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심의위 수사 중단 및 불기소 권고에도 ‘장고’
혐의 입증 실패·전문가 설득 불발에도 고심 거듭
“스스로 만든 개혁 걷어차면 자존심 아닌 아집”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기소 여부를 놓고 검찰의 장고가 길어지고 있다. 재계와 법조계에서는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를 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지=뉴시스)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타격이 본격적으로 반영된 2분기 삼성전자는 예상을 뛰어넘는 8조대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자축이라도 해야 마땅할 삼성전자 내부에선 불안감이 감지된다. 삼성을 둘러싼 악재가 현재 진행형인 까닭이다. 세계 시장에서 선도기업인 만큼, 삼성전자는 국내외 정세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세계 주요국가들이 보호 무역주의를 강화하는 가운데 미·중 무역갈등과 이에 따른 유럽 등의 화웨이 제재 합류, 일본 수출규제 지속은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세계 경제의 역성장이 가시화된 데다 21대 국회 들어 반기업 흐름이 뚜렷해지면서 삼성의 경영시계는 안갯속이다.

 

삼성전자는 불확실성 극복을 위해 기술로 시장을 압도하는초격차 전략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이 마저도 이재용 부회장의 기소 여부에 따라 속도 조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재용 기소 위해 개혁 걷어차나뿔 바로잡자고 소 잡은 농부 꼴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가 나온 지 2주가 넘었지만 검찰은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지난달 26일 수사심의위는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다. 이후 2주가 넘도록 검찰은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이전에 수사심의위의 권고가 내려진 뒤 1~2주 이내 결정을 내렸던 점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일단 검찰 내부 갈등이 깊어진 점이 작용했다. 당초 15일 윤석열 검찰총장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대면보고가 재개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부회장 기소 여부도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높았다. 검언유착 수사를 놓고 윤 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성윤 지검장이 갈등을 빚으면서 삼성 수사에 대한 결정도 미뤄졌다. 윤 총장이 추 장관의 수사 지휘를 받아들이면서 내부 갈등은 일단락됐지만, 이날 대면보고가 또다시 불발됐다. 통상 중요 사건에 대해 대면보고가 이뤄졌던 점을 고려하면, 이 부회장 기소 여부도 다음주께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역풍에 대한 부담감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판단이다.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권고는 일견 예상된 측면이 있다. 검찰은 혐의 입증에 실패하며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바 있다. 이에 앞서 법원과 관계기관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문제가 없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2017년 삼성물산 합병 무효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고 합병이 승계와 관련 있다고 해도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며 기각 판결을 내렸다. 금융감독원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에 대해 201612감사인의 의견과 한국공인회계사의 감리 결과 회계기준 위반사항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검찰은 수사심의위에서 뒤집기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검찰이 주장하는 죄질의 불량성사안의 중대성에 위원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이 시세조종과 분식 회계 등에 관여한 증거나 근거가 있는지를 묻는 위원들에게 검찰은 충분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 4, 법학교수 4, 종교인, 언론인, 회계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13명의 위원 중 10명이 불기소에 찬성했다. 삼성 수사를 지지해 온 전문가가 최소 4명 이상, 이들도 검찰 수사의 타당성을 납득하지 못했다는 뜻이 된다.

 

더욱이 수사심의위가 지닌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권고를 무시하기 어렵다. 검찰은 내부 개혁을 위해 2018년 수사심의위를 도입했다. 기소 독점주의의 폐단을 막고 수사의 중립성 및 적절성을 담보함으로써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수사심의위의 권고가 강제성이 없음에도 지금까지 8차례 모두 따른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로서는 이 부회장 기소가 계륵이 됐다.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따르면 지금까지의 수사가 부실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셈이 된다. 검찰은 18개월 간 50여차례 압수수색, 110여명에 대한 430여회 소환조사 등을 벌이며 저인망식 수사를 진행했다. 반면 기소를 강행한다면 수사심의위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검찰 개혁의 걷어차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에 다시 불을 당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따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검찰이 수사 성과를 내겠다는 일념에서 기소부터 하고 보는관행을 되풀이 해왔는데 이를 바로 잡는 시발점으로 삼자는 의견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검찰은 자존심을 버리는 편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며 압도적 다수가 불기소 판단을 했는데도 (검찰이) 스스로 만든 이 제도를 걷어찬다면 자존심이 아니라 아집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배임 수사의 경우, 대부분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기업에 으름장 놓는 수사가 되풀이됐다는 것이라며 이 부회장 수사에 대해 국민의 상식, 법의 판단은 위법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거다 법적 안정성을 해치면서까지 기소를 강행한다면 정치검찰오명이 더욱 짙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이 부회장 기소를 압박하는 일각의 여론을 명분 삼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권 의원과 진보 성향 시민사회단체와 언론 매체 등은 법의 정의를 강조하며 기소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헌법 전문 변호사는 “‘법 앞에 평등을 얘기하면서 왜 이 부회장만은 다르게 보자고 하느냐. 대기업 총수라는 이유로 무리하게 벌주자는 얘기밖에 안 된다고 꼬집었다.

 

삼성전자는 미래기술 선점에 서두르고 있다. 2030년 상용화 예정인 6G 기술 비전을 담은 백서를 낸 데 이어, 차세대통신연구센터를 중심으로 해외연구소, 국내외 대학, 연구기관들과 협력을 통해 6G 통신 기술의 글로벌 표준화를 주도적으로 나서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협력사-지역사회-대학과의 삼각 협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생태계를 확장시키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 전장, AI 등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재 영입, 기업 간 협력에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며 공들이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교각살우고사에 나오는 소 꼴이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조금 삐뚤어진 뿔을 바로잡으려다 오히려 뿌리채 뿔이 뽑혀 죽은 소처럼 검찰의 기소 강행으로 총수 리더십에 공백이 생긴다면 삼성전자는 대규모 투자와 장기 전략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삼성전자는 30대 그룹 중 10년째 자산규모 1위를 지키고 있다. 아시아 시장에서는 애플을 제치고 9년 연속 최고 브랜드에 선정되며 브랜드 파워를 입증했다. 이같은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와 장기 전략에 제동이 걸린다면 글로벌 경쟁력은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리더십은 수치로 입증되는 게 아니다. 변화무쌍한 시장 상황이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주가 이상의 가치, 기업의 미래를 만드는 역할이라며 한때 노키아가 핸드폰 시장 1위였지만 지금은 애플이 선두기업이 되지 않았나. 오너리더십이 뒷받침돼야 시장을 선도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만들 수 있는데, 검찰이 무조건 기소해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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