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진 질문에 ‘묵묵부답’
구속 필요성 놓고 공방 예상
영장 발부 여부 9일 새벽에나 나올 듯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34개월 만에 구속의 갈림길에 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굳은 표정이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이 부회장이 8일 오전 101분경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를 위해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했다. 그는 시선을 법원 입구에 둔 채 자신의 향한 질문에 침묵했다. “합병 의혹과 관련해서 보고받거나 지시한 적 없는지” “직원들 수사에서 보고받았다는 정황이 있는데 여전히 부인하는지” “3년 만에 영장심사를 받는 심경이 어떤지등 취재진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곧바로 법정으로 향했다.

 

뒤이어 나타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도 말이 없었다. “삼성 불법 합병 승계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전에 이 부회장에 보고했나” “혐의 부인하나등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고 법정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1030분께 시작된 영장실질심사는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부장판사가 맡는다. 순서는 이 부회장, 최 전 실장, 김 전 팀장 순서로 진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세조종을 비롯한 범죄혐의가 충분히 소명되는지 증거인멸 우려가 있는지 등을 놓고 검찰과 이 부회장 측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 최대 주주인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합병 비율을 산정하기 위해 시세를 조정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또 합병 비율의 적절성 문제가 불거질까 45000억원의 장부상 이익을 올리도록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 기준을 부당하게 바꾼 것으로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같은 의혹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있는 만큼, 이 부회장이 이를 인지하고 지시하거나 관여했다는 논리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그가 관여하거나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불법이 없었고, 삼성바이오의 회계 변경은 국제회계기준에 맞게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시세 조종도 회사 가치를 위해 진행된 것이지 불법적인 시도가 없었으며, 자사주 매입은 법과 규정에 따라 이뤄졌다고 반박하고 있다.

 

기록이 방대하고 사안이 복잡한 데다 이 부회장 측이 혐의를 강력 부인하고 있어, 구속 여부는 8일 밤늦게나 9일 새벽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심사를 앞두고 검찰과 이 부회장 측은 맞대응을 주고 받으며 치열한 다툼을 예고했다. 이 부회장 측이 외부에 기소의 적절성을 판단받고 싶다고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하자 검찰은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자 이 부회장 측은 연일 입장문을 통해 이 부회장은 보고를 받거나 지시하지 않았다” “모든 과정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리했다고 적극 반박했다.

 

심사에서 검찰은 400(20만쪽)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통해 혐의를 입증하는 한편, 이 부회장을 구속하지 않을 경우 총수 지위를 이용해 증거인멸을 시도할 우려가 있다는 점, 국정농단 뇌물사건의 원인에 해당하는 이번 사건의 혐의가 매우 중대하다는 점 등을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 측은 장기간의 수사로 관련 내용이 대부분 파악됐고, 글로벌기업의 수장으로 도주 우려가 낮은 점을 들어 구속 수사의 필요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은 영장청구 이후 매일 보도자료를 통해 장기간에 걸친 검찰수사로 인해 정상적인 경영이 위축돼 있다고 호소해왔다.

 

만일 법원이 구속을 결정하면 이 부회장은 20182월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24개월 만에 잉여의 몸이 된다. 검찰 수사 단계에서 최장 구속기간이 20일인 만큼 이달 말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지게 된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형사소송법 제70조에 따르면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위해선 일정한 주거지가 없거나,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거나, 도주의 염려가 있어야 한다. 이 부회장의 주거지는 최근 시민단체가 자택 앞에서 삼겹살 파티를 할 만큼 잘 알려진데다 코로나19발 위기로 인해 그룹 총수가 비상 경영 상황인 만큼 도주의 가능성은 극히 낮다.

 

2000년대 이후 사법부가 공판 중심주의에 따라 불구속 수사·재판을 견지해오고 있는 점이나, 같은 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두 차례 기각된 점도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발부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의견에 힘을 실어준다.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이 기각될 경우 검찰은 수사의 신뢰성에 타격을 입고 무리한 수사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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