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하재헌 중사의 조국…대한민국은 왜 그를 두 번 죽였을까

▲눈물 흘리는 어머니를 위로 하는 하재헌 중사

[스페셜경제=신교근 기자] 국가를 위해 젊음이라는 청춘과 두 다리를 바친 영웅이 있다. 바로 하재헌 예비역 중사다. 


그런데 이 영웅을 푸대접하는 나라가 있는데, 작금의 대한민국(통령 문재인)이다.

하 중사는 지난 2015년 8월 비무장지대(DMZ) 수색작전 도중 적(敵) 북한이 우리 측 수색로 통문 인근에 몰래 매설한 목함지뢰로 양다리를 잃게 됐다.

당연히 그는 군 인사법 전상자 분류 기준표에서 규정했듯 ‘적이 설치한 위험물에 의하여 상이를 입거나 적이 설치한 위험물 제게 작업 중 상이를 입은 사람’으로서 전상자가 된다. 군도 그렇게 인정했다.

하 중사처럼 안보 일선에서 헌신한 분들을 최대한 지원하라고 ‘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라는 곳이 존재하는데, 최근 국가보훈처가 ‘정치보훈처’로 이름이 바뀐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보훈처의 보훈심사위원회가 지난달 7일 하 중사에 대해 전상(戰傷)이 아닌 ‘작업 중 부상’이라는 취지의 공상(公傷)으로 격하 판정을 내린 것이다.

나라를 지키다 불구가 된 군인은 전상군경 판정이 목숨과 다름없는 명예일 것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를 정상적으로 예우하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라면 당연한 책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 보훈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란 비판을 받는 문재인 정권이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주적에게 두 다리를 빼앗긴 한 젊은이의 명예를 외면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공상자가 돼야만 하는 작금의 대한민국에 대해 짚어봤다.

북한 공격으로 다리 잃어도 두 번 죽이는 정권 보훈처

우리의 자유 지키다 희생한 영웅이 푸대접 받는 ‘대한文국

“짜장면 한 그릇 먹고 싶다던지 그런 소망 없어요?”

지난 2015년 8월 4일 강렬한 폭음과 연기가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육군 1사단 서부전선 비무장지대를 뒤덮었다. 북한산 목함지뢰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당시 하사였던 1사단 수색대대 소속 하재헌 중사와 김정원 중사(현역)는 큰 부상을 입게 됐다.

7일이 흐른 11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군수도병원 중환자실을 찾아 큰 부상을 당한 두 군인(하재헌, 김정원)을 위로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하 중사를 구하다가 지뢰를 밟아 오른쪽 발목을 절단한 김정원 중사에게 여러 가지 위로의 말을 던졌는데, “개인적으로 뭐 짜장면 한 그릇 먹고 싶다던지 그런 소망 없어요?”라고 했다.

한쪽 다리를 잃어가며 팀원을 구한 진정한 군인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언급했다는 점은 당시 문 대통령의 공감능력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이후 대한민국의 국군통수권자가 된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17일 합동참모본부를 방문해 국군수도병원 원무과에서 근무 중인 하 중사와 화상통화를 하며 “하 중사 같은 분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추켜세웠다.

또 문 대통령은 같은 해 6월 6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2회 현충일 추념식에 하 중사를 자신의 옆에 앉히기도 했다.

이처럼 문 대통령은 자신이 당대표 시절 겪었던 북한의 도발로 인해 부상을 당한 하 중사에게 각별한 마음을 가진 듯 보였다.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2015923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중상을 입고 입원 치료중인 하재헌 당시 하사를 위문하고 있다.


“천안함은 많이 돌아가셨다”며 영웅 2번 죽인 보훈처

2년이 넘게 흐른 2019년 9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북한 목함지뢰 도발사건, 저의 명예를 지켜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을 올린 이는 바로 하 중사였다.

하 중사는 해당 청원에서 “저의 억울한 이야기 좀 들어주시기 바란다”며 운을 뗐다.

이어 “저와 부모님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저는 2019년 1월 저의 또 다른 꿈인 운동선수를 하기 위해 전역을 했고, 전역이후 2월에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다”며 “저는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8월 유공자 소식을 듣게 됐는데 저희 사건이 전상군경이 아닌 공상군경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는 “국가보훈처에서는 적이라는 단어와 북한의 존재는 빼고 전투에 대한 문언 해석 범위를 넘어 전상군경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제시됐고, 합참이 적의 도발로 공표했고, 적이 매설한 목함지뢰에 부상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DMZ 수색작전 중 지뢰부상과 달리보기 어렵고, 사고당시 교전이 없었다고 이야기를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현재 북한과의 화해 교류 등으로 인해 보훈처에서도 이러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져 물으며 “국가를 위해 몸 바치고 대우를 받는 곳이 보훈처인걸로 아는데 보훈처에서 정권에 따라 가는 게”라고 말끝을 흐렸다.

하 중사는 “천안함 사건과 저희 사건은 둘 다 교전도 없었으며 북한의 도발이었는데 천안함 유공자분들은 전상을 받고 저희는 공상을 받았다”며 “제가 천안함 사건을 이야기하자 (보훈처는) 천안함은 많이 다치고 많이 돌아가셨다고 어처구니가 없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또 “저희는 두 명 밖에 안 다치고 아무도 안 죽어서 공상이라는 말도 아니고, ‘전상군경과 공상군경 별 차이 없다. 돈 5만원 차이난다’라고 하시는데 누가 돈이 중요하다고 한적 없고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저희한테는 전상군경이 명예이다”라고 강조했다.

하 중사는 “끝까지 책임 지시겠다고들 하셨는데 왜 저희를 두 번 죽이시는 거죠”라고 되물으며 “적에 의한 도발이라는 게 보훈처 분류표에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보훈처분들 저희 유공자 가지고 정치하지 마시고 전상군경으로 저의 명예를 지켜 달라. 다리 잃고 남은 거는 명예뿐인데 명예마저 빼앗아 가지 말아 달라.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며 글을 마쳤다.

 

군인이란 이유만으로 음식 값을 대신 지불하는 나라와

피 흘리고 자유 지킨 영웅이 생활고 겪는 나라의 차이

유승민 “대통령이 정상 아니니 나라가 미쳐간다”

 

이 같이 하 중사를 “두 번 죽인” 결정을 내린 보훈처 보훈심사위원회의에서 일부 친정권 성향 심사위원들은 “전 정권에서 영웅이 된 사람을 우리가 굳이 전상자로 인정해줘야 하느냐”는 발언까지 했다고 한다.

이에 반해 문재인 정권의 보훈처는 6·25 남침의 공로를 세워 북한에 애국한 김원봉에게 훈장을 주지 못해 안달하는가 하면, 역대 정권에서 간첩활동 이력으로 6차례나 계속 탈락됐던 김정숙 여사와 가까운 국회의원 부친의 국가유공자 지정까지 밀어붙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 중사에게 공상 판정을 내렸을 당시 최종 책임자였던 정진 보훈심사위원장은 17일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의 목함) 지뢰는 (천안함 폭침 도발의) 어뢰와 다르다”는 궤변까지 늘어놓았다.

피우진 전 보훈처장은 해당매체에 “하 중사를 여러 번 보기도 했는데, 그분이 이렇게 상처 입었는데 또 이런 상황이 일어나니 열 받고 지금 단단히 화가 나 있다”면서도 “하 중사의 공상 판정을 내가 결재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피 전 처장은 하 중사의 ‘공상’ 판정이 내려진 1주일 뒤 퇴임했다.

이를 두고 보수야권에선 “대통령이 정상이 아니니 온 나라가 미쳐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전 대표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같이 말하며 “국군의 명예를 짓밟고 북한 도발의 진실마저 왜곡하는 보훈처, 당신들은 북한의 보훈처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보훈심사위원회 위원중 공상 판정에 찬성한 심사위원들을 전원 파면하라”며 “국회는 예산과 입법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보훈처를 혁신하고 잘못된 판정을 바로 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우 자유한국당 의원도 이날 “보훈처는 나라의 영웅을 이렇게 푸대접해도 되는 것이냐”고 되물으며 “보훈처가 이토록 나라의 영웅을 무시하는 북한 눈치 보기 기관으로 전락한다면 즉시 해체되는 것이 맞다”고 쏘아붙였다.

같은 당 김종석 의원 역시 “최근 손혜원 의원 부친이나 김원봉 서훈 문제에서 보듯이 이념편향적인 보훈행정으로 독립유공자를 모독하던 보훈처가 이제는 국가를 위해 몸 바친 영웅의 명예마저 폄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하 중사를 ‘전상’이 아닌 ‘공상’으로 판정한 보훈처에 대해 “법조문을 탄력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고만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이 ‘법조문을 탄력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고 지시했지만, 제1야당 대표는 문 대통령의 사과와 편향된 심사위원 전원 교체를 촉구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18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바로 잡아주실 것을 촉구한다”면서 “민주당 출신 보훈심사위원장 비롯해서 이념적으로 편향된 심사위원들을 전원 교체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정의”라고 했다.

아울러 “보훈처장은 물론 대통령도 하재헌 중사와 국민들께 사과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사과 없이 당장의 상황만 모면하려고 한다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 같은 뭇매 덕분이었을까. 보훈처는 18일 하 중사에 대한 ‘공상’ 판정을 두고 곧 재심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김대원 국가보훈처 대변인은 지난 18일 하재헌 중사의 공상 판정과 관련, 재심의 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 땅에 피를 뿌려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슴 아픈 현실

미국은 전쟁영웅과 군인을 가장 잘 대우하는 나라로 알려진다.

미 정부는 국가와 자유를 위해 희생한 군인에게 ‘메달 오브 아너(Medal of Honor)’라는 훈장을 수여하는데, 공식적인 자리에 ‘메달 오브 아너’를 메고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대통령이건 장군들이건 거수경례를 해야 한다.

또 식당에선 군인이란 이유만으로 음식 값을 대신 지불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세계 최대 강대국인 미국의 진짜 힘은 전 세계를 압도하는 군사력이 아닌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하 중사의 조국, 작금의 대한민국은 적의 공격으로 다리를 잃어도 두 번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 나라가 된 듯 보인다.

입대를 앞두고 있거나 현역·예비군인 20~30대 남성들에겐 우리가 왜 목숨까지 걸어가며 대한민국을 지켜야 하는지 의문을 남게 한다.

조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이 땅에 피를 뿌리기까지 싸워야만 했던 6·25 참전용사들이 우리 주변에서 흔치않게 생활고에 시달리는 모습은,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15년 8월 12일 당시 하재헌 하사를 위로하기 경기도 분당 서울대병원을 방문한 백선엽 예비역 대장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 / 신교근 기자 liberty1123@speconomy.com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