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사실 공표 논란 & 언론 재갈 물리기?’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이 9일 오후 경기 과천시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2019.09.09.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선사시대 이래로 사회에서 악질 범죄자들은 항상 존재했다. 시대상황에 따라 ‘무엇이 악질 범죄인가’는 달라져 왔지만 살인, 친족살해와 같은 범죄에까지 사회가 관용을 베푼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범죄는 대개 성문화된 형법으로 다스렸다. ‘처벌’의 정도에 따라 목숨까지 거둘 수 있는데다가 이미 범죄자로 낙인찍은 사람을 사형시킨 후 무고가 밝혀지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로 진입하고 인권 개념이 부각되며 국가차원의 권한행사는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들어섰고, 나아가 수사기관의 피의사실 공표 금지까지 논의선상에 올랐다. 법원의 최종심이 있기 전까지 피고를 무죄로 간주하고, 인권보호를 위해 수사기관의 수사정보 유출을 방지한다는 목적이다. 

그러나 이 같은 ‘피의사실 공표 금지’ 조항은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만 있을 뿐, 기소된 사례가 전무해 사실상 사문화(死文化)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굵직한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피의사실 공표 논란은 꾸준히 제기됐다. 그리고 최근 이 논란이 다시 번진 것은 이른바 조국 파동 때문이다.

딸 표창장 수여와 관련해 사문서 위조 혐의로 지난 6일 기소된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이 최근 검찰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 보도되고 있는데 대해 유감을 표한데 이어 조 장관을 수장으로 둔 법무부가 피의사실 공표 세부사항을 규정한 훈령 개정 방침을 밝히면서 자기 방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법무부는 18일 오전 당정 협의회를 통해 조 장관 사건이 종결되기 전 훈령 개정은 없을 것이라 밝혔지만 야권은 회의적이다. 고양이에 생선을 맡긴 꼴이라는 것이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정부·여당의 공보준칙 개정 보류 방침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수많은 비판을 감내하며 추구할 가치가 있는지 짚어봤다.
“인사 불이익 없다”…사실상 겁박

 

칼자루 쥐고 인사불이익 없다니


“(가족)수사를 일선에서 담당하는 검사들의 경우 헌법정신과 법령을 어기지 않는 한 인사 불이익은 없을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장관 일가를 수사 중인 검사들에게 ‘마음껏’ 수사하도록 길을 터 준 점에서 어찌 보면 조 장관의 발언은 그럴싸하게 보인다.

하지만 단서가 마음에 걸린다. ‘헌법정신과 법령을 어기지 않는 한’이란 것은 인사에 개입할 여지도 충분히 남겨둔 발언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장관은 ‘헌법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학계에서 헌법정신이라 함은 전문에 담겨 있는 것으로 본다. 대한민국헌법 전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그동안 강남좌파를 자처하며 정의를 외치던 조 장관의 발언과 그가 검찰개혁을 강조했던 점을 감안하면 조 장관의 ‘헌법정신’은 사회 폐습 및 불의 타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확립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폐습과 불의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조 장관은 이미 법무장관으로서의 개혁대상을 분명히 했다. ‘조국 법무장관 내정설’이 나돌 때부터 검찰개혁을 위한 인선이라는 점은 많은 이들이 익히 예상했던 바다.

‘법령을 어기지 않는 한’이라는 단서를 붙인 것은 탈법적 행위가 있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동안 검경은 형법에 피의사실 공표 금지가 버젓이 규정돼 있음에도 암암리에 수사내용을 흘리며 비판을 받아왔다.

이제 내용이 한층 명확해진다. 대상은 조 장관 일가를 수사 중인 검찰, 내용은 피의사실 공표 금지. 즉 가족을 수사 중인 검찰에 피의사실을 공표하지 말라는 사실상의 겁박인 셈이다. 

 

▲ 조국 법무부 장관이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2019.09.18.

이런 가운데 민주당과 법무부는 1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를 개최했다.

이날 조 장관은 “형사사건 수사공보 개선은 이미 박상기 전 장관이 충분한 논의를 거쳐 추진한 내용”이라며 “관계기관의 폭넓은 의견수렴을 거치고 제 가족 수사가 마무리 된 후 시행 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지난 4월 ‘수사공보 TF’를 꾸리고 8월에는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현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 준칙’ 개정안)을 마련했는데 이를 본인 가족 수사 종결 시까지 보류한다는 것이다.

한편 조 장관은 9일 취임사에서 ‘법무부의 검찰에 대한 적절한 인사권 행사’를 언급했다.

그러나 검찰인사 예측 가능성을 보다 높이기 위해 시행령인 ‘검사인사규정’을 정한 것이 지난해 12월이다. 일선 검사들은 어리둥절하다. 누가 자신의 목을 치게 될지조차 알 수 없다.

검사들을 향해서는 인사권을 통해 겁박하는 동시에 다른 쪽에선 공보준칙 개정을 통한 여론전을 펼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검찰은 현재 조 장관과 조 장관 주변 인물들을 수사 중이다. 수사 도중 피의사실 공표 문제가 불거졌고, 때마침 법무부는 공보준칙 개정을 거론했다.

당정은 공보준칙 개정을 보류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조 장관은 아직 인사권을 쥐고 있다.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보류방침이 공허한 외침으로 들리는 이유다.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일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검찰개혁에)관여했다.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과제를 마무리하고 물러나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조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공보준칙 보류만‥당정협의 무의미


알 권리·언론의 자유 vs 무죄추정의 원칙

 

피의사실 공표가 규정대로 금지돼도 문제는 남아 있다.

흉악범들이 체포돼 수사 받거나 여론 조명을 받는 사건의 관계자들의 수사상황이 공개되지 않을 때면 ‘왜 국가가 범죄자를 보호하느냐’, ‘신상 공개하라’는 목소리가 나오곤 한다. 그러나 검경이 이를 공개하면 역시 피의사실 공표에 위반된다.

때문에 경찰은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법정 특정강력범죄사건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알 권리·재범방지·범죄예방 등 공익 목적 △피의자가 성년일 것 등의 요구사항을 모두 갖춘 경우에만 신상정보를 공개한다.

반면 검찰은 법무부 훈령인 공보준칙(현행)에 따라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언론의 오보 방지 등 공익상 필요가 인정될 경우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공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검찰은 공보준칙에서 제시한 기준과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숱하게 받았다.

검찰이 언론에 수사내용을 흘리며 악화되는 여론을 이용해 피의자를 압박해서 방어권을 포기하게끔 만들고, 수사에 부담이 될 때는 형법 규정에 기대 취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는?…8년 전 조국 발언 주목


법무부가 마련하고 조 장관이 보류방침을 밝힌 공보준칙 개정안(초안)은 △기소 전 피의자 소환 원칙적 비공개 △수사내용 유포시 장관 직접 감찰 △공인 외 실명공개 금지 등의 내용을 담았다.

언론에 공개할 수사 내용도 ‘형사사건 공개심의위원회’를 통해 결정하고, 피의자가 동의한다는 의사를 서면으로 제출한 경우에 한해 검찰 소환 시 촬영이 가능하다. 시행시기만 늦췄을 뿐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검찰 내부 결정 뿐 아니라 피의자 동의까지 요하고 있어 언론으로서는 이를 보도할 방법이 없다. 보도가 되지 않으면 국민의 알 권리 역시 보장받지 못한다.

여권은 ‘무죄추정의 원칙 보장’이라 반박하지만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사건 당시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를 실컷 이용해 먹다가 이제와 문제 삼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는 중이다.

“피의사실 공표도 정당한 언론의 자유 범위 안에 있으면 위법성이 조각돼 불벌”

조국 법무부 장관은 8년 전 이렇게도 말했다.



모두 무대 뒤 진행…그들만의 리그 속 실효성 의문


공보준칙 개정 보류, 실효성 있나

 

공보준칙이 개정되면 수사내용 공개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피의자 소환일정은 물론 구속영장 청구 여부조차 알리지 못한다. 모든 것이 무대 뒤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는 군사정권의 비호를 받던 자들이 아무도 모르게 소환돼 조사를 받고, 아무도 모르게 불기소 처분을 받기도 했다.

당시 검찰이 내걸었던 것이 형법 126조, 피의사실 공표 금지였다. 검찰이 한국 현대사의 암흑기 마냥 정권 눈치나 보며 ‘봐주기식 수사’를 해도 국민은 알 길이 없게 된다. ‘보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영철, 조두순, 오원춘, 고유정, 김성수 사건 같은 흉악범죄가 일어나면 격분한 여론은 이들의 신상을 요구한다. 범죄자가 체포되지 않은 경우 수사과정 공개를 요구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위험요소’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심리가 내재돼 있다. 체포되지 않은 범죄자가 집 앞을 활보하고 다니는데 불안에 떨지 않을 사람은 없다.

강력범죄자가 석방됐을 때 사람을 죽인 전력을 가진 자와 계속해서 이웃으로 지내길 원하는 사람도 없다. ‘다음 차례’가 나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다.

게다가 정권 차원에서 이를 악용할 가능성 또한 거론될 수 있다. 주요 정치인들은 ‘공인’으로서 공개 대상이지만 가족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이 경우 조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언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지는 철저한 비공개 대상이다. 정 교수의 서면동의 없이는 촬영 또한 불가능하다. 심지어 구체적 혐의 내용은 재판이 시작되기 전까지도 알 수 없다.

명예훼손을 각오한 언론의 보도가 잘못된 경우 검찰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한 마디면 족하다. 무엇이 사실과 다른지 설명하면 이 또한 저촉된다. 이 때문에 야권에서는 조 장관 사건을 빌미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자유한국당 이주영 의원은 “피의사실 공표를 막기 위해 공보준칙을 바꾼다는데 자신과 아내가 포토라인에 서는 것을 막기 위해, 또 구속영장 청구가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조국의, 조국에 의한, 조국을 위한’ 위인설법하자는 것”이라 말했다.

검찰은 조 장관과 그의 가족을 수사 중이다. 인사권은 조 장관에 있다.

조 장관은 공보준칙 개정을 보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장관직에 있고, 여전히 인사권을 쥐고 있다.

검찰의 목줄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공보준칙 개정·적용을 보류하겠다는 말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설령 조 장관이 인사 불이익을 행하지 않는다 해도 국민들의 알 권리 충족 및 언론의 자유 침해라는 비판을 감수해가며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사진 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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