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보사에 인공유방까지…식약처 ‘늑장대응’이 한몫했다

[스페셜경제=김다정 기자]올 한해가 중반을 넘어 중후반기로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 되짚어 본 제약·의료계는 유난히도 시끌벅적했다.


허가받은 의약품의 성분명이 뒤바뀐 희대의 사건 ‘인보사 사태’를 시작으로 엘러간 인공유방으로 인한 희귀암 발병 등의 이슈가 제약·의료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현재 이들 사건은 지금까지 결론을 짓지 못하고 여전히 법정 공방을 이어가거나 환자들의 피해보상 방안 마련을 위한 협의 중에 있다.


그러는 사이 불안한 국민들은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섰던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대해 불신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의약품을 허가하고 관리·감독 역할을 해야 할 식약처의 허술한 운영방식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 됐기 때문이다.


사태 수습과정에서 보여준 식약처의 ‘무책임한 늑장대응’이나 ‘기업에만 책임전가’하는 대응 방식에 대해서도 비난 여론이 거세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올해 상반기 굵직굵직한 이슈 속 환자의 불안감을 키우는 식약처의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대응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봤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 ‘인보사 사태’에 정부 책임론 급부상
전세계로 퍼진 인공유방 시장 퇴출 운동…한국은 뭐했나?

올해 4월, 국내 첫 유전자치료제로 허가받은 인보사케이주의 주성분 중 하나가 허가 당시와 다르다는 점이 뒤늦게 확인됐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인보사를 허가받을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한 자료에는 2액에 들어가는 형질질환세포가 ‘동종연골세포’로 명시돼있다.


그러나 미국 임상3상 도중 2액의 세포가 동종연골세포가 아닌 ‘신장유래세포’(GP2-293)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식약처는 5월 28일자로 인보사에 대한 품목허가를 취소하고, 코오롱생명과학을 형사고발했다.

 
제약업계를 뒤흔든 이 사건은 발생한 지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뚜렷한 결론 없이 여전히 줄소송에 휘말려 있는 상황이다.


식약처가 내린 처분에 불복한 코오롱생명과학은 행정소송과 함께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인보사 품목허가 취소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당한 회사 측은 최근 항고장을 제출했다.


치열한 법적공방이 계속되는 사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보사를 투여한 환자들과 피해 주주들이 받고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적절한 피해보상 없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와르르 무너진 식약처의 ‘신뢰·도덕성’

이번 사태의 모든 책임을 짊어 진 코오롱생명과학은 ‘존폐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약을 최종적으로 허가해준 식약처도 신뢰도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고 책임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식약처의 주장대로 회사가 사실을 은폐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검증을 진행하지 않고 업체 측의 주장만으로 모든 허가를 내준 것은 식약처의 명백한 ‘직무유기’에 해당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사태 해결과정에서 보여준 식약처의 문제 해결 방식은 보건당국의 신뢰는 물론 도덕성에 대한 의심까지 불러일으켰다.


인보사 사태는 식약처가 허가를 내준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허가를 스스로 취소하면서 의약품 허가 및 관리 시스템에 큰 허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그럼에도 식약처는 모든 책임을 온전히 코오롱생명과학에 떠넘기려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윤소하(정의당) 의원은 지난 5월 기자회견을 통해 “(식약처가)왜 이런 대국민 사기가 발생되었는지 신약을 허가했던 당사자인 식약처의 책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이 제조사인 코오롱생명과학만 잘못을 저지른 것 인양 모든 책임을 지운 것에 우려를 표한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지속되자 식약처는 인보사의 제조 및 판매를 중지한 지 66일 만에 뒤늦게 공식사과했다.


이의경 식약처장은 지난 6월 5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인보사 사태로 국민에게 혼란과 심려를 끼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환자 안전대책 수립과 향후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은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진 6월 4일 저녁 갑자기 결정됐다. 이에 검찰 소환 조사가 임박하자 식약처가 뒤늦게 대국민 사과에 나셨다는 비난 여론에 휘말리기도 했다.


무상의료실천운동본부 등 시민단체들은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과 손문기·이의경 전·현직 식약처장 등을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한 바 있다.


인보사 허가과정에 식약처 개입 있었나?

현재 식약처는 규제기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인보사를 허가하는 과정에서 두 달 만에 ‘불허’에서 ‘허가’로 입장을 선회한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불거졌다.

 

이때 반대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위원들을 교체해서 허가가 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2017년 4월 식약처는 인보사 허가 문제를 심의하기 위해 중앙약사 심의위원회를 소집했다.

 

당시 출석한 심의위원 7명은 이날 ‘인보사가 유전자 치료제 허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결론내렸다.

 

그러나 식약처는 두 달 뒤인 2017년 6월 심의위원회를 재차 소집했고 결국 심의위원회는 인보사에 대해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2차 심의위원회에는 1차 회의 때 허가를 반대했던 위원 3명이 빠지고 대신 5명이 새로 선임됐다는 것이다. 식약처 직원들도 1차 때는 3명만 참석했지만 2차 회의에는 7명이 대거 참석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측은 인보사 허가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이 처장은 “식약처는 허가 과정에 대해 제기된 의혹을 명백히 규명하기 위해 진행 중인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일각에서는 인보사 사건에 연루된 핵심 책임자들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식약처 내부 직원 징계나 책임 범위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온 바 없다. 일단 식약처는 검찰 조사 뒤에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희귀암 유발’ 엘러간 인공유방

이처럼 인보사 사태로 곤혹을 치렀던 식약처는 엘러간의 인공유방으로 인해 또 한번 비난의 중심에 섰다.


국내에서 엘러간의 인공유방보형물을 이식한 후 희귀암인 ‘역형성 대세포 림프종(BIA-ALCL)’이 발병한 환자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이 환자는 40대 여성으로, 약 7~8년 전 엘러간 제품으로 유방 보형물 확대술을 받았다. 최근 한 쪽 가슴에 붓기가 심하게 발생해 성형외과 의원을 방문했다가 새로운 암을 발견했다.


학계는 지난달 15일 전문가 등 관계자 회의를 열고 엘러간 사의 거친 표면 유방 보형물을 이식한 환자에게서 BIA-ALCL이 발생됐음을 확인했다.


이보다 앞서 엘러간은 지난 7월부터 문제가 된 텍스쳐드 가슴보형물인 ‘바이오셀 내트럴’(Biocell Natrelle)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시행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국내가 아닌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요청에 따라 즉시 시행된 건이다.


한국엘러간은 제품군의 거친 표면 인공유방 보형물을 이식받은 환자들에 대한 보상 방안을 식약처에 제출하고, 식약처는 엘러간의 보상 방안을 검토한 뒤 9월 중 최종안을 확정 발표할 계획이다.


환자들의 불안이 고조되자 식약처도 뒤늦게 보형물에 대한 안전관리 강화에 나섰다.


우선 희귀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제기된 엘러간의 인공유방 보형물을 이식한 환자를 추적 관리하고 9월 중으로 단계별 보상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또 문제가 된 엘러간 인공유방 보형물 외에 다른 회사의 거친 표면 인공유방 보형물도 사용을 중지하기로 했다.


전세계 퇴출운동…韓 식약처는 뭐했나?

인공유방 보형물이 면역계통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위험성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히 거론됐던 사실이다.

 

이에 전세계적으로는 엘러간의 가슴보형물 등에 대한 퇴출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미국 FDA에 따르면 엘러간의 텍스쳐드 가슴보형물은 ‘가슴 보형물 이식 후 BIA-ALCL’ 위험이 타사의 제품보다 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성 논란이 불거지자 올해 4월 프랑스국립의약품안전청(ANSM)과 캐나다보건국(Health Canada)은 문제가 된 엘러간의 바이오셀 내트럴의 판매를 중단시켰다. 가슴보형물 이식 후 BIA-ALCL 발생 우려가 있어서다.


프랑스 ANSM은 엘러간 외에도 유로실리콘 ‘매트릭스’, 아리온 ‘모노블럭 텍스쳐’를 비롯 세빈(프랑스), 폴리텍(독일) 등 6개 제조업체 제품도 판매 중지 목록에 올렸다.


아시아권에서는 싱가포르가 5월 10일 엘러간 제품 판매 금지를 결정했다. 호주도 지난 6월 엘러간 제품을 포함한 유방 보형물 25종의 판매 중지를 사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이 선제적으로 판매 중단 조치를 하는 동안 식약처는 안전성정보 알림만 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FDA는 가슴 보형물 이식 후 BIA-ALCL의 발병확률은 낮지만 일단 발병될 경우에는 치사율이 높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가슴보형물 철수를 요청했지만 식약처는 ‘근거 부족’으로 안내와 ‘경고’만 해온 것이다.


유럽·캐나다 등에서 사용·판매가 중지되고 있던 올 상반기에도 엘러간의 문제 제품은 계속 한국 여성들의 몸에 이식되고 있었다. 결국 식약처의 늑장대응이 환자들을 오히려 더 위험에 빠뜨리고 있던 셈이다.

고통과 불안은 고스란히 ‘환자 몫’

올해 일어난 일련의 두 사건에 대한 식약처의 미흡한 대응으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환자들이다.


인보사 사태가 일어난 지 반년이 다 돼가지만 투약 환자들은 여전히 정부와 회사로부터 단절된 채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식약처가 지난 4월 전체 인보사 투약 환자를 대상으로 장기추적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이후 지금까지 환자 등록 단계에 머물러있다.


8일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전체 인보사 투약 환자의 약 75%인 2,261명의 환자가 식약처 산하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 등록됐다.


이는 식약처가 추정하고 있는 최대 투여환자 수 3014명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현재 전체 환자 수 파악조차 되지 않은 실정이다. 그리고 여전히 장기추적의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정부와 회사의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서 그 피해는 오롯이 환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엘러간 인공유방 논란도 마찬가지다.

 

식약처가 뒤늦게 안전관리 강화에 나서기 전에 이미 다수의 환자들이 엘러간의 가슴보형물을 이용한 유방확대술을 받은 상황이다.


희귀암 유발가능성 때문에 자발적 리콜을 시행중인 엘러간의 유방보형물과 유사한 거친표면 유방보형물의 국내 제작‧수입물량은 22만2470개에 달한다.


그러나 몇 명이 몇 개를 시술받았는지는 파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성형목적 시술은 주로 의원급에서 이뤄지는데 시술 의원들이 폐업한 곳도 많아서 환자 파악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피해보상 가능 여부조차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라 환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바른미래당 간사인 최도자 의원은 “유방암 수술 등으로 보형물을 삽입한 사람들이 희귀암에 걸리지는 않을지 불안해하고 있다”며 “시술받은 사람의 건강에 이상이 발생할 경우, 검진과 제거수술 등의 비용은 누가 어떻게 책임질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본지>는 식약처와 취재를 시도했으나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이후 연락이 닿으면 내용을 추가할 계획이다.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다정 기자 92ddang@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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