 리스트가 존재하는 청탁에 의한 채용비리 성격이 크지만,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채용 공정성이 문제가 된 경우라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부정입사자를 특정하기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은행별로 입장 차이가 있다”며 “국감 이후 금융당국이 어떻게 압박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장 채용취소 움직임이 확대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스페셜경제 / 윤성균 기자 friendtolife@speconomy.com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