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선다혜 기자]지난 9일 오후 11시 50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향년 83세에 별세했다. 김 전 회장은 약 1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해왔으나,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평소 뜻에 따라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어갔다.

대우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지난해부터 급격하게 악화돼 귀국 한 이후 아주대병원에서 통원치료를 받았으며, 올해 하반기부터 병세가 더 악화돼 장기 입원에 들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우그룹 회장은 1936년 대구 출생으로 경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만 30세인 1967년 대우를 설립한 후 1999년 그룹 해체 직전까지 자산규모 기준으로 현대에 이어 국내 2위의 기업을 일군 대표적인 1세대 기업인이다. 그는 삼성과 현대를 키운 이병철과 정주영 등 1세대 창업주들과는 달린 샐러리맨으로 기업을 일궈낸 1.5세대 창업가로 분류된다.

그는 1990년대 세계경영을 가치로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하면서 신흥국 출신 최대의 다국적 기업으로 대우를 성장시켰으며, 당시 대우의 수출규모는 한국 총 수출액의 10% 규모에 달했다. 1998년에는 우리나라 총 수출액 1323억원 가운데 대우의 수출액은 186억 달러로 약 14%나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63년 한성실업에 근무하면서 국내 최초로 섬유제품 직수출을 성사시켰으며, 창업 후 수출만으로 회사를 초고속으로 성장시켜 대우신화라는 신조를 탄생시켰다. 이후 1969년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호주 시드니에 해외 지사를 설립하고,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열었다. 이 때부터 김 회장이 이끄는 대우는 국내 중소기업들의 수출창구 역할을 했다.

또 1976년부터는 한국기계(대우중공업)와 1978년 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 대한조선공사(대우조선해양) 등 부실기업을 인수해 단기간 내 경영정상화를 이루는 등 한국의 중화학산업화를 선도했다. 같은시기에 에콰도르(1976년)에 이어, 수단(1977년), 리비아(1978년) 등 아프리카 시장진출을 통해 해외사업의 터를 닦았다.

1980년대 무역·건설 부문을 통한해 ㈜대우를 설립하고, 그룹화 작업에 착수했다. 이후 자동차, 중공업, 조선, 전자, 통신, 정보시스템, 금융, 호텔 등 전 산업의 내실을 갖춰서 세계진출에 박차에 나섰다. 이에 1999년 해체 직전까지 대우는 41개 계열사와 600여개의 해외법인‧지사망, 국내 10만명, 해외 25만명의 고용인력을 토대로 해외 21개 전략국가에 현지화 기반을 닦았다. 1998년 당시 자산총액은 76조 7000억원, 매출은 91조에 달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성과를 이룩했던 당시 대우그룹의 부채 규모는 89조원에 달했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30조원의 국민 세금이 투입됐다. 그러나 대우그룹은 외환위기와 함께 유동성 위기를 맞은 이후 1999년 8월 채권단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에 들어간 뒤 해체됐다.

이후 김 전 회장은 2010년부터 마지막 봉사의 일환으로 GYBM(Global Young Business Manager) 양성사업에 매진,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4개국에 1000여명의 청년사업가를 배출하기도 했다.
한편, 김 전 회장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하며 빈소는 아주대학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다. 조문은 10일 오전 10시부터 가능하고, 영결식은 12일 오전 8시 아주대학병원 별관 대강당에서 거행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 장녀 김선정 (재)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스페셜경제 / 선다혜 기자 a40662@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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