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울 것 없는 한미정상회담…‘존재감 없는 외교’

▲ 문재인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뉴욕 인터콘티넨탈 뉴욕 바클레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19.09.24.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오늘날처럼 위성통신기술이나 이동수단이 발달하기 전, 사막이나 대양을 횡단하던 여행자들에게 나침반은 필수품 중 하나로 여겨졌다. 사방이 평지와 망망대해로 둘러싸여 있어 방향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던 까닭이다.

진로에 대한 방향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청소년이나 인생의 목적을 찾지 못해 그저 살아갈 뿐인 사람들에게도 방향성은 중요한 기제로 작용한다.

하물며 정부의 정책인들 이와 다를까. 정부의 방향이 어긋나면 때로는 국가 전체가 위기에 빠질 정도의 혼란이 일어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18세기 프랑스 귀족들은 오롯이 세금을 부담하던 제3신분의 불만과, 당시 대두되던 계몽주의로 인한 시민의식 고취에도 앙시앵 레짐(Ancient regime·구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는 1789년의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졌고, 민중의 지지를 받던 자코뱅 파(派)는 혁명입법 완수를 위해 온건파였던 지롱드를 탄압, 공포정치를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중요한 점은 방향성을 잃고 앙시앵 레짐에 갇혀있던 왕족 및 일부 귀족, 성직자들은 단두대에 올랐고, 자코뱅 또한 급격한 보수화를 통해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몰락하며 나폴레옹 쿠데타가 일어나는 빌미까지 제공하는 등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을까. 문재인 정부는 9차례의 한미 정상회담과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모두가 북한의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구상하기 위한 자리였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이에 집권 3년 차에 접어든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한반도 평화구상의 진척상황에 대해 <스페셜경제>가 진단해 봤다.
3년 째 유지된 대화무드에…북한은 미사일 화답


문재인 정부의 평화기조

문재인 정부는 2017년 5월 10일 출범한 이래 줄곧 북한과의 관계를 강조해왔다.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무력시위를 규탄하는 한편 핵개발을 포기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올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은 전쟁 등 한반도 긴장상태에 반대하는 여론을 크게 감화 시켰다. 실제 남북관계가 ‘긴장’이 아닌 ‘대화’국면으로 접어들 무렵이던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회담 후 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당시 여권에 번진 성추문 파동에도 불구하고 10%p 약진했고, 긍정평가 이유로도 ‘남북정상회담’, ‘북한 대화 재개’, ‘대북정책’, ‘외교’ 등의 응답이 최상위를 차지했다.  

 

▲ 2018.05.04 한국갤럽 여론조사 발표자료. 조사기간 2018.05.02~03 조사대상 1,002명 표본오차 95%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결과는 한국갤럽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확인.
▲ 2018.05.04 한국갤럽 여론조사 발표자료. 조사기간 2018.05.02~03 조사대상 1,002명 표본오차 95%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결과는 한국갤럽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확인.

당시 발표된 ‘판문점 선언’에서는 ‘완전한 비핵화’를 명시하는 등 한반도 내 항구적 평화의 기틀을 잡았다는 평가와 함께 여론의 집중조명을 받으며 6월 1차 북미정상회담(싱가포르합의), 9월 남북정상회담(평양공동선언)에 이어 올해 2월 2차 북미정상회담(하노이 회담)으로까지 이어졌다.

 

9번째 한미회담…또다시 원론적 ‘재확인’ 합의만


정상회담의 목적?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예정에 없던 유엔(UN) 총회 참석을 결정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번 회담은 지난달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한 데 대해 미국 측이 수차례 불만을 토로하며 한미동맹에 균열이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 이뤄져 야권에서도 이에 대해 기대를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이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며 협상 테이블 위로 나오게 했던 대북제재의 열쇠를 미국이 쥐고 있는 만큼, 많은 이들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은 물론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룰 것으로 봤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도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북핵폐기에 대한 공동의지를 확인하고 무너진 한미동맹을 복원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대한민국 국익과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회담에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뉴욕서 뻔한 소리 할 때 국정원, ‘김정은 방문설’


北은 마주앉을 생각 없다는데…국정원 “김정은 11월 부산 방문 가능성”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액화천연가스(LNG) 추가 수입과 자율주행 합작법인 투자 등 한미경협 이슈를 꺼내들었다.

정부가 약 11조5천억 원 규모의 미국산 LNG 수입계약을 체결했고, 현대자동차그룹과 세계 최고수준의 자율주행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 미 앱티브(APTIV) 사가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는 것.

하지만 북한과 관련한 내용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조만간 3차 북미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3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 한반도 비핵화의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세계사적 대전환, 업적이 될 것이라 믿는다”라는 언급이 문 대통령의 북한 관련 발언 전부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 또한 가관이다. 수십 번은 언급했을 법한 “북한과의 관계는 매우 좋다. 김정은과의 관계도 매우 좋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는 원론적인 수준의 발언만 나왔다.

65분 동안 진행된 두 정상 간 회담에서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 양국이 긴밀히 협력하고 △북한 대화의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싱가포르 합의정신이 유효한 것을 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낼 어떤 새로운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의미 있는 이야기는 국내에서 나왔다.

24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참석한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정원은 “2~3주 내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크고 실무협상에서 합의가 도출될 경우 연내 3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국정원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협상 결과에 따라 오는 11월 부산에서 개최될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고 진단하는가 하면, 북미협상을 앞두고 김 위원장이 북중회담을 추진할 가능성까지 있다고도 진단했다. 

 

▲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에 참석한 서훈 국정원장이 자리하고 있다. 2019.09.24.

 

누구나 하는 원론합의…文정부 대북정책 변곡점


文정부의 대북정책 변곡점?

출범 직후부터 줄곧 강조하던 대북 평화기조가 집권 3년 차에 접어들도록 기본적 원칙 확인에 그치고 구체적 협상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점에 대해 야당은 비판일색이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번 회담을 ‘맹탕 정상회담’이라 일축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도 “우리 정부의 존재감을 찾아볼 수 없어 실망스럽다”며 “이전의 한미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낼 어떤 새로운 전략이 노출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야권은 한국 정부가 비핵화를 위해 담당할 새로운 역할에 대한 논의조차 없었던 데 대해 실망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비핵화와 관련해 ‘리비아식 모델(선비핵화 후보상)’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내보이며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도 “새로운 방법이 좋을 수도 있겠다”고 언급했음에도, 당초 문 대통령이 자처했던 ‘운전자’, ‘촉진자’ 역할조차 부여받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통미봉남책에 대해 문 대통령이 그동안의 대북정책 기조에 한계를 느끼고, 직접 나서기 보다는 실질적 대북제재 영향력을 행사 중인 미국을 통한 비핵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가 줄곧 전 세계에 강조하던 ‘미국 우선주의’를 고려해 문 대통령이 직접 경협 카드를 들고 갔다는 분석이다.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돈 많이 들어 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오랜 동맹이던 한국을 팽개치고 북한의 불만에 호응하던 트럼프 대통령의 조롱까지 감수해가며 얻어온 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원론적 합의에 불과하다면, 과연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제대로 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되짚어봐야 할 시점인 것으로 보인다.

<사진 뉴시스>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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