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출장 재개되자마자 ASML행‥EUV 노광장비 독점 공급사
반도체 초격차에 필수 장비‥생산 현황 살파며 추가 구매 타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가운데)이 13일(현지시간) 네덜란드 ASML 공장을 찾아 관계자와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장 부회장,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와 함께 EUV 장비 생산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했다. 

 

유럽에서는 최근 다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 이 부회장 또한 이달 말 국정농단 파기환송심과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이 부회장은 네덜란드와 스위스 출장을 감행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달 서울 대치동 삼성 디지털프라자를 찾은 지 1달여 만에 현장 경영을 재개했다. 특히 지난 5월 중국 시안에 위치한 낸드플래시 공장을 직접 방문한 지 5달 만에 해외 출장이 가능해지자마자 네덜란드와 스위스를 택했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렸었다. 

 

네덜란드에는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이, 스위스에는 반도체솔루션 업체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있다. ASML은 삼성전자의 초미세공정에 필수적인 장비를 공급하는 업체고,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인수으로 거론되는 곳이다. 삼성전자의 주력인 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선 것이다. 

 

특히 이 부회장은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를 찾아 경영진을 만나 반도체 관련 협력 강화를 모색했다. 그는 피터 베닝크 최고경영자(CEO), 마르틴 판 덴 브링크 최고기술책임자(CTO) 등과 만나 7나노 이하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장비 공급계획과 운영 기술 고도화 방안과 인공지능(AI) 등 미래 반도체를 위한 차세대 제조기술 개발을 위한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또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시장 전망, 포스트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미래 반도체 기술 전략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직접 공장을 찾아 EUV 장비 생산 현황을 살펴보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를 비롯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2030년까지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른바 ‘비전2030’이다. 이를 위해 133조원이 투입되는데, 이 가운데 45% 가량인 60조원이 EUV 노광장비와 같은 초미세 공정을 위한 장비를 구입하고 생산라인을 확장하는데 들어간다. 

 

EUV는 삼성전자 반도체 ‘초격차’에 필수적인 장비다. 반도체는 웨이퍼 위에 광선으로 쏘아 미세회로를 반복해서 그려 넣는 ‘노광공정’을 거친다. 회로는 머리카락의 10억분의 1에 불과한 나노미터(nm)로 촘촘하게 새긴다. 이때 쓰이는 광선은 가시광선보다 빛의 파장이 짧아야 한다. 얇은 붓으로 섬세한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존 불화아르곤(ArF)은 193나노였지만, EUV는 13.5나노로 불화아르곤의 14분의 1에 불과하다. 

 

더 미세하게 그려넣을 수 있는 만큼, 노광공정의 횟수를 줄여 원가경쟁력이 높아지고, 반도체의 성능과 효율도 좋아진다. 이 때문에 최첨단 기술 격차를 가름짓는 역할을 하며 EUV 공정을 활용한 제품 수요도 늘어나는 추세다. 삼성전자와 대만 TSMC가 EUV 노광장비를 이용해 7나노 이하 미세공정을 기반으로 파운드리 사업을 벌이고 있고, 최근 SK하이닉스. 인텔 등도 EUV 도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EUV 장비를 상용화한 곳은 ASML가 유일하다. 대당 가격은 1500~2000억원 안팎의 초고가인데다 생산물량도 30대 정도에 불과하다. 경쟁은 치열한데 공급은 한정적이라 이 부회장까지 직접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는 EUV 기반 초미세공정을 통해 파운드리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루고 있다. EUV 공정을 처음으로 파운드리에 적용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 결과, 최근에는 IBM, 퀼컴 등 대형 고객사로부터 수주도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파운드리 점유율 1위인 TSMC와의 격차는 크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3분기 파운드리  점유율 1위는 TSMC로 53.9%에 달한다. 2위인 삼성전자(17.4%)의 3배에 가까운 격차다. 

 

그럼에도 1인자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TSMC의 견제는 강하다. TSMC는 매년 EUV 노광장비 구입을 늘리고 있다. ASML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22.6%에서 지난해 39.7%로 판매 비중이 증가했다. 내년까지 EUV 노광장비 50대를 추가 구매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로서는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고 TSMC를 꺾기 위해서는 EUV 노광장비를 더욱 공격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더욱이 메모리반도체에도 EUV 공정을 도입하기로 하고 공장 증설을 추진 중이다. 종전보다 더 많은 장비 확보가 필수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는 ASML 지분 1.5%를 보유하며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2월 ASML 경영진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나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이번 출장을 통해 이 부회장은 ASML로부터 추가 공급에 대한 긍정적 답변을 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입국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논의가 긍정적으로 진행된 것이 맞느냐는 질문에 동행한 김기남 삼성전자 DS 사업부문장(부회장)을 가리키며 “여쭤봐주시라”고 답했다. 중국 시안 귀국길에서 침묵했던 것과 다른 모습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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