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 = 김봉주 기자] 3년 넘게 미납하지 않고 빚을 갚은 개인회생 채무자가 변제기간을 단축하는 내용의 변제계획 변경안을 내면 이를 인가하도록 한 서울회생법원의 업무지침이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사실상 폐지됐다.
 

대법원은 변제계획 변경안을 인가하는 것에 대한 별도의 엄격한 심사가 필요하다고 결정함에 따라 후속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최대 1만명이 넘는 채무자들이 이 업무지침에 따라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여서 당분간 혼선이 야기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회생법원(법원장 정형식)은 25일 전체판사회의 결의에서 개인회생 변제기간 단축에 관한 개정법률 시행의 경과사건 처리를 위한 업무지침을 폐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은 이날 서울회생법원의 이 모씨의 개인회생 변제계획 변경안에 대한 인가 결정에 채권업체 A사가 취소를 요구하는 재항고심에서 ‘인가 결정이 옳다’고 판단한 원심을 결정을 깨고 사건을 서울회생법원 합의부로 되돌려보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법원은 변제계획 인가 후 채무자 소득이나 재산 등 변동상황을 조사해 이에 비춰 인가된 변제계획에서 정한 변제 기간이 상당하지 않게 되는 등 변경 사유가 발생했는지 심리,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어 “그럼에도 1심 법원은 위와 같은 사정에 대해 아무런 심리를 하지 않은 채 법원 업무지침에 따라 변제계획 변경안을 인가한 잘못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2014년 5월 서울회생법원에서 개인회생절차 개시 결정을 받고 그해 10월 같은 법원에서 5년 동안 매달 17만원씩 총 1천35만원을 갚는 변제계획을 인가받은 바 있다.

이후 2017년 12월 ‘채무자회생법’으로 변제 기간이 최대 3년을 넘지 못하도록 개정됐고, 서울회생법원은 2018년 1월 이씨와 같이 법 개정 전 변제계획을 인가 받아 기간 단축 혜택을 받지 않는 채무자들도 새 법 취지에 따라 변제계획을 변경 가능하게 하는 내용의 업무지침을 만들었다.

해당 업무지침은 3년 이상 미납금 없이 변제를 수행한 채무자가 변경계획 변경안을 제출하고 청산가치의 보장과 가용소득 전부 투입 등 요건을 갖춘 것으로 판단되면 변경안 제출안 다음 달까지 변제 기간을 단축하게 하는 내용이다.

이씨는 이에 따라 변제 기간을 5년에서 47개월로 단축하는 내용의 변제계획 변경안을 서울회생법원에 냈고, 법원은 2018년 5월 변경안을 그대로 인가한 것이다.

A사는 이에 인가 결정이 위법하다고 항고했지만, 2심도 “변경안 인가는 정당하고 인가 결정에 위법이 없다”며 거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업무지침에 따라 인가했더라도 채무자의 소득과 재산 변동상황 등을 따져 인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다시 2심 판단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회생법원은 대법원의 결정에 따라 기존 업무지침을 더 이상 운용할 수 없다고 판단해 폐지하기로 잠정적으로 결론내렸다. 이에 변제계획 변경안을 제출한 채무자들은 대법원의 판단 취지에 따라 변경안을 다시 제출하거나 추가 소명자료를 내야 한다.

서울회생법원은 이날 “변제 기간 단축을 기대하고 계시던 채무자분들께 혼란을 드려 유감”이라며 “채무자분들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채무자들은 법원의 유감 표명에도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법원의 결정은 변제기간을 채무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단축한다는 취지로 개정된 채무자회생법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이다.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백주선 회장은 “채무자를 신속하게 빚에서 벗어나게 해 사회경제적으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채무자회생법의 개정 취지를 충분히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변제계획 변경안 인가 여부는 회생법원의 고유 재량영역인데 대법원이 이에 대한 존중없이 채권자 권리보호 측면에만 입각해 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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