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엔비디아-ARM 인수 검토’
ARM, 스마트폰 AP 95% 설계
인수 때 GPU·CPU 기술 석권
AI·자율주행 등 미래 반도체 선도
삼성전자, ‘반도체비전 2030’ 제동 우려

▲게티이미지
[스페셜 경제=변윤재 기자] 지난달 30. 삼성전자가 깜짝 실적을 낸 날, 이재용 부회장은 현장에 있었다.

 

이 부회장인 찾은 곳은 삼성전자 온양사업장. 이 곳은 차세대 패키지 기술인 FO-PLP(Fan Out Panel Level Package)을 개발하는 곳이다.

 

그는 이날 덕담 대신 다시금 고삐를 죄었다. “포스트 코로나의 미래를 선점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도전해야 도약할 수 있다. 끊임없이 혁신하자고 강조한 이 부회장에게서 세계 반도제 시장의 격변기를 맞은 삼성전자의 위기감이 읽힌다.

 

삼성전자는 1992년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내놓으며 단숨에 세계 1위로 도약 이래 28년 동안 세계 반도체 시장의 선두주자였다. 그러나 최근 세계 반도체 시장의 판도가 달라졌다.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까지 다 하는 종합반도체 기업대신 TSMC, AMD처럼 반도체 설계나 위탁생산만을 집중적으로 하는 기업들이 고공행진 중이다.

 

TSMC2분기 영업이익은 10300억원으로 삼성전자(94600억원)를 뛰어넘었다. 지난해 3분기 이후 TSMC는 내리 3번 삼성전자를 제쳤다. 인텔의 경쟁사이자 컴퓨터 CPU 업체 AMD는 올 2분기 매출 193000만달러(23200억원)를 거뒀다. 특히 순이익은 15700만달러(18742660만원)에 달해, 1년 전과 비교해 무려 5배가 늘었다.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시장 1위 석권을 노리고 삼성전자로서는 특화된반도체 기업의 급성장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 엔비디아와 ARM처럼 각각의 핵심기술을 가진 기업 간 결합이 이뤄질 경우, 삼성전자의 반도체 비전 2030은 제동이 걸릴 수 있다.

 

ARM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회사다. 세계 스마트폰 AP 95%ARM 설계도를 활용하고 있다. 삼성전자, 퀄컴, 애플 등도 모두 ARM으로부터 로열티를 내고 설계도를 받는다. ARM의 설계도에 자사의 기술을 더해 스마트폰의 두뇌인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칩도 만든 것이다. 공장 없이 설계만 전문적으로 하지만, ’팹리스 중의 팹리스로 불릴 만큼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다. 지난해 ARM 설계도를 활용한 반도체의 생산 개수는 230억개, 창립 이후 30년 간 1600억개에 달한다.

 

1990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설립된 ARM은 반도체의 기본 설계도를 만든다. 스마트폰의 두뇌인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은 물론 서버용 반도체, 인공지능(AI) 반도체 등을 설계한다. 모바일 AP에 들어가는 GPU(그래픽처리장치) 관련 IP(설계자산)을 갖고 있다. ARM을 품에 안는다면, AI, 5G(5세대) 이동통신,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커넥티트와 같은 미래 기술을 선점할 수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메모리·비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 석권을 노리고 삼성전자가 ARM 인수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삼성전자가 ARM을 인수한다면 반도체 설계 역량을 강화할 수 있을 뿐더러, 엑시노스 CPU(중앙처리장치)·GPU 성능 향상을 꾀할 수 있다. 특히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미세공정 경쟁을 벌이고 있는 TSMC와의 격차를 줄일 수도 있다. ARM은 펩리스(반도체 설계업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간 중계역할을 하는 디자인 하우스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클라우드 설계 플랫폼을 제공하는 등 디자인 하우스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있는 만큼,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전망이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ARM 인수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퀄컴이 2018년 네덜란드 NXP를 인수하려다 중국의 제지로 좌초된 것처럼 삼성전자도 반독점법 규제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IBMRISC-V 아키텍처의 오픈소스화로 ARM이 지닌 다음 세대 기술이 개발됨에 따라 시장 영향력도 줄어든었다. IBMRISC-VARMRISC보다 칩 면적과 소비 전력을 절반이상 줄일 수 있는 기술이다.

 

ARM과의 합병 대상으로 가장 유력하게 손꼽히는 것은 엔비디아다. 지난달 31(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을 비롯한 외신은 미국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기업인 엔비디아가 영국 반도체회사 ARM 인수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인수 규모는 320억달러(381100억원) 선으로, 5년 전 소프트뱅크가 ARM을 인수한 금액과 비슷한 수준이다.

 

당초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2016년 은퇴를 번복하면서까지 ARM 인수를 밀어붙였다. 소프트뱅크 사상 최대 규모(320억달러)이자 손 회장이 단행한 첫 대형 투자였다. 손 회장은 당시 바둑으로 치면 50() 앞을 내다보고 인생 최대의 베팅을 했다미래 성장 가능성을 감안하면 10년 후엔 싸게 샀다고 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위워크 등 스타트업 투자 실패와 코로나 사태에 따른 경영난으로 손 회장은 결국 4년 만에 ARM을 매물로 내놨다.

 

ARM 매각설은 지난달 들어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난달 13(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이 소프트뱅크가 ARM을 재매각하거나 상장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한 데 이어 23(현지 시각) 블룸버그는 미국 그래픽 칩 제조업체인 엔비디아가 ARM 홀딩스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엔비디아는 세계 최대 GPU 설계·제조사다. 데이터센터, AI, 빅데이터 분야에 GPU가 널리 쓰이면서 IT 생태계의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인텔을 제치고 시가총액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폭풍성장 중이다.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한다면 CPU 기술까지 갖추게 돼 자율주행과 AI, 데이터센터 등 미래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게 된다.

 

게다가 엔비디아가 특허료를 높게 받는 등 폐쇄적인 정책을 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삼성전자로서는 부담스런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기술 초격차의 속도를 올리기 위해 협업을 강화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11월 모바일용 CPU 자체 개발 프로젝트 몽구스를 중단하고 ARM 기반 CPU 개발로 전략을 선회했다. 모바일용 GPUAMD와 손잡고 기술고도화에 매진하고 있다.

 

다만, 엔비디아의 인수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물인터넷 발전 속도가 예상보다 더딘데다 데이터 센터용 서버칩 시장에서 인텔의 x86ARM보다 선호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엔비디아와 ARM의 독보적인 지위가 오히려 독과점 우려를 낳아 각국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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