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프리즈너’ 마약 중독자‧‘아스달 연대기’ 노예 등…신스틸러 역할 톡톡

▲ 배우 백승익이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스페셜경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스페셜경제 = 원혜미 기자] 배우 백승익은 올해로 연기생활 11년차지만 이제 막 대중에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랜 무명 생활 끝에 찾아온 스포트라이트지만, 이 배우는 그런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나 미래보다는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막바지 장맛비가 내리던 날 서울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백승익을 만났다. ‘아스달 연대기’ 종영 이후 어떻게 지냈냐는 기자의 질문에 “과거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서 별 생각이 없다. 당장 오늘 혹은 다음날 빨리 집이나 연습실에 가서 연습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만 하면서 산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부당거래’의 킬러, ‘베를린’의 북한요원 등 그는 주로 악역을 맡았지만, 배역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고 했다. 그는 “아무리 작은 배역이라도 배우가 얼마만큼 치밀하게 연구하고 섬세한 연기를 펼칠 수 있느냐가 어떤 역할을 맡느냐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과연 이 배우가 ‘신스틸러’로 주목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 배우 백승익이 인터뷰 질문에 대답하며 웃음짓고 있다.

등장할 때마다 강렬하게 기억되는 ‘신스틸러’ 배우


Q. 최근 종영한 ‘아스달 연대기’에는 어떻게 합류했는지?

내가 맡은 역할은 물갈족 출신의 돌담불 길바닥 노예였다. 그런데 나도 왜 캐스팅된지 모르겠다(웃음). 당시 나는 다른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소속사 대표가 아스달 연대기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오디션 영상을 하나 찍어야 한다고 해서 한 5분 만에 대사 외워서 찍었다. 그러면서 매니저와 “야 이게 되겠냐?” 그랬는데 그쪽에서 와보라고 해서 된 거다.


아스달 연대기 김원석 감독님은 연기 디렉팅을 정말 잘하시고, 본인도 연기를 되게 잘하신다. 거의 다 보여주시는 분이다. 여기서는 이렇게 해라, 저기서는 저렇게 해라. 연기하며 많이 혼났다. 아스달 연대기뿐 아니라, 항상 캐스팅되는 이유를 모르겠다. 어? 내가 왜 됐지? 충격 받는다. 엄청 열심히 준비한 건 다 떨어지고, 우연히 오디션 본 건 붙고 그런 식이다.

Q. 차나라기라는 인물을 연기했는데, 준비는 어떻게 했나?

김원석 감독님은 원하시는 바가 하나부터 열까지 정말 확실하시기 때문에 특히 분장도 장난이 아니었다. 진흙탕 안에서 촬영했는데 제가 찍은 것 중에 탑 3에 들어갈 정도다. ‘드레드록스’ 같은 레게머리 헤어스타일을 했는데 처음엔 멋있더라. 그런데 얼굴에 기름 묻히고 나니 나중엔 정말 거지처럼 보이는 거다.

몸 분장할 때도 스태프 분들이 배우들 생각해준다고 몸에 바르는 흙을 미숫가루 베이스로 꿀이랑 해서 발라줬는데 처음에는 냄새가 정말 고소하더라. 그런데 나중에는 그게 썩어서 이상한 식초 냄새가 나는데, 그렇게 3개월을 촬영하고 나니 진짜 노역을 하는 것 같았다. 분장은 샤워하면 지워지는데 진흙은 계속 몸에 배서 다들 엄청 고생했다.

원래는 1월에 찍기로 했었는데 거의 5월 초부터 촬영이 시작됐다. 지금 생각해보니 추운 1월에 물속에 들어가서 찍는다고 생각하면. 5월에 찍게 된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Q. 올해 ‘닥터 프리즈너’라는 작품으로 배우로서 확실한 이미지 각인을 시켰다. 작품 속에서 정말 완벽한 마약 중독자의 모습을 보여주셨는데, 이 캐릭터의 연기는 어떻게 준비하셨나?

급하게 합류하게 됐다. 홍남표라는 역할이 좀 뒷부분에 나오지 않나. 영화 ‘베테랑’에서 유아인 씨가 표정연기를 디테일하게 잘하시는데 그것도 다시 보고 짧은 영어 실력으로 유튜브에서 마약 관련 영상도 찾아보며 열심히 참고해서 찍었다. 사실 제가 찍은 게 일부분만 나왔다. 녹화 후 마약 관련 큰 사건이 터져서 감독님께서 관련된 씬 다 빼고 정말 일부분만 내보내셨더라.

Q. 힘들었던 부분은?

다른 배우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 보통 촬영장에서는 대기 시간이 길다. 게다가 춥거나 덥거나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더 힘들다. 출연료의 60%는 촬영이 밀리면서 대기하는 비용, 30%는 추위 및 더위와 싸우는 비용, 나머지 10%가 연기에 대한 대가가 아닌가 싶다.

Q. ‘닥터 프리즈너’의 홍남표로 ‘신스틸러’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배우로서 이런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부당거래’, ‘의형제’를 찍으면서도 ‘신스틸러’라는 얘기를 들었다. 다른 사람의 신을 스틸하는 신스틸러 대신 내가 주인인 신, 나 혼자 나온 곳에서 당당하게 연기 하고 싶다. 닥터 프리즈너는 사실 늦게 합류해서 급하게 찍은 만큼 좀 아쉽다. 모니터링을 하면서 얼굴의 각도를 아주 조금만 달리했으면 더 살벌했을 텐데 이런 아쉬움이 든다.

처음부터 캐스팅돼서 호흡을 길게 가져갔더라면 준비를 더 많이 해서 나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또한 연기자의 한계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Q. 위에서 얘기한 ‘내가 주인인 신’은 어떤건가?
생각해놨다거나 맡고 싶은 역할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사실 어렸을 때는 킬러, 비정규직, 북한군과 같은 역할을 하면, 어머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있다. “너는 의사나 공무원 같은 역할은 안 하니?” 그 당시에는 이 말을 들으면 속상했다. 그런데 지금은 거지든 신하든 노비든 그 어떤 작은 역할이어도 내가 얼마만큼 치밀하게 연구하고 섬세한 연기를 펼치느냐? 그로 인해 그 연기력을 인정받는 게 어떤 역할을 맡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Q. 그동안 주로 악역을 많이 맡으셨는데 실제로는 어떤 모습인지?

맡은 캐릭터들의 모습과는 당연히 다르다.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굉장히 활발한 이미지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발적인 ‘아싸’(아웃싸이더)이기도 하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드라마 ‘우아한 친구들’에서 맡은 역이 형사인데 그중에서도 장비 같은, 머리보다는 몸으로 움직이는 성격의 형사여서 친구랑 있을 때처럼 계속해서 업(up)된 상태로 리딩 하려고 노력한다. ‘아싸’기질이 많은 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집에 돌아오면 진이 빠진다(웃음).

Q. 이제 11년차인데, 배우로 보람을 느낀 순간은?

당연히 출연료 들어올 때다. 농담이다(웃음). 사실 보람이라기보다는 진짜 좋아서 한다. 아스달 같은 경우 얼굴에 진흙을 바르고 그러면 내가 뭐 하는 거지 싶다가도 카메라가 돌아가면 정말 너무 좋고 재밌다. 이런 게 애증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Q. 대학 때 전공이 시각디자인이다. 어떻게 하다가 배우의 길을 걷게 됐나?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아버지가 서울대 붙으면 나만의 공간도 마련해주고 뭐든지 다 해주실 것처럼 말씀하셨다. 그래서 서울대 시각디자인과에 들어갔는데 막상 가서 보니 룸메이트가 있는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느 날 밤에 혼자 심심해서 학교를 돌아다니는데 유일하게 불이 켜져 있어서 들어간 방이 연극동아리였다.

그렇게 얼떨결에 연기를 시작하게 됐고, 출연하면 적지 않은 금액의 아르바이트 비를 준다는 말에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 그렇게 찍은 영화가 조성희 감독의 ‘남매의 집’이다. 그런데 그 영화가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칸 영화제까지 가게 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무대인사를 다니는 거에 취하게 되더라. 그렇게 영화의 끈을 놓지 않고 하다 보니 어느새 11년이 됐다.

Q. ‘서울대 출신 엄친아 배우’란 타이틀이 화제가 됐는데 부담스럽진 않나? 
부담된다. 서울대를 다니며 연극을 시작할 수 있었고 그 시절을 준 학교이기 때문에 서울대 출신이라는 게 싫은 건 아니지만 연기자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정말 연기 잘하는 연기자로 기억되고 싶다. ‘서울대 출신’이 붙는 건 아직은 내가 연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언젠가 연기로 제대로 인정받는 날이 오면 앞에 수식어는 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 배우 백승익이 인터뷰가 진행된 카페 테라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직은 성장하는 연기자, ‘배우’ 백승익

Q. 연기를 업으로 삼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부모님은 지금도 좋아하지 않으신다. 처음에는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나서 유학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부당거래 영화에 캐스팅되면서 바로 접었다. 그 이후에는 내가 영화 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회사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사장이 되면 자유롭게 영화를 찍으러 다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사업도 했었지만 나는 영화가 좋다. 누구의 반대에도 배우의 길을 걷고 싶다.

Q.연기 할 때 절대 타협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은?
아직 그런건 없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이 깊은 연기자도 아니다.
어떤 역할을 맡으면 나름대로 고민도 하고 연구도 하지만 현장에 막상 가보면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있고 그러다 보니 좋은 연기를 위해서 집착을 하게 된 것 같다. 어떤 주관보다는 아직은 성장하는 연기자이기 때문에 현장의 상황에 맞는 유연성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된다. 


Q. 그간 가장 기억에 남거나 애착이 가는 작품은?

아무래도 초반에 찍었던 영화일거다. ‘남매의 집’과 ‘부당거래’를 찍으면서 조성희 감독님, 류승완 감독님께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분들이 없었으면 배우 백승익이 아니라 디자이너 백승익으로 살고 있을 거다. 데뷔작 ‘남매의 집’은 정말 즐겁게 찍었고 첫 상업영화였던 ‘부당거래’는 상업영화란 이런 거구나 알려줬다.

Q. 올해 벌써 두 개의 드라마에 출현했는데 차기작은?

8월 중순에 KBS 단막극 촬영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는 또 조폭이다(웃음). JTBC의 사전제작 드라마 ‘우아한 친구들’에서는 4명의 남자와 관련된 여자들을 추적하는 형사 중 가장 무식하면서 사투리도 사용하는 형사를 맡았다. ‘우아한 친구들’은 유명한 미국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의 한국판인데 4명의 남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스릴러로 바뀐다.

Q. 롤 모델은?

롤 모델은 없다. 정말 좋아하는 배우가 있다. 한국에서는 이병헌 선배님을, 외국에서는 ‘매튜 메커너히’와 ‘에디 레드메인’을 제일 좋아한다. 이병헌 선배님의 오랜 팬이기도 하지만 그분의 연기를 정말 좋아한다. 한때 그분처럼 연기하고 싶은 마음에 모든 오디션 대사를 다 이병헌 선배님의 대사로 하기도 했고 집 벽 두 개를 선배님 사진으로 도배해놓기도 했었다(웃음).

외국 배우는 ‘에드 레드메인’과 ‘매튜 메커너히’를 가장 좋아하고 그 사람들의 연기를 보면서 힌트를 많이 얻는다. 특히 ‘매튜 매커너히’는 거의 모든 영화에서 ‘한쪽 눈 감기’ 필살기를 보여주는데 어떻게 눈이 적절한 위치에서 저렇게 감길 수 있는지 매번 감탄한다. 나도 저런 나만의 필살기를 찾고 있다.


▲ ▲배우 백승익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지금이 내겐 가장 중요해”

Q. 올해 무척 바쁜 한해를 보낸 소감은?

과거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서 별생각이 없다. 과거라니까 너무 의미심장한 말 같지만 당장 오늘 혹은 다음날 빨리 집이나 연습실에 가서 연습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만 하면서 산다. 바쁘니까 더 그렇게 살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전에 미래에 대해 고민했던 적이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안 되지? 부터 시작해서 나는 왜 못하지? 그리고 그때는 오디션 볼 때 심하게 떨었다.

‘부당거래’에서 살수역을 연기한 것이 인상이 깊었는지 그때 대한민국 킬러 오디션은 거의 다 봤다. 그런데 나중에 나는 대사를 못 해서 킬러 역할만 하는 건가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어떤 드라마 오디션을 봤는데 그게 내 배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스타 피디님이 나한테 집중적으로 대본 리딩을 시키고는 ‘연기를 너무 못한다 완전 초짜 같다’고 말해서 충격 받았다. 그때부터 정말 달라져야겠다 싶어서 매일 연습했더니 그 뒤로는 오디션도 다 붙는다. 그때 운명은 정해져 있고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나는 매일 연습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래서 나는 딱히 미래에 대한 생각 안 한다. 그냥 오늘 하는 거 열심히 하고 당장 촬영 있을 거 잘 준비하고. 물론 할리우드도 가고 싶긴 하다.

 

스페셜경제 / 원혜미 기자 hwon06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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