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 = 김봉주 기자]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가 국회에 출석해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 논의를 할 때가 됐다”라고 말하면서 리디노미네이션이 또다시 화두에 올랐다.

리디노미네이션으로 인한 회계상 편의와 국제 위상 제고, 인플레이션 억제 등의 장점이 떠오르는 한편 비용문제· 실효성 등의 단점도 제기된다.

31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한은이 주도적으로 리디노미네이션을 몰아간 것은 2004년 박승 총재 시절이다. 그러나 경제혼란을 우려한 정부와 정권차원의 음모라던 야당 등의 반대로 금세 논의 테이블에서 사라졌다.

한은은 국회 안팎의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 제기에 원론적 언급 수준으로 답변해왔다.

이주열 총재 역시 지난주 국회에서 “우리는 분명히 논의가 할 때가 됐다고 생각은 하고 있으나, 리디노미네이션이 장점 못지않게 단점도 따르기 때문에 논의하더라도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며 신중해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뒀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에 대한 실질가치는 그대로 두고 액면가(디노미네이션)를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변경하는 조치다. 예를 들면 1,000원을 1원으로 하는 방식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주로 인플레이션, 경제규모의 확대 등으로 거래가격이 높아짐에 따라 숫자의 자릿수가 늘어나면서 계산상의 불편이 발생하는 문제점 등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서도 6·25전쟁 막바지인 1953년 2월 100대 1(100원→1환)로, 또 1962년 6월 10대 1(10환→1원)으로 2차례 리디노미네이션한 바 있다.

리디노미네이션의 시행은 자국 통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인플레이션에 따른 기대심리를 억제하며 대금결제가 용이해진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화폐 변경에 따른 막대한 비용 발생 및 물가 상승, 사회적 혼란 야기 등의 단점도 있다.

 

찬성론 : 회계상 편의, 국제위상 제고, 인플레이션 억제


찬성하는 측은 57년전 확정된 현행 화폐는 급성장한 한국의 경제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4년 김효석 의원안, 2009년 우제창 의원안도 이를 근거로 한 1000대 1의 리디노미네이션 국회 발의 법안이다.

만약 1000대 1 리디노미네이션을 시행하면 1100원 안팎의 원·달러 환율은 1.1원(또는 환) 수준으로 바뀌며, 회계장부의 기장이 간편해진다. 한국 화폐의 대외 위상도 높아질 수 있다. 1달러를 바꾸는 데 네자리 숫자의 통화를 쓰는 나라는 중국, 베트남, 한국 등 손에 꼽힌다.

해외에서는 원화를 1달러 환율이 1000 안팎인 화폐 보유국들 수준으로 오해할 여지도 있다. 지난 29일 기준 1달러 환율이 1000 내외인 국가는 르완다(약 902프랑), 레바논(약 1507파운드), 미얀마(약 1519짯), 부룬디(약 1805프랑) 등이다.

또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0이 많은 숫자의 기장을 실수해 잘못 송금하는 사고를 줄일 수 있다. 1억원 대신 10억원을 잘못 송금하는 것과 같은 실수다. 또 해외여행 전 달러 환전시에도 구권 대신 신권화폐 몇 장으로 무게를 줄일 수 있다.

게다가 일부 남미·아프리카 국가들이 고도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시행한 리디노미네이션은 국민의 물가불안도 해소한 바 있다. 신권 교환 과정에서 지하자금을 양성화하는 효과도 있다.

반대론 : 천문학적인 비용, 실생활 혼란 야기, 실효성 불투명

그러나 리디노미네이션의 단점도 분명하다. 신용·전자거래가 활성화된 현재로서 리디노미네이션은 실익이 불분명하고 사회적 비용이 크게 들어간다는 점, 또 현행 단위에 익숙한 국민들에게는 실생활에서 오히려 혼란을 야기한다는 점 등이다.

주택가격 변동이 10억원→11억원 표기에서 11만원(환)→110만원(환)으로 바뀌고, 급여가 200만원에서 2000원(환), 3000만원짜리 자동차가 3만원(환)으로 표현되면 물가에 둔감해질 수 있다.

또 현행 1000원 미만 단위의 가격표시는 편의상 반올림될 공산이 크다. 이는 물가상승을 가져올 수 있다. 2700원짜리 커피는 2.7원(환)이 아니라 3원(환)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리디노미네이션으로 인해 대외위상이 제고된다는 보장도 없다. 달러환율이 우리보다 훨씬 낮은 아제르바이잔(약 1.7마나트), 조지아(약 2.7라리) 등의 위상이 우리보다 높다고 말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리디노미네이션 비용이 가장 문제시되고 있다. 먼저 신권 화폐 제조가 필요한 데다, 금융권의 ATM 등 자동화기기, 금융·비금융 기업의 회계 전산시스템·회계전표 수정이나 상품가격 재인쇄 등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2004년 김효석 의원 발의 법안에 첨부된 예산 추계를 보면, 전산 수정비용 1조3500억원, 신권 화폐제조에 8200억원, ATM 등 교체 4400억원, 각종 유가증권 액면 재인쇄 등 기타비용 600억원이 추산된 바 있다. 또 추산된 10년간 총편익은 8조6000억원, 총비용 2조6700억원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김효석 법안과 관련, 국회 소관상임위는 검토보고서에서 “추산된 편익의 대부분은 수표발행 비용의 절감분일뿐, 리디노미네이션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15년간의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리디노미네이션에는 그만큼 더 많은 돈이 들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한 사회적 편익이 얼마인지 판정되지도 않은 상황이다.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봉주 기자 seraxe@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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