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이박김 저주’에서 살아남은 이재명
…여권 대선판 최대 변수로 작용할까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진=뉴시스, 디자인=스페셜경제 강민철 팀장)

 

[스페셜경제=신교근 기자] 지난 16일 오후 4시경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1심 선고 공판이 진행된 경기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1부. 


재판장인 최창훈 부장판사의 “피고인은 무죄”라는 선고에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이재명 지사의 지지자들은 재판장의 이름을 연호하며 서로 끌어안고 울기도 했다.

이 지사는 이날 1심에서 기소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친형 강제입원) △공직선거법 위반(친형 강제입원) △공직선거법 위반(대장동 개발업적 과장) △공직선거법 위반(검사 사칭)의 네 가지 혐의를 모두 ‘올킬(무혐의)’시키고 당당한 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법정을 걸어 나왔다.

이른바 ‘전투형 노무현’이라 불리는 이 지사가 영화 ‘해바라기’의 오태식(김래원)처럼 “이재명이... 돌아왔구나...”를 여지없이 정치판에 보여준 장면이다.

영화에서 오태식이 “병진이형은 나가있어”라고 한 것처럼 이 지사가 마치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친문(친문재인)은 나가있어”라고 사자후를 내지르듯 그는 모든 의혹에서 벗어나 무죄라는 ‘날개’를 달고 보란 듯이 부활했다.

이에 <스페셜경제>가 집권여당의 비주류지만 ‘비문 매머드’로써 친문세력을 제치고 향후 대권주자까지 날아오를지도 모르는 이 지사의 잡초 같은 정치인생에 대해 짚어봤다.

 

벼랑 끝서 살아 돌아 온 이재명

전투형 노무현답게 큰길’갈까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후 정치권에선 ‘안(安)·이(李)·박(朴)·김(金)’이라는 음모론이 나왔다.

항간에 떠돌고 있는 안이박김 시나리오에 따르면,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이재명 경기지사는 날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까불면 날린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지만, 김에 대해선 ‘친문 적자’인 김경수 경남지사냐 아니면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냐는 말들이 나왔다.

‘친노(친노무현) 적자’인 안 전 지사는 지난해 3월경 이른바 ‘미투(mee too)열풍’이 붐과 동시에 충남지사 당시 공보비서였던 김지은 씨가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를 통해 ‘안희정 지사 성폭력’을 폭로했고, 그의 정치인생은 파탄을 맞았다.

안 전 지사는 ‘성폭력 혐의’에 대해 같은 해 8월 1심에서 무죄를 받았으나, 지난 2월 2심에선 징역 3년 6개월을 받고 법정구속 됐다. 항간에 떠돌던 안이박김 저주가 현실화된 셈이다.

그러나 이 지사는 ‘안이박김 저주’에서 살아남았다.

 

 

‘여배우 스캔들’부터 ‘일베저장소 회원설’까지

그에겐 성남시장 시절인 2010년부터 여배우 김부선 씨와의 불륜 스캔들이 매 선거 때마다 단골손님으로 등장해 발목을 잡았다.

지난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토론회에서 바른미래당 김영환 경기지사 후보가 이 스캔들을 본격적으로 언급하면서 핫이슈로 급부상하게 됐고, 이 지사는 이를 강력 부인했지만 바른미래당 측은 ‘여배우 스캔들’과 관련해 허위사실공표죄로 고발했다.

여기에 김부선 씨가 이 지사의 은밀한 신체 부위에 점이 있다고 폭로했고 나아가 명예훼손 고발 등이 더해지면서 ‘이점명’이라는 오명까지 썼던 이 지사는 ‘알몸신체검사’라는 정면 돌파로 여론을 뒤집었다.

결국 검찰은 이 사안을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또한 이 지사가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결정되자 네티즌들 사이에선 ‘이재명 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 및 일베 고렙(레벨23)’ 의혹이 제기됐고, 경기도지사에 당선된 직후에는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보도로 ‘성남 조폭 국제마피아파’와의 연류설이 불거졌지만 검찰 수사를 통해 실체 없는 루머였던 것으로 일단락됐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지방선거 과정에서 불거졌던 이른바 ‘혜경궁 김씨’ 논란은 이 지사의 목을 조였다.

혜경궁 김씨란 별칭이 붙은 ‘@08__hkkim’ 트위터 계정주는 자신의 트위터에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을 비난했는데, 친문 네티즌들 사이에선 ‘혜경궁 김씨’가 이 지사의 아내(김혜경 씨)가 아니냐는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됐다.

심지어 문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들은 주요 일간지에 ‘혜경궁 김씨는 누구입니까’라는 광고까지 내기도 했다.

혜경궁 김씨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지사는 경기도청 집무실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 당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 대목에서 ‘전투형 노무현’다운 싸움닭 기질이 발휘된다.

이 지사 측은 문 대통령의 아들인 준용 씨의 ‘특혜 채용 의혹’을 도마에 올리는 일격필살을 날렸고, 이 지사의 일격필살이 권력자의 폐부를 꿰뚫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검찰은 ‘직접 증거가 불충분하다’, ‘소유주를 특정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이 지사는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이 지사가 이른바 ‘문준용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운 것을 두고 보수우파 일각에선 ‘신의 한수’였다는 평가도 뒤따랐지만, 이로 인해 문 대통령 측과 이 지사 측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장애 6급’ 왼손으로 마이크를 잡는 이재명

이 같이 숱한 고소고발의 ‘천로역정’을 겪어도 이 지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가 살아온 잡초인생이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다.

이 지사는 1963년 경북 안동시 빈농 노름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의무 교육인 초등학교만 졸업한 채 이른 나이부터 공장 일을 하게 됐다.

이 지사가 여러 공장을 전전하며 얻게 된 질병으로는 △프레스기에 왼쪽 팔이 끼어 장애 6급 판정 △벤젠과 아세톤으로 인한 후각 상실 △손가락에 박혀있는 고무파편 △날카로운 함석들에 찔린 흉터자국 △작업장에서 두들겨 맞아 생긴 난청과 부분적 청각장애 등이다.

특히 공장 프레스기로 인한 왼쪽 팔 부상으로 인해 병역까지 면제를 받은 이 지사는 자존심이 강한 성격 탓인지 힘에 부쳐도 꼭 왼손으로만 마이크를 잡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이 지사는 우울증과 장애로 17살 때 여러 차례의 자살 시도를 했다. 그러나 첫 번째 시도에는 연탄불이 알아서 꺼져서 살았고, 두 번째 시도 때는 둘째형이 구해줘서 살았으며, 마지막 시도 땐 다량의 수면제를 구입하러 갔다가 눈치 챈 의사가 소화제를 대신 주는 바람에 죽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또한 소년공 시절 자신을 개 패듯 두들겨 패던 공장 관리자가 고졸인 것을 본 이 지사는 자신도 고졸이 되면 관리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넘어 중앙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하게 됐다. 이후 사법고시를 패스한 이 지사는 인권변호사로 자신을 알리기 시작했다.

“나는 제1주적 북한 추종하는 정신병자 아니다”

이러한 다사다난한 이재명 지사의 인생 탓인지 보수우파 일각에서도 이 지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없지 않아 있다.

특히 이 지사는 지난 2016년 11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종북이라고 비판하는 글에 대해 “북한은 뭔가.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 제1주적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자기들끼리 상속하고, 3대 세습하고,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체제를 추종하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종북은 치료받아야 할 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나는 진짜 북한을 안 좋아하고, 혐오한다”면서 “북한을 추종한다면 국가반역자이고, 나를 종북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주 결딴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며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면서 평등의 가치보다는 자유의 가치가 더욱 지지받았는데,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해도 평등을 얘기하면 빨갱이라고 몰아세우기 시작했다”며 자신에 대한 ‘종북몰이’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로 인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지사의 대북관과 안보관은 진보좌파 쪽 보단 오히려 보수우파 쪽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왼손으로 마이크를 잡은 채 연설을 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재명, 문심(文心) 뚫고 ‘큰길’ 갈 수 있을까?

지난 16일 오후 경기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이 지사는 1심 재판이 끝난 뒤 “사법부가 인권과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라는 것을 확인해 준 재판부에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며 “지지자들과 함께 큰길로 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친문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와 소셜미디어에선 법원이 김경수 경남지사에겐 유죄를 선고하고 법정 구속까지 했었는데, 이 지사에겐 무죄를 선고해 여권 내 분열을 유도한다는 ‘음모론’까지 나돌았었다.

또한 이 지사의 1심 선고 공판이 진행된 수원지법 앞에서는 친문계 당원들이 이 지사 무죄 선고에 대한 규탄 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이 지사 측 지지자들과 충돌도 일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보수우파 일각에선 이 지사의 무죄판결이 나쁠 게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 17일자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자유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비문 유력 인사이면서 컨트롤이 안 되는 이 지사가 살아 돌아와서 곤란해진 건 민주당의 친문이 아니겠냐”고 했다.

실제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지난 16일 <조선일보>를 통해 “이 지사 관련 현안이 터질 때마다 당원들로부터 항의문자나 전화가 쏟아진다”며 “이 지사에 대한 일부 당원들의 반감은 ‘민주당 지지자’인가 아닌가를 뛰어넘는 정도다. 당도 그런 상황을 알고 있어서 어떤 입장을 말하든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 지사는 문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의 마음을 뚫어내는 일이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이 지사가 당장 내년 총선 후나 문 대통령 임기 말에 여권의 대선판을 흔들 수도 있다는 정치권의 분석이 대두된다.

만약 내년 총선에서 제1야당이 현재 의석수(114석)를 뛰어넘는 성적을 거둠으로써 문재인 정권의 레임덕 현상이 앞당겨지면 친문진영에서 그토록 우려하는 ‘이재명의 역습’이 연출될 여지가 적지 않다는 것.

이렇게 되면 이낙연 국무총리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박원순 서울시장,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포진돼 있는 현 여권 대선판에 이 지사는 최대 변수로 작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당이 ‘이 지사의 무죄판결이 나쁠 게 없다’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으로 읽힌다.

1심 무죄를 받은 이 지사에겐 2심과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다.

이 지사가 최종심까지 살아남는다면, 그의 발목을 옥죄던 족쇄가 풀리면서 대부분 정치인들의 최종 목표라 할 수 있는 대권을 향한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되지 않을까.

증권시장에선 벌써부터 이 지사가 범여권 대선판세의 변수라는 것을 반증하듯 ‘이재명 관련주’로 불리는 에이텍은 이 지사가 무죄판결을 받은 16일 8,500원부터 20일 11,100원까지(종가기준) 상승했다.

 

▲직권남용·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 16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 열린 선고 공판을 마치고 손을 흔들며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 / 신교근 기자 liberty1123@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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