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캐스팅보터, 바른미래…교섭단체 지위상실도 초읽기

▲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비상회의에서 오신환 원내대표가 유승민 의원을 대표로 한 변화와 혁신의 비상행동회의를 갖는 동안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는 손학규 대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실 옆을 지나가고 있다. 2019.09.30.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미래형 진보, 개혁적 보수를 표방한 바른미래당의 반목이 극에 달하며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각각 128석, 110석을 차지한 거대 양당(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사이에서 이른바 ‘캐스팅 보터(casting voter)’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오던 바른미래당 내 갈등이 정점을 찍으며 당론은커녕 교섭단체(원내 20석 이상)로서의 지위 상실까지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합당으로 탄생한 바른미래당은 창당 초기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공식 이념이야 중도 내지 중도 우파 성향을 띤다고는 하지만 새누리당에서 갈라져 나온 바른정당과 민주당에서 나온 국민의당의 합당인 만큼 이런 과정은 필연적이었다. 오히려 ‘극복해야 할 과제’로 인식되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 갈등을 넘어 반목까지 = 그러나 지난 4월 재보궐 선거 참패 이후 갈등은 표면적으로 드러난다. 최고위원들은 노골적으로 손학규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서며 최고위 회의를 보이콧하고 나선 와중에 선거법·검찰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과정에서 김관영 전 원내대표가 사개특위 위원이던 오신환·권은희 의원을 사보임하며 극도의 긴장감이 연출됐다.

2차전은 혁신위원회 갈등으로 이어졌다. 손 대표가 한사코 사퇴를 거부하자 유승민·안철수계 의원들이 ‘정병국 혁신위’를 주장하고 나선 것. 하지만 당 대표 퇴진을 전제로 한 혁신위는 있을 수 없다는 손 대표의 반발에 따라 결구 정병국 혁신위는 무산되고 손 대표가 제안한 ‘주대환 혁신위’가 출범했다.

문제는 유승민 의원과 주대환 위원장과의 수상한 만남이다. 혁신위 출범 7일 만에 유 의원이 주 위원장을 만나 손 대표 재신임을 묻는 여론조사를 건의했다는 폭로가 나왔고, 이에 반발한 주 위원장이 사퇴한 것이다. 혁신위 출범 11일 만이다.


▲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19.10.21.


이윽고 손 대표의 ‘추석 전 지지율 10% 달성’ 공약을 두고 다시 비당권파와 당권파 간 공방이 이어졌고, 결국 지난달 30일 유승민·안철수계 등 비당권파 의원들은 자체적으로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을 구성, 한 지붕 두 살림을 시작했다.

변혁 의원들이 손학규 체제에 불복하면서도 즉각적인 탈당을 하지 않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교섭단체로서의 지위 확보와 정당보조금이 그것이다.

◆ 거대양당이 28석 정당에 안절부절 왜 = 국회는 입법부로서 법안을 발의하는 국민 대표기관이다. 발의안이 법률로 확정되기 위해서는 국회 상임위원회 논의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본회의 표결이다. 상임위에서 간사·위원들이 아무리 합의한들 본회의에서 부결되면 그동안의 논의가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본회의 통과를 위한 의결 정족수는 과반이상인 151석. 현재 민주당(128석)이나 한국당(110석)은 자체적으로는 정족수에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본회의 통과를 위해 민주당, 한국당으로서는 자신들의 의석에 더해 제3정당의 협력이 절실하게 된다.

정부 정책 지원을 위해 쟁점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여당으로서는 23석이 필요하지만, 정의당(6석)과 민주평화당(기존 14석·현재 4석)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당도 법안통과 저지를 위해 제3정당을 포섭할 필요성이 있게 된다.

바른미래당의 현재 의석은 28석. 이 중 열외로 간주되는 박주현(평화당)·박선숙·이상돈·장정숙(대안신당) 의원을 제외해도 24석이다. 여야가 쟁점에 있어 바른미래당 입장에 주목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 교섭단체 지위 상실은 협상력 상실 = 그러나 변혁이 출범하며 정세가 급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변혁 대표를 맡고 있는 유승민 의원이 12월 탈당을 언급하며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반대한다고 거론한 상황.

유 의원은 20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2월 초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까지 이 법안을 막아내는 소명을 다한 뒤 탈당과 신당 창당에 나서겠다”며 “권은희 의원 안이 민주당 안보다 낫지만 여전히 집권세력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공수처가 생길 수 있다. 우리는 공수처에 기본적으로 반대한다”고 밝혔다.

유 의원이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변혁은 검찰개혁안 뿐 아니라 선거제 개편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개정안의 구체적 내용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게임의 룰을 정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을 패스트트랙으로 처리하는 것은 야합’이라는 것이 반대의 이유로, 한국당이 주장해오던 바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는 검찰개혁안과 선거법 개정안에 대해 한국당 쪽에 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부 변혁 의원들에 따르면 단계적 탈당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초선 의원 등이 먼저 탈당하고, 주요 당직을 맡고 있는 의원들이 뒤따라 나가 합류한다는 것.

비슷한 방식으로 하태경 의원은 ‘상징적 창당’을 주장했다. 그는 18일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바른미래당의 교섭단체 지위를 안 깨고, 오 의원을 계속 원내대표 하도록 하는 것”이라 말했다.

하 의원의 이같은 주장은 바른미래당이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할 경우 현재 최대 쟁점인 검찰개혁 및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이 민주당과 한국당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돼 있다.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할 경우 쟁점 사안 처리 방향은 민주당과 한국당 간 협의로만 이뤄지고, 나머지 정당들은 사실상 양당 협의사항에 대해 상임위 회의나 본회의 등에서 찬반 의견만을 전하는 ‘들러리’ 역으로 전락하게 된다.

바른미래당의 교섭단체로서의 지위는 민주당과 한국당이 검찰개혁과 선거법 개정안 등 날카롭게 대립하는 사안에 있어 바른미래당이 캐스팅보터로 기능할 수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변혁 의원 15명이 즉각 탈당하게 되면 현재 28석인 바른미래당은 교섭단체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협상력을 상실하게 된다. 바른미래당 뿐 아니라 변혁 의원들 또한 상임위 간사직 등 협상력을 잃는 것은 마찬가지다.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도 민주당과 한국당만 참석하며 그동안 제역할을 해오던 ‘중재자’ 또한 사라져 사실상 거대 양당의 과점이 재현될 수 있다.


▲ 이인영(오른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21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을 갖고 있다. 2019.10.21.


◆ 비례대표문제 = 교섭단체 문제를 감안하고도 변혁 탈당이 현실화 될 수 있을까. 가능성이 높아보이진 않는다. 비례대표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현재 변혁 소속 의원 15명 중 비례대표 의원은 김삼화·김수민·김중로·신용현·이동섭·이태규 의원 등 6명이다. 문제는 비례대표 의원은 자진 탈당 시 의원직을 고스란히 상실한다는 것이다.

의원직을 유지한 채 당적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당 차원의 제명이 필요한데, 의총에서 충분히 제명할 수 있다는 변혁 측 입장과, 제명 등 징계는 윤리위에 있다는 당권파의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 정당보조금 문제…합당 시나리오? = 정당보조금 또한 고려사항이 아닐 수 없다. 국가가 정당에 지급하는 보조금은 크게 분기별로 지급되는 경상보조금과 선거철에 지급하는 선거보조금 등으로 나뉜다.

정치자금법에 따라 경상보조금의 경우 먼저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동일정당 교섭단체 기준)이 전체 보조금의 50%를 균등하게 나눈 뒤 5~20석 비교섭단체 정당에는 총액의 5%, 5석 미만 정당은 일정 요건을 충족한 경우 2%를 지급한다.

잔여분의 50%는 각 정당의 의석 비율에 따라 지급하고, 나머지 50%는 해당 국회의원선거 득표수 비율에 따라 지급한다. 이는 국회의원이 아닌 정당에 지급되는 금액이다.

이에 따라 중앙선관위가 지난 8월 14일 지급한 올해 3/4분기 경상보조금 106억8천8백만 원 중 민주당은 약 34억 원(31.80%), 한국당은 32억5천만 원(30.45%), 바른미래당은 24억6천5백만 원(23.07%)을 받았다.

4/4분기 경상보조금은 11월 15일 지급될 예정이다. 변혁 의원 15명 중 비례대표 의원을 제외한 의원 9명이 보조금 지급일 이후에 탈당하면 이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당이 탈당의원들에게 보조금을 떼어줄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지급일에 앞서 탈당한다면 그 또한 문제다. 이 경우 변혁과 바른미래당이 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하는 것은 물론, 바른미래당은 3분기 총 경상보조금(106억8천8백만)을 기준으로 약 14억1,401만 원을 받을 것으로 계산된다.
(※ 바른정당이 2017년 창당한 관계로 20대 총선 득표율은 국민의당만 계산했으며, 현재 바른미래당 의석점유율은 6.3%, 탈당 의원은 비례대표 6명을 제외한 9명으로 계산)

창당에 적어도 수개월의 시간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탈당 의원들은 보조금 없이 총선을 치러야 할 수도 있다. 탈당 후 다른 정당과의 합당으로 이어지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사실상 신당 창당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굳이 변혁 의원들로만 한정하지 않더라도 현재 거론되는 시나리오는 보수대통합을 강조하는 한국당과 바른정당계 의원들의 합당이 유력하다. 변혁 의원 중 바른정당계에는 오신환·유승민·유의동·이혜훈·정병국·정운천·지상욱·하태경 의원이 있다.

반면 안철수계 의원들 중에서는 권은희 의원을 제외한 의원들이 모두 비례대표인 관계로 실질적 탈당으로 이어지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에 따르면 바른미래당 분당절차가 실제로 이행되더라도 바른정당계 8명의 탈당 선에서 그칠 것으로도 보인다.


▲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 소속 의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바른미래당 원내대표회의실에서 열린 비당권파, '변혁' 의원 비상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지상욱, 정운천, 유승민 의원, 오신환 원내대표, 유의동 의원. 2019.10.16.

◆ 변혁 내부서도 균열조짐? = 다른 두 성향의 결합으로 탄생하며 주목 받았던 바른미래당이 향후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좀 더 지켜봐야 알 일이지만, 이미 상당부분 지분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변혁 내부에서의 의견 불일치 문제도 엿보인다. 유 의원 인터뷰에 앞서 오신환 원내대표가 ‘선(先)선거법 후 공수처’ 처리의사를 밝힌 것인데 한 지붕 두 살림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변혁 내부에서조차 다른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유 의원은 20일 공수처 설치와 선거법 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오 원내대표는 조 전 장관이 사퇴한 다음날(15일) 국감대책회의에서 “바른미래당은 검찰개혁이라는 국민여망을 받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검찰권력의 민주적 통제 원칙이 공수처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지난 6월 한국당에서도 일어난 바 있다. 당시 3당 교섭단체가 국회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하고, 당 차원의 추인을 받기 위해 합의안을 의원총회에 가져갔던 나경원 원내대표가 중진 의원들로부터 ‘퇴짜’를 맞고 나온 것. 결국 국회 정상화 합의는 다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바른미래당의 입지 자체는 전례 없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당권파와 변혁 간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든 마무리되더라도 여진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총선이 다가오며 각 정당이 지지율 등에 점차 민감하게 반응할 시기지만 최근 여론조사에서까지 바른미래당 지지율은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22일 국정감사가 끝나고, 남은 정기국회 회기는 예산 정국에 돌입한다. 통상 12월 중 마무리되는 차기년도 예산안 협의가 끝나면 본격적인 선거철이다. 이미 지난 18일 부터 총선 180일 전을 맞아 선관위 관리체제로 돌입, 입후보예정자들은 홍보수단에 선거운동 관련 내용을 할 수 없게 됐다.

우스갯소리로 “민주당에는 ‘민주’가 없고, 한국당에는 ‘한국’이 없고, 바른미래당에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있다. 변혁 의원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끝내 탈당을 감행할 경우, 수십 년 간 정국을 쥐락펴락 해온 거대 양당체제의 회귀라는 미래는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사진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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