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5년 5월 '김영삼-박정희' 간의 영수회담.(사진출처-시사오늘)

 

[스페셜경제 = 김영일 기자] 1975년 5월 21일 있었던 ‘박정희-김영삼 회담’과 관련해 ‘대표적인 사쿠라 회담’이라고 했던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의 발언에 대해, 일각에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쿠라 회담’이란 박 의원의 언급은 폄훼·왜곡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박 의원의 사쿠라 회담 발언은 앞서 지난 1일 방송된 TV조선 <강적들>을 통해 전해졌다..

이날 방송은 ‘여야 강 대 강 대치, 출구는 없나’를 주제로 과거 사례에 비춰 정국을 풀어갈 해법을 모색했는데, 해당 방송 출연자인 평론가 김갑수 씨는 1975년 5월 21일 ‘박정희-김영삼 회담’과 관련, 밀약설을 제기했다.

김갑수 씨는 “유신 후반부,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신민당 야당 총재가 되면서 엄청 강경했다. 어느 날 전격적으로 ‘박정희-김영삼 청와대 회담’이 있었다”며 “이후 사자처럼 맹공을 퍼붓던 YS 태도가 매우 달라졌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이어 “박 대통령이 YS를 불러놓고 ‘임자도 대통령 한번 해야지’ 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것이 YS가 야권의 원 톱이 된 계기였다”고 했다.

박지원 의원도 김 씨의 주장을 거들었다.

박 의원은 “(박정희-김영삼 회담은)대표적인 사쿠라 회담”이라며 “신민당의 대변인인 이택돈 의원이 있었는데, 그분은 DJ(김대중 전 대통령)사람”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YS가 박정희와 회담하고 나서 ‘이 대변인님 드라이브 한번 하자’, 그래서 삼청동 뒤로 드라이브를 하는데, 너무 기분이 좋아 보이더란다. ‘(이 대변인이)무슨 좋은 일이 있습니까.’ 그랬더니 ‘박정희가 임자(YS)가 다음에 대통령 해라’ 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사쿠라로 협력하니까 그리 된 것”이라며 “사실 정치는 사쿠라가 많아야 잘 된다. 구정치라고 비난할 게 아니다”라고 했다.

상도동계도 아닌 동교동계가 회담을 말한다?

박 의원의 이 같은 언급은 당시 회담에 대한 폄훼·왜곡에 가깝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인터넷 언론사 <시사오늘>은 지난 23일 “[주간필담] 박지원과 TV조선 ‘강적들’에 묻는 ‘김영삼-박정희 회담’” 제하의 기사에서 “YS가 상도동계 측근한테도 하지 않은 말을 DJ 측근(이택돈)한테 했을까”라며 의구심을 내비쳤다.

시사오늘은 “‘YS와 박정희 회담’ 당시 정치적 상황을 먼저 볼 필요가 있는데, 1974년 최연소의 나이로 신민당 총재가 된 YS는 민주 회복을 위한 개헌을 요구하며 박정희 정권에 맞선 강한 대여투쟁을 전개했다”면서 “급기야 이듬해인 75년 4월에는 상도동계의 최형우와 동교동계의 김상현 등 국회의원 13명이 유신헌법 제정 당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다고 폭로하며 정권의 폭압정치를 정면으로 겨눴다. 처음엔 긴급조치 9호 등으로 제압하려던 정권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월남 패망 등 국제 정치마저 불리한 상황으로 돌아가자, 뒤늦게 YS가 제안해 온 것이 ‘단독 영수 회담’이었는데, 회담을 끝내고 돌아온 YS는 대화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는 점을 이유로 입을 닫았다”면서 “이와 함께 신민당의 투쟁마저 약화되니, 둘 사이의 밀약설부터 금품 수수설까지 당내 라이벌 진영인 DJ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커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그럼에도 YS는 함구하기로 했다는 약속을 이유로 얘기하지 않았다. 급기야 동교동계의 이택돈 당시 대변인은 ‘대변인인 나에게마저 얘기를 안 한다’며 회담 후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대변인직을 사임하고야 만다”며 “여기까지만 들어도 박 의원이 전한 말과 비교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시사오늘은 “그렇다면, 대체 이 대변인의 그 증언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박 의원이 언급한 이 대변인의 증언은 그가 생전에 현대한국구술자료관을 통해 육성으로 남긴 것”이라며 “이에 따르면 YS는 이 대변인에게 ‘요는 말이야 이거야. 여당은 지(박정희)가 하고 말이야. 야당은 내가 하라 이 얘기야’라고 했다. 그 말에 이 대변인은 ‘DJ는 어떻게 하고요?’그랬더니, ‘갔어’라고 YS가 박 대통령의 말을 전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즉, 'DJ는 끝났다’라고 했다는 얘기였다. 이와 함께 ‘내가(박정희) 누가 있느냐. 다음은 네(YS) 차례다’는 말까지 YS가 이 대변인에게 전했다는 것.

박정희 눈물에 마음 누그러져

시사오늘은 “YS가 아무 말도 안 해 사퇴했다던 이 대변인이 나중에 이 말을 들었다고 한 점은 사뭇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더군다나 DJ 사람인 이 대변인에게 ‘DJ가 끝났다’는 말을 한다는 것조차 납득이 가지 않는 논리”라고 지적했다.

또한 “회담 때 YS를 수행한 이는 동교동계의 이 대변인만이 아니었다. 상도동계 박권흠 비서실장도 함께 있었다”며 “그런데 이 대변인이 들었다는 얘기를 정작 측근인 상도동계 박 실장은 전혀 알지 못했다. 따라서 이 대변인의 증언을 신빙성 있게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YS 비서출신이자 김봉조 전 의원은 2010년 <시사오늘> 인터뷰를 통해 “비서인 나한테도 회담내용을 일체 얘기해 주지 않았다. 말해달라고 하면, YS는 그냥 웃기만 했다”고 전했다.

시사오늘은 “그렇다면 YS는 왜 함구했나. 회담 때 어떤 내용이 오갔길래 대여투쟁이 약화됐냐는 것이다. 이를 알려면 YS 회고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YS는 ‘박정희 서거’ 후 2시간 가량 진행됐던 당시 만남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며 YS 회고록에 담긴 일부분을 소개했다.

“박정희는 창밖의 새를 가리키며 ‘김 총재, 내 신세가 저 새 같습니다’라고 하고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인간적으로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박정희에게 ‘민주주의 하자, 대통령 직선제 하자’고 말을 꺼냈다. 그러자 박정희는 ‘김 총재, 나 욕심 없습니다. 집 사람은 공산당 총 맞아 죽고(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육영수 여사는 재일교포 문세광에 의해 총을 맞고 운명을 달리했다.) 이런 절간 같은데서 오래할 생각 없습니다. 민주주의 하겠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박정희는 ‘김 총재, 이 이야기는 절대 우리 둘만의 비밀로 합시다. 내가 정권을 내려놓는다고 하면 대통령으로 일하는 데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일단 진심으로 믿어보기로 했다. 박정희가 울지만 않았으면, 나는 ‘그럼 언제 할 거냐’고 따지고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눈물 때문에 추궁하려던 나의 마음은 다소 누그러져 있었다. ‘꼭 민주주의 하겠다’는 박정희의 말은 ‘이번 임기를 마지막으로 물러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YS 회고록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중)

 

스페셜경제 / 김영일 기자 rare0127@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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