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남·김현석·고동진 대표이사 체제 유지…경영 안정 꾀해
전문가·젊은 인재 전진 배치…연륜자엔 미래기술 연구 맡겨
생활가전 출신, 사장으로 첫 발탁…내부 사기 진작
사업·연구개발 속도 동시에 올려 반도체·QD·신가전 초격차 강화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뉴삼성을 향한 신호탄이 쏘았다.

 

이 부회장은 지난 5월 대국민사과를 통해 “2014년에 회장님이 쓰러지시고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깨닫고 배운 게 적지 않다. 미래 비전과 도전 의지를 갖게 됐다끊임없는 혁신과 기술력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신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하겠다고 강조했다. 조부인 이병철 창업주의 사업보국,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에 이어 뉴삼성으로 퀸텀점프를 다시 한번 이루겠다는 각오였다.

 

2일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단 인사에서는 이 부회장의 뉴삼성에 대한 구상이 드러났다. 바로 세계 1위를 향한 초격차다. 연륜이 풍부한 인물에게 신기술 연구개발을, 사업부문은 젊은 전문가에게 맡겼다. 사업과 기술 개발을 속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동시에 성과를 올린 인물에게는 승진으로 보상해 내부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예상 깨고 12월 첫째주 인사 단행

 

삼성은 통상 12월 첫째주 목요일에 사장단 인사를 발표하고 이어 후속 임원 인사을 진행했다. 그러나 최근 5년간 삼성의 인사를 일정치 않았다. 지난해의 경우, 국정농단 파기환송심과 노조와해 재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등으로 해를 넘겨 올해 1월 임원인사를 발표했다. 올해 역시 상황이 복잡했다. 삼성의 구심점이었던 이건희 회장이 타계한 가운데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파기환송심과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과 같은 사법리스크에 붙잡혀 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인사가 지연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었다.

 

그러나 삼성은 예정대로 인사를 단행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중무역갈등, 미국 바이든 행정부 출범, 동남아시아 시장과의 경제협력 강화, 공정경제 3법을 비롯한 반기업법 입법화 등 대내외 변수가 이어지자, 위기관리에 선제적으로 나서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거취에 관심이 쏠렸던 김기남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 김현석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 고동진 IT·모바일(IM)부문 사장의 3인 체제는 그대로 유지해 안정감을 줬다.

 

대신 혁신 기조를 뚜렷히 하면서 기술 경쟁력을 강화해 초격차를 확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 삼성전자 2일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왼쪽부터) 이재승 생활가전사업부장 사장,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 사장, 최시영 파운드리 사업부장 사장 (사진 제공=삼성전자)

D램 전문가를 수장으로메모리 초격차 확대 의지

 

핵심 사업부인 반도체 분야에서는 초격차 전략이 더욱 확대된다. 메모리사업부장(사장)에는 이정배 D램개발실장(부사장),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에는 최시영 글로벌인프라총괄 메모리제조기술센터장(부사장)이 발택됐는데, 이들은 전임자보다 4~5살이 적은 젊은 피이자 해당 분야에서 내공을 지닌 인물들이다.

 

이정배 사장은 30년 가까이 D램 한 길을 걸어온 전문가로, D램설계팀장과 전략마케팅팀 상품기획팀장, 품질보증실장을 두루 거쳤다. 메모리 전반에 대한 이해가 깊고 고객의 니즈 파악에도 탁월하다. 삼성전자의 메모리 사업은 현재 경쟁자들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화웨이 규제로 주요 수요처를 잃은데다, 미국 마이크론이 176단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공개하며 적층기술에서 한 발 앞서 나갔다. SK하이닉스는 인텔의 낸드 사업부를 전격 인수하며 덩치를 키우고 있다.

 

삼성전자도 첨단 기술력을 강화해 공격적으로 대응 중이다. EUV(극자외선) 공정을 메모리 전반에 도입하고, 관리전담팀을 꾸려 품질을 강화한다. 또 내년에는 7세대 낸드를 본격 양산하고, 적층을 256단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더블 스택 기술로 차별화를 꾀한다. D램 전문가인 이 사장을 통해 이러한 초격차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파운드리 공정·제조 효율화로 시스템 1시동

 

2030년 세계 1위 달성을 목표로 하는 시스템반도체에서는 미세공정에 힘을 줬다. 파운드리 수장에 오른 최시영 사장은 1995년 삼성전자 메모리본부 반도체연구소에 입사한 이래 반도체 전 제품에 대한 공정개발과 제조 부문을 이끌어 온 공정·제조 전문가로 꼽힌다.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전체 반도체 시장의 70%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 중 파운드리는 고사양 제품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전세계 파운드리 시장은 2024944억달러까지 커질 전망이다. 삼성전자도 시스템빈도체 1위의 견인차가 될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에 공들이고 있다. 2022년까지 3나노미터(·100만분의 1) 양산을 선언하고 초미세공정과 패키지 기술을 고도화 중이다. 이에 따라 IBM의 차세대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파워10’, 엔비디아의 신형 그래픽처리장치(GPU), 퀄컴의 차세대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스냅드래곤875’ 등을 연달아 수주하며 3분기 분기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다만 대만 TSMC와 기술력으로 자웅을 겨루고 있음에도 시장 점유율이 3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삼성전자는 공정개발 전문성과 반도체 전 제품 제조 경험을 지닌 최 사장을 통해 파운드리 기술력과 생산력을 동시에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CTO 신설공정개발역량 최대로

 

초격차의 발판이 될 차세대 기술 개발도 힘을 싣는다. 신설된 최고기술책임자(CTO)에는 선단 공정 개발을 주도한 인물을, 종합기술원장에는 메모리 초격차를 이끈 주역을 앉혔다. 사업 현장에서 연구개발 경험이 풍부한 만큼, 신기술 개발에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성과를 일굴 것으로 기대된다.

 

신임 CTO는 파운드리사업부장이었던 정은승 사장이 맡았다. 정 사장은 미국 텍사스 주립대 물리학 박사 출신의 반도체 공정개발 전문가다. 20175월 파운드리사업부장을 맡아 선단공정 개발을 진두지휘하면서 EUV 공정 도입 등을 통해 파운드리사업 성장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다. 반도체연구소와 생산기술연구소를 관장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반도체 공정개발 연구를 통해 첨단 기술력을 제고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미래 혁신 기술을 연구하는 종합기술원의 수장은 진교영 메모리 사업부장(사장)이 맡았다. 진 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 박사 출신으로 메모리 공정설계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20173월 메모리사업부장을 맡아 절대 우위 경쟁력을 발휘하며 글로벌 초격차를 이끌어 온 주역이기도 하다. 사업 현장에서의 경험이 풍부한 진 사장을 종합기술원장에 앉힌 것은 반도체는 물론, AI(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SW), 전장부품,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에서의 신기술을 확보하고 핵심 기술 경쟁력을 제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분석된다.

 

나답게변한 가전, 세계 1등 노려

 

코로나19 여파 속에서도 좋은 실적을 달성했던 CE부문 생활가전사업부장에는 이재승 부사장이 기용됐다. 삼성전자 창립이래 생활가전 출신 최초의 사장 승진자다.

 

이 사장은 삼성전자 생활가전 역사를 일궈낸 산 증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냉장고개발그룹장, 생활가전 개발팀장 등을 역임하면서 무풍에어컨, 비스포크 시리즈 등 신개념 프리미엄 가전제품 개발을 주도했다. 1월 생활가전사업부장으로 선임된 뒤 비스포크 냉장고를 비롯해 개인 맞춤형 가전을 선보였다.

 

특히 이제는 가전을 나답게라는 통합 슬로건 아래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과 생활방식이 반영된 가전으로 시장의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따라 건조기 80%, 세탁기 30% 매출이 늘었다. 식물재배기, 와인·맥주 전용 냉장고, 신발관리기처럼 신제품을 꾸준히 발굴하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생활가전에 대한 이해가 깊은 이 사장을 승진시켜 가전사업에서도 세계 1등을 차지하겠다는 계획이다.

▲ 삼성디스플레이가 사장단 인사를 2일 발표했다. (왼쪽부터)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된 최주선 대형디스플레이사업부장(사장)과 사장으로 승진한 김성철 중소형디스플레이사업부장 (사진 제공=삼성디스플레이)
 

디스플레이 무게축은 QD젊은 인재 발탁 계속

 

디스플레이 부문 역시 QD(퀀텀닷)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 역량 강화에 주안점을 뒀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사상 처음으로 2인 사장 체제를 구축했는데, 중소형디스플레이사업부장이었던 김성철 부사장과 대형디스플레이사업부장을 맡았던 최주선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최 부사장은 대표이사로 맡는다. 3년 임기를 채운 이동훈 사장은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고문으로 위촉된다.

 

최주선 신임 대표는 KAIST 전자공학 박사 출신으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D램 개발실장, 전략마케팅팀장, DS부문 미주총괄을 역임한 반도체 설계 전문가다. 1월부터는 대형 디스플레이 사업부장을 맡아 QD 디스플레이 개발을 이끌고 있다.

 

김성철 신임 사장은 경희대 물리학 박사 출신으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개발실장, 디스플레이연구소장, 중소형디스플레이 사업부장을 역임하면서 OLED 사업을 성장시킨 중소형 OLED 개발 전문가다.

 

현재 삼성디스플레이는 2025년까지 131000억원을 투자, LCD(액정표시장치)에서 QD로 전환할 계획이다. 반도체 성공 경험을 가진 최 신임 대표가 키를 잡고 대형디스플레이에선 QD 일류화를 견인하고, 김 사장이 디스플레이사업의 차세대 연구개발 역량을 한단계 끌어올려 디스플레이에서도 초격차를 일구겠다는 이 부회장의 구상이 읽힌다.

 

이 밖에 삼성SDS 신임 대표이사(사장)에는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 출신의 황성우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이 자리를 옮겼다. 소프트웨어를 포함한 다양한 개발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나노 분야 전문가다. 향후 SDS의 글로벌 역량을 더욱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남편인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스포츠마케팅 연구담당(사장)은 글로벌전략실장으로 이동해 삼성의 글로벌 핵심 인재 영입에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됐다. 이 부회장은 전문성과 통찰력을 갖춘 최고 수준의 경영만이 생존을 담보할 수 있다.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와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한편, 삼성전자와 계열사들은 조만간 부사장 이하 내년도 정기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사장 인사로 전체 사장단 평균연령이 58세로 종전(59)보다 1살 젊어졌는데, 이 같은 기조는 부사장급 이하 인사에서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예측된다. 핵심 사업부의 성과에 따라 젊은 인재를 대거 발탁하고 사업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파격 등용할 것이라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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