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재고 쌓기로 3분기 실적 선방
마이크론에도 허가 안해준 미국 정부
대체 수요처 확보에 6개월 이상 걸릴지도

▲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미·중 무역갈등으로 촉발된 화웨이 제재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업계도 시름에 잠겼다. 제재가 본격화되기 전 화웨이가 재고 확보를 위해 급히 주문량을 늘린 덕에 3분기는 선방했지만, ‘반짝 효과’가 사라지는 4분기에는 타격이 불가피한 까닭이다. 

 

일각에서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에 대해 미국이 추가로 제재함에 따라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화웨이 부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250억달러(약 29조4000억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투입키로 함에 따라 국내 반도체업계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2분기는 비대면 3분기는 화웨이가 살렸지만...4분기는 ‘안갯속’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국내 반도체업계는 일단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증권사 전망치에 따르면, 삼성전자 DS부문 영업이익은 5조원 초반으로, 전분기와 비슷한 수준일 것으로 예측된다. SK하이닉스 역시 1조1000억∼1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당초 3분기부터 공급 차질을 우려한 고객사들의 과잉 주문으로 재고가 쌓이면서 메모리반도체 업황이 부진할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다. 코로나19 장기화, 화웨이 제재 본격화, 스마트폰 성수기, 신규 게임기 출시 등이 맞물린 결과다. 

 

특히 국내 반도체업계에서 연 10조원 이상을 쓸어가는 화웨이가 재고 확보를 위해 긴급 주문을 넣은 것이 호재로 작용했다. 2분기 원격수업과 화상회의, 동영상 시청과 온라인 쇼핑 등 비대면 수요 덕을 봤다면 3분기에는 화웨이 효과와 신작 효과를 누린 셈이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국내 반도체업계가 주력하는 메모리반도체 업황이 호황기에 접어들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 공급량은 일정한 반면, 인공지능(AI), 5G(5세대 이동통신), 자율주행 등으로 인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도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가 수요에서는 성장성이 큰 반면, 기술 변화로 공급은 제약돼 2021년에서 2022년에 메모리 빅 사이클을 재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70% 이상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고 있는 만큼, 메모리반도체 호황은 국내 반도체업계에 호재다. 다만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낙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웨이의 긴급 주문으로 메모리반도체 재고가 줄어든 점은 업황 개선의 기대감을 키우는 부분이지만, 코로나19와 미·중 무역갈등 장기화는 국내 반도체업계에 장기적으로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실제 전세계 메모리반도체 가격은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PC용 D램 DDR4 8Gb 고정거래가격은 3.13달러로 3개월째 제자리다. 지난달 중순 D램 현물거래가격이 일시적으로 상승했지만, 화웨이가 재고 확보를 위해 일시적으로 구매를 늘린 영향이 컸다. D램익스체인지는 “D램 시장의 전반적인 초과공급은 계속될 것”이라며 “전 분기 대비 PC용 D램 가격이 하락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더욱이 미국이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에 대한 제재를 강하게 틀어쥐는 점은 국내 반도체업계에겐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화웨이는 애플(361억달러), 삼성전자(334억달러)에 이어 세계에서 반도체를 3번째로 많이 사는 ‘큰 손’이다. 당분간 화웨이의 부재에 따른 매출 하락이 불가피한데, 그 기간이 얼마나 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세계 3위 D램 생산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각) 실적발표에서 9월부터 11월 실적이 악화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6~8월 매출은 60억600만달러로, 직전 분기(54억4000만달러)와 지난해 같은 기간(48억7000만달러)과 비교해 늘어났다면서도 “지난달 15일 제재 발효 이후 미국 정부에 새로운 판매 라이선스를 신청했지만, 언제 실현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마이크론은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미국 상무부에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거래 허가를 요청한 상태다. 이에 대해 산제이 메흐로트라 CEO는 지난달 15일 발효된 화웨이 제재로 미국 정부로부터 받은 납품 허가가 무효화됐다면서 화웨이를 대체할 다른 스마트폰 판매업체를 찾는 데까지 약 6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자국 기업에게도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서 국내 반도체업계 또한 미국 상무부로부터 승인받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파운드리 부문에서의 반사이익을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다. 세계 5위 파운드리 업체인 SMIC 제재로 인해 퀄컴(8.6%), 브로드컴(7.5%) 등과 같은 해외 업체 물량이 넘어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TSMC는 수주 물량이 꽉 찬 상태이기 때문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DB하이텍 등이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7나노 이하 미세공정 위주인 만큼, 큰 수혜를 볼 것 같지 않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화웨기가 사들인 반도체 재고 물량이 최소 6개월치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비포나 오포, 샤오미 등이 당장 화웨이의 자리를 꿰찰 가능성이 낮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에 나설 것으로 전해지면서 국내 반도체업계의 부담이 더욱 커졌다. 

 

일본 닛케이에 의하면 미 연방의회가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총250억달러(약 29조4000억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투입하는 내용을 담은 초당파 상하 양원 일원화 법안을 추진 중이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이나 연구시설을 지을 경우 건당 최대 30억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총 150억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10년간 운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반도체 생산과 관련해 국방부가 50억달러를 지원하고, 미세공정 등 기술 개발을 위해서도 50억달러를 추가로 지원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 인텔과 AMD에 노트북용 CPU(중앙처리장치) 공급을 허가한 것이 화웨이 제재를 풀겠다는 신호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미국 기업이 우위에 있는 분야에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선별적 조치였을 뿐,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업체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는 메모리반도체는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이 아시아에 쏠린 메모리반도체 생산망을 가져오기 위해 자국 반도체 산업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쏟아 붓는다면, 국내 반도체업계의 타격은 생각보다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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