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기로’에 선 항공사들…비상 넘어 ‘초비상’까지

[스페셜경제 = 김다정 기자] 우려가 현실이 됐다. 지난해 예상치 못한 정치적인 상황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국내 항공사들은 “사상 최악의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지난해 사상최대 여객 수를 기록하고도 국내 항공사 8곳이 모두 손실을 내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고 있다.


일본 불매운동과 홍콩 시위 등으로 힘겨운 한 해를 보내는 중에도 항공업계는 중국과 동남아 노선 공급을 확대하면서 위기를 타개하려 부단히도 노력했다.


특히 새해 들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얼어붙었던
한국과 중국 간 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항공을 비롯한 관광업계도 활력을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핑크빛 미래도 잠시, 기대에 찬 새해를 맞이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중국 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항공업계는 또다시 악재를 만나고 말았다.


그나마 일본과 홍콩 노선에 국한됐던 지난해와 달리 이번에는 전노선에 대한 여행 수요가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반등을 꿈꿨던 항공사들은 벼랑 끝까지 몰린 모양새다.

 

줄줄이 받아 든 ‘마이너스’ 성적표…올해 반등 가능할까
일본 불매운동 엎친데 코로나까지 덮쳐…경영 ‘악화일로’

 

지난해 국내 항공 여객 수는 사상최대치를 기록했다.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여객은 1억2336만6608명으로 전년동기대비 5% 늘었다. 운항도 72만3592편으로 4.6% 증가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항공사들은 속속 마이너스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다.

 

그나마 항공업계 1위인 대한항공이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반토막에 그쳤다.


대한항공의 연결 재무제표 기준 작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2조6918억원, 2619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2.5%, 59.1% 감소했다.


대한항공을 제외한 나머지 항공사들은 모두 적자 전환했다.


순이익을 의미하는 당기순이익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국내 항공사 8곳이 모두 손실을 내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됐다. 에어서울이 취항하며 8개 항공사 체제가 갖춰진 2016년 이후 국내 항공사가 모두 당기순손실을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현재까지 실적을 발표한 항공사의 당기순손실은 아시아나항공 8378억원, 대한항공 6249억원, 에어부산 912억원, 진에어 542억원, 티웨이항공 433억원, 제주항공 341억원 등이다.


비상장사인 에어서울과 이스타항공의 실적은 4월 공개 예정이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적자가 확정적이라고 보고 있다.

실적 바닥치는 항공업계,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이처럼 국내 항공사들의 실적이 악화일로를 걷게 된 데에는 악화된 한일 관계가 크게 한 몫 했다.


지난해 7월 일본의 경제보복조치로 국내에서 전개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일본여행 보이콧으로 확산됐다. 국내 소비자들은 일본 여행에 대한 신규 예약을 꺼리고 기존 예약조차 취소했다.

 
지난해 일본 노선은 5년 만에 성장세가 꺾였다. 3분기 기준 일본 노선 여객 증감률은 2016년 33.9%, 2017년 25.0%, 지난해 3.5%로 증가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보이콧 재팬’ 운동이 확산되면서 2019년 –14.6%로 급감했다.


이로 인한 타격은 고스란히 항공사에 돌아갔다. 특히 일본 노선을 주 수익원으로 삼던 저비용항공사(LCC)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항공업계는 지난해 유독 불확실한 국제정세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일본 노선의 대체 노선으로 선택한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면서 노선의 대폭 줄어들었다.


또 미중 무역 분쟁이 장기화되고 글로벌 경기가 둔화되면서 작년 항공화물은 427만톤으로 2018년보다 3.8% 감소했다.


이로 인한 타격은 화물 매출이 많은 대형항공사(FSC)가 받았다. 대한항공의 화물 매출은 2조5574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5.1% 감소했다.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환율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외화 결제 비중이 높은 항공사는 환율 변동에 민감한 편이다. 예를 들어 대한항공은 환율 10원이 변동되면 약 850억원의 외화평가손익이 발생한다.


‘엎친 데 덮친 격’…악재 뒤 또 악재

지난해 항공업계는 여러모로 돌파구 없이 악재만 걸친 모양새다.


그나마 올해 들어 일본 불매운동의 화력이 다소 사그라들면서 항공사들이 해당 노선에 대한 운항은 조금씩 재개하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증가하려는 조짐을 보이면서 실적 반등의 기대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그나마 일본의 대체지로 운항하던 중국과 동남아의 하늘길마저 쪼그라들고 있다.


국내 항공사들은 이미 중국 노선의 80% 이상을 운항 중단 또는 감편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더해 중국 이외의 다른 지역까지 노선 감편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에서 발발된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싱가포르·태국 등 제3국을 다녀온 뒤 확진 판정을 받은 사례가 생기면서 동남아 노선 탑승률이 크게 줄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 정부도 최근 지역사회 감염이 확인된 싱가포르·일본·말레이시아·베트남·태국·대만 등에 대한 여행과 방문을 최소화해달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한화투자증권 김유혁 연구원은 “일본 불매운동 여파와 홍콩 사태가 회복되기도 전에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항공 수요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며 “특히 단거리 노선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며 대형항공사 대비 저비용항공사 타격이 상대적으로 클 것으로 판단된다”고 내다봤다.  

 

정부 3000억원 대출해준다지만…실효성은 글쎄?
고강도 자구책 마련 사활…급여삭감·무급휴직 등


‘하늘길 무너져 쏟아날 구멍이 안 보인다’

이래저래 꽉 막힌 하늘길에서 솟아날 구멍을 찾지 못한 항공사들은 FSC, LCC 가릴 것 없이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급기야 비상경영을 넘어 ‘위기경영체제’를 선언했다.


아시아나항공 한창수 사장은 19일 임직원에게 보내는 담화문을 통해 “지난해 한일관계 악화에 이어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항공 수요가 크게 위축돼 회사가 위기에 직면했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비용 절감 및 수익성 개선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날 한 사장은 임금의 40%를 반납해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모든 아시아나항공 임원들은 일괄 사표를 제출하고 급여를 30% 반납하기로 했다. 모든 조직장 또한 급여를 20% 반납한다.


LCC 업계 1위인 제주항공은 위기경영체제까지 돌입했다. 이석주 대표는 12일 “비상경영을 넘어 위기경영체제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제주항공은 경영진이 30% 이상의 임금을 반납하고, 기존 승무원을 대상으로만 진행했던 무급휴가 제도를 전 직원 대상으로 확대했다.


진에어 역시 창립 12년 만에 처음으로 희망휴직을 실시한다. 무급으로 최소 1주에서 최대 12개월까지 신청 가능하다. 현재 티웨이항공도 희망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에어부산은 3월부터 자율 무급휴직에, 에어서울은 오는 5월까지 단기 휴직을 받고 있다. 이스타항공은 최소 15일에서 최대 3개월까지 무급휴직 제도를 상시 진행 중이다.

긴급대책 내놓은 정부…LCC, 최대 3000억원까지 대출 가능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도 생존기로에 선 항공업계를 위해 긴급대책을 내놨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10개 항공사가 김현미 국토부 장관과의 만남에서 금융지원을 요청한 지 일주일 만이다.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는 지난 17일 ‘코로나19 대응 경제장관 회의’를 열고 긴급 피해 지원과 신규시장 확보, 경영 안정화 지원 등 세 갈래의 ‘항공분야 긴급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국토부 김현미 장관은 “항공은 국가 간 인적·물적 이동의 핵심수단인 만큼 국제적 감염병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는 분야”라며 “유동성 부족을 극복하기 위한 긴급 자금과 함께 항공수요 조기 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대책으로 내놨다”고 말했다.


이번 긴급 지원 대책에는 ▲공항시설 사용료 납부 감면 ▲수수료 할인 ▲감축 노선 운수권 및 슬롯 미사용분 회수 유예 ▲프랑스·헝가리·포르투갈 노선 등 운수권 배분 ▲베트남 취논·라오스 팍세 등 미취항 노선 신설 등이 있다.


특히 매출 급감 등으로 일시적인 유동성 부족을 겪는 항공사를 대상으로 대출심사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다. LCC의 경우 최대 3000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3000억원 지원 환영하지만…실효성은 글쎄?

이번의 정부 긴급 대책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단 항공사들은 최대 3000억원 대출을 지원한다는 내용에 대해선 긍정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정부의 금융지원책의 경우 가이드라인 수준으로 아직 세부사항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번 긴급지원 자금은 정부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항공사들을 위해 특별히 편성한 게 아니다. 기존에 중소·중견기업 자금지원을 위해 편성된 자금에 LCC를 급하게 포함시켰다.


국토부는 업계가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에 대출을 신청할 경우 최대한 빨리 지원될 수 있도록 금융위원회, 산업은행 등과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이들 항공사들의 자금수혈이 한시가 급하다는 점이다. 매각 작업 중인 이스타항공의 경우 최근 일시적 유동성 문제로 정유사로부터 일부 항공편에 대한 급유 중단 통보까지 받았을 정도다.


하지만 LCC는 대기업 계열이기 때문에 중소기업처럼 신속한 지원이 어렵고 기업 신용평가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부 재무상태가 좋지 않은 항공사들은 담보를 요구하거나 지원 금액을 줄일 수도 있다.


일부 공항시설사용료 등 감면책에 대해서도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항공사에 사용료 유예분에 이자 부과 방침을 밝히면서 일부 항공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는 3~5월 공항시설사용료를 유예하는 대신 코픽스(COPIX) 기준금리 1.6%를 적용해 이자를 받기로 했다.


3개월간 유예되는 공항시설사용료는 대한항공 417억원, 아시아나항공 213억원, 저비용항공사 249억원 등 총 879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이자를 포함하지 않은 금액이다.


공항공사가 두 자릿수 영업이익률에 조 단위 이익잉여금까지 쌓아뒀기에 항공사와 코로나19 사태 고통분담을 회피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금 항공사들이 생존기로에 서 있는데 공항공사 등은 돈을 쌓아놓고도 우리의 어려움을 ‘나 몰라라’하는 듯한 모습”이라며 “항공업계와 정부, 공항공사 등 모든 관계자들이 힘을 합쳐 이 어려움을 헤쳐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 / 김다정 기자 92ddang@speconomy.com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