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오신환-권은희 사보임, 채이배 의원실 6시간 감금…무색한 국회선진화법

▲ 지난 25일 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청 의사과 앞에서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을 발의하려는 민주당측과 이를 저지하려는 한국당측의 충돌로 소란을 빚었다. 사진=국회출입기자단


[스페셜경제=김수영 기자]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바른미래당 손학규, 정의당 이정미 두 야당 대표가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제 개혁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2019년 예산안 처리를 강행한 데 대한 항의 차원이었다.

두 대표의 단식농성은 열흘 차인 12월 15일에 끝을 맺었다. 여야5당 원내대표가 모여 ‘1월까지 선거제 개편 법안을 합의처리 하겠다’는 극적 합의를 도출한 덕분이었다. 선거제 개편에 대한 목소리가 나온 지는 오래됐지만 급물살을 탄 시점이 손·이 대표의 단식농성부터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이후 선거제와 관련한 논의에 참여하지 않고 당론도 제시하지 않은 채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민주당도 야3당과의 논의에는 참여했지만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한 것 또한 사실이다.

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 등 야3당의 거듭된 촉구로 협상에 나서며 이견을 조율하던 민주당은 지난 22일 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검경수사권 조정 등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것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여야4당과 한국당은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육탄전을 벌이며 2012년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7년 만에 재연된 ‘동물국회’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국회 ‘선진화’가 아닌 ‘후진화’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손학규·이정미 두 대표가 힘겹게 쏘아올린 작은 신호탄이 ‘본회의 상정’이라는 궤도에 오르기까지의 험난한 여정과 여지없이 퇴행의 길을 걷는 국회의 모습에 대해 <스페셜경제>가 짚어봤다.

 

▲ 문희상 국회의장이 패스트트랙 철회를 요구하며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장실을 항의방문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등 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다른 일정차 의장실을 나서려 할때 김명연 의원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막아서고 있다.

 

육탄전부터 패스트트랙 시도까지
최대330일…180일로 단축할수도

 

◆ 난장판 국회…육탄전부터 기습 사보임, 경호권까지 발동

지난 22~25일의 국회는 매우 바쁘게 돌아갔다. 22일 여야4당 원내대표의 패스트트랙 지정 합의에 이어 23일에는 각 당이 일제히 의총을 열어 추인을 완료했고, 24·25일에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각각 선거제와 공수처 법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정부와 청와대, 여야4당에서는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이를 ‘좌파독재 장기집권 플랜’이라 규정하고 총력투쟁을 선언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어렵게 정착시킨 의회민주주의 질서가 붕괴된다. 의회민주주의 사망선고다. 민주공화정을 지탱하는 삼권분립이 해체되는 것”이라며 “저들이 좌파장기집권 플랜을 드디어 시작했다”라고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바른미래당에 있었다. 유승민 의원을 위시한 바른정당계 의원들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연이어 쏟아져 나온 것이다.

특히 4·3보궐선거 패배로 지도부 재신임·총사퇴론까지 불거지며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던 차에 의총에서 12대11이라는 초박빙의 표결 결과가 나오자 갈등이 한층 더 격화된 모습을 보였다.

추인이 끝난 뒤에도 이런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 사개·정개특위에서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한 정족수인 5분의3 이상 찬성을 얻을 수 있는지의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상설특별위원회를 제외한 국회 특별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한 18명의 위원으로 구성되고, 따라서 패스트트랙 지정을 위한 의결정족수는 11명이 된다.

선거제 개편 법안은 정개특위에서,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은 사개특위에서 의결하게 되는데 정개특위의 경우 특위에 소속된 바른미래당 의원들 2명은 모두 국민의당계로 찬성파에 속한다. 따라서 한국당 의원 6명이 모두 반대표를 던진다 해도 12명의 찬성표를 확보할 수 있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개특위는 한국당 의원 7명이 반대할 경우 나머지 11명이 모두 찬성해야 하는데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이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 공언하며 패스트트랙 지정이 무산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이에 김관영 원내대표가 오 의원 사보임을 강행할 의사를 밝히자 패스트트랙 지정을 반대해온 바른정당계 인사들은 의총 추인이 ‘3분의2’가 아닌 ‘과반수’인 만큼 당론이라 할 수 없어 오 의원이 추인 결과에 따를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한국당 또한 강력히 반발하며 보임 대상으로 지정된 채이배 의원이 사개특위 회의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의원실에 6시간 동안 감금하는가 하면 국회의장실을 찾아가 문희상 의장에게 사보임 신청을 불허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문 의장이 저혈당쇼크 증세로 병원으로 이송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김 원내대표는 25일 유승민 의원 등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국회 의사과를 점거농성 중인 관계로 인편이 아닌 팩스를 통해 사보임 신청서를 제출했고, 병원에 입원 중인 문 의장은 병상에서 사보임 신청서를 전자결재했다.

김 원내대표의 사보임 신청과 문 의장의 허가에 한국당과 오 의원은 즉각 반발하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청구 및 효력정지가처분을 신청하는 한편, 정개특위·사개특위 회의장 3곳과 채이배 의원실을 점거하고 ‘육탄저지’에 돌입하기도 했다.

또한 이날 저녁 김 원내대표가 기습적으로 권은희 의원마저 사보임하며 하루아침에 사개특위 위원 두 명을 통째로 갈아엎자 한국당과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강력 반발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권 의원 보임으로는 임재훈 의원이 결정됐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바른미래당 내 갈등을 더욱 촉진시켜 분당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24일 바른미래당 의총 직후 이언주 의원이 탈당한 데 이어 김제식 전 의원(인천남구갑 지역위원장)도 탈당을 선언한데다가 김삼화 의원마저 수석대변인직을 사퇴하자 ‘추석 전 지지율 10% 달성’을 공언하며 ‘제3지대론’을 강조한 손학규 대표의 꿈이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 2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본청 의사과에서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이 바른미래당의 사개특위 사보임 서류 접수를 저지하기 위해 의사과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패스트트랙, 최장 330일 소요…180일까지 단축할 수도

일단 패스트트랙이라는 선로에 올라선 법안은 최장 330일 후에는 자동으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먼저 소관위원회인 정개특위와 사개특위에서 최장 180일의 논의기간이 주어진다. ‘위원회는 신속처리대상안건(패스트트랙)에 대한 심사를 지정일로부터 180일 이내에 마쳐야 한다’ 국회법 제85조의 2 규정에 따른 것이다.

만일 정개특위와 사개특위에서 의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해당 안건은 자동으로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가 최장 90일 간의 체계·자구심사 기간이 부여된다.

법사위 또한 주어진 기간 내에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해당 안건은 법사위 심사를 마친 것으로 간주되고 곧바로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 60일 이내에 상정된다. 본회의 상정은 곧 본회의 표결에 돌입함을 의미한다.

해당 법안들이 이달 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 330일 뒤인 내년 3월 하순 경 본회의에 상정된다. 하지만 내년 총선인 4월 15일에 개정된 선거법을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심사 기간을 최대한 단축시킬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330일의 기간은 국회법상 명문으로 규정된 최장기간으로 정개특위·사개특위의 의결이나 법사위 심사기간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단축될 수도 있다.

먼저 한국당 여상규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한국당과 달리 정의당 심상정, 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각각 위원장으로 있는 정개특위·사개특위에서의 의결은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각 특위에 한국당 의원들과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포진해 있기는 하지만 의결정족수를 과반(10명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어 일단 패스트트랙 지정 요건인 5분의3(11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낸 상황이라면 특위에서의 진통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국회법 제57조의 2 규정 또한 특위에서의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위원회는 이견 조정 필요가 있는 안건에 대해 재적위원 3분의1(6명) 이상의 요구로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해당 안건을 회부할 수 있다.

조정위원회가 최대 90일의 활동기한을 갖는 만큼, 특위에서 180일 동안 계류될 안건을 절반으로 단축시킬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국회의장은 의장 재량으로 60일의 본회의 부의 기간을 생략하고 곧바로 본회의에 상정해 표결에 부칠 수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의 본회의 표결까지 걸리는 기간은 330일에서 180일까지 대폭 단축돼 이달 말에 지정된다면 오는 10월 하순에는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게 된다.

▲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실에 6시간 동안 갇혀있던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맨 뒤)이 보좌진들과 함께 회의실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국회출입기자단

본회의에서의 부결가능성‥사라진 지역구
손학규의 고심 속에 얼룩진 야만과 폭력


◆ 단식투쟁까지 불사했지만…본회의에서 부결될 수도

하지만 선거제 개편 법안이 내년 총선에 대비해 시간적으로 여유 있게 본회의에 상정된다 해도 과연 통과가 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이 24일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의원정수 동결 △지역구225석·비례대표75석 △석패율제 도입 △권역별 준연동형(50%) 비례대표제 △선거연령 하향조정(18세 이상) 등을 담고 있다.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지역구 의석이 현재보다 28석이나 줄어든다는 점이다. 당론 차원에서 일단 찬성은 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지역구를 잃는 의원들은 본회의에서 반대표를 행사할 소지가 다분하다.

지역구 의원에게 자신의 지역구가 통·폐합된다는 것은 곧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뼈아픈 타격임이 분명하다. 특히나 자기 지역구에서 지지기반을 어느 정도 확보해 둔 의원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일각, 특히 바른정당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민주당이 원하는 것은 선거제가 아닌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선거제를 미끼로 야3당을 달래 공수처와 검경수사권을 ‘패키지’로 통과시키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선거제 개편안은 본회의에서 부결시키면 된다는 것.

“그 분들(민주당)이 통과시키려 하는 검경수사권 분리와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에 끼워서 (선거제 개편안을)볼모로 잡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바른미래당 정병국 의원의 말이다.

패스트트랙에 합의하고 소관위원회 절차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된다 해도 결국 부결될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평화당 유성엽 의원은 지난달 14일 <폴리뉴스>와의 통화에서 “한국당이 반대하기도 하고 평화당이나 바른미래당에서도 반대할 사람이 나온다”며 “쉽게 선거제를 패스트트랙에 넣어도 330일 후에 의결이 되겠나. 표결에 넣을 때 부결될 게 뻔하다”고 전했다. 

 

▲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제7차 최고위원-중진위원 연석회의에서 손학규 대표와 김관영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회의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부정으로 점철된 국회…반복되는 폭력과 야만


선거제 개편안을 본 궤도로 올린 손학규·이정미 대표로서는 어렵게 일궈낸 선거제 개편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되거나 패스트트랙 지정에 실패하는 것만큼 통탄할 일도 없을 것이다.

특히 손 대표의 경우 4·3보선 패배 후 높아져 가는 사퇴 목소리와 고조되는 내홍에 ‘추석 전 지지율 10% 달성’이라는 조건부 사퇴론까지 꺼내들었지만 가라앉기는커녕 이번 사태로 더욱 깊어진 반목의 나날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5일 저녁 패스트트랙 법안을 제출하려는 민주당과 한국당의 물리적 대치로 의안과 사무가 불가능하다는 보고를 받고 경호권을 발동한데다, 김관영 원내대표의 자당 사개특위 위원 전원 사보임이라는 초강수에 바른미래당 갈등은 이내 감정싸움으로까지 격화되는 추세다.

손 대표가 조건부 사퇴론이라는 배수진을 치며 그려낸 ‘제3지대론’조차 이제는 사실주의가 아닌 낭만주의에 가까워진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한편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국회는 민주당과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의 대화와 타협 없는 강권적 처리방식과, 한국당이 수년 만에 재연에 성공해낸 폭력국회·동물국회의 모습으로 국민들의 가슴에 불신이라는 씨앗을 또 하나 심었다.

제1야당인 한국당을 패스하며 ‘공조’를 표방한 여야4당이 ‘야합’이라 불릴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한국당 또한 그동안의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선거제 개편 당론제시 최종시한이던 지난 3월 10일 기존 민주당과 야3당의 당론과 정확히 배치되는 안을 내놨다.

당시 나 원내대표는 △의원정수 10%감축 ―야3당, 예산동결 전제 의원정수 10%증가― △비례대표 폐지―여야4당, 비례대표 증가― △내각제 없는 연동형 비례대표 반대 ―민주당, 준연동형비례대표제·야3당, 연동형비례대표제― 등을 당론이라 제시했다.

이에 손학규 대표는 지난 24일 연석회의 모두발언에서 “정치구조 개혁을 위해 선거제 개편을 하자는데 (한국당이)무슨 안을 하나 내놓았느냐. 그러면서 무조건 반대를 하고 시위를 한다? 국민들은 결코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 지적했다.

국회에서 벌어진 작금의 사태는 부정적인 현실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똑같이 부정으로 대응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부정(-A)을 또 다른 부정(-B)으로 극복해 긍정을 만들겠다는 논리는 음수 곱하기 음수는 양수라는 수학의 추상적 원칙에서나 적합하다. 현실에 존재하는 부정(-A)을 또 다른 부정(-B)으로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가 곧 긍정적인 현실을 담보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부정(-A)에 대한 부정(-B)은 긍정(-A+B)이 아닌 여전한 부정(-A-B)이다. 국민들은 요즘 같은 현대정보화사회에 국회에서 야만적인 폭력사태가 일어났다는 사실(-A-B)만을 기억할 따름이다.


물론 실무적으로 정사(政事)를 담당하며 그 모습을 대내외적으로 보이는 국회의원들이라면 부정적인 현실에 똑같이 부정으로 대응함으로써 지지자들 내면의 감정적 욕망을 해갈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계몽된 사회에서 승리를 노래하는 것은 동일성의 야만과 폭력체계 뿐이다.

<사진=뉴시스, 국회출입기자단>
스페셜경제 / 김수영 기자 brumaire25s@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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