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이후 사모펀드 부실·개인비리 잇따라
팔 때 끼워 팔고 보상은 따로…피해자들 분통
76억 셀프대출로 부동산 29건 매입 직원 '경악'
윤 행장 리더십 타격.."국책은행 타이틀 무색"

▲ 기업은행의 금융사고는 공교롭게 올 초 윤종원 행장 취임 이후 잇달아 터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월 29일 열린 제 26대 은행장 취임식의 모습이다.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윤성균 기자]“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은행장으로서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깊은 반성과 뼈를 깎는 노력으로 신뢰 얻는 은행으로 거듭나겠다.”

영업점 직원이 76억원을 ‘셀프대출’ 받아 부동산 투기를 한 사실이 드러나자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 고개를 숙였다. 윤 행장이 7월 말 기업은행 창립59주년 기념식에서 “금융사고·부패 제로를 실현하자”고 당부한 지 불과 한 달 여 만에 벌어진 일이다.

기업은행의 금융사고는 공교롭게 올 초 윤 행장 취임 이후 잇달아 터지고 있다. 디스커버리펀드 환매중단 사태, 직원 셀프 대출 등 사고 유형도 다양하다. ‘국책은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기업은행에 뼈저린 반성이 요구되고 있다.

선지급 결정에도 투자자 뿔난 이유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디스커버리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여전히 진통을 겪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된 것은 자회사인 IBK투자증권의 선지급률이다. IBK투자증권은 지난 4일 이사회를 통해 디스커버리펀드 투자 피해자들에게 투자원금의 40%를 선가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선지급은 투자액 일부를 미리 지급하고, 펀드 자산 회수, 분쟁조정 결과 등에 따라 보상 비율이 확정되면 사후 정산하는 방식이다. 증권사 중 디스커버리펀드 선지급안이 결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BK투자증권은 디스커버리펀드의 환매중단 장기화에 따른 고객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유동성 공급 목적으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사기피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지난 7월 17일 IBK투자증권 본사 앞에서 IBK투자증권 규탄 집회를 열었다. (사진촬영=윤성균 기자)

그러나 투자피해자들은 여전히 불만을 토로했다.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IBK투자증권과 서병기 대표는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자들을 두 번 실망시키고, 두 번 우롱했다”며 “평생모아 믿고 맡긴 대가치고는 너무도 가혹하고 억울하며 치가 떨린다”며 격분했다.

이들 피해자들은 기업은행과 동일한 상품에 가입했는데 증권사 투자상품이라는 이유로 은행대비 낮은 보상율을 책정한 부분을 문제 삼았다. 앞서 기업은행은 지난 6월 디스커버리펀드 투자자들에 50% 선지급안을 제시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판매를 할 때는 기업은행과 똑같이 WM센터에서 팔아 놓고 대처는 제각각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기업은행은 2017년부터 은행과 증권사의 다양한 투자상품 판매와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WM센터를 기업은행과 IBK투자증권의 복합점포로 운영하고 있다. 투자피해자들은 WM센터가 은행고객에게 투자증권사 상품임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임의로 고객 동의없이 IBK투자증권 상품에 가입시키는 등 편법적인 판매행위를 일삼았다고 폭로한 상태다.

은행-증권사, 미스터리 쇼핑 나란히 ‘꼴지’
WM복합 점포에서 디스커버리펀드 상품에 가입하게 된 가정주부 A씨는 “증권사에 발을 들여다 본 적도 없는데 증권사 상품에 가입이 돼있었다”며 “기업은행과 똑같은 상품을 팔았으면 최소한 기업은행과 똑같이 보상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투자자들 중에는 이런 식으로 은행고객이었지만, 증권사 상품을 소개받아 가입한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설명의무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PB(프라이빗뱅커)가 임의로 계약서를 기재하고 작성한 사례도 확인됐다. 실제로 고령자 B씨는 고령투자자 가입확인서 상에서 최종적으로 받아야 할 자필 서명을 누락하고 서류상의 확인 항목도 센터장이 임의로 체크를 한 후 무리하게 펀드(투자권유 유의상품)에 가입된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은행 및 IBK투자증권의 투자권유준칙에 따르면 만70세 이상 고령투자자의 경우에는 권유 가입확인서 및 상담확인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IBK투자증권 관계자는 “은행고객들을 소개받아 증권사에서 판매프로세스에 맞춰서 했는데, 크게 어긋난 것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의혹이 가시지 않은 상태다. 특히 IBK투자증권은 지난해 금융당국의 ‘미스터리쇼핑’ 결과 증권사 가운데 최하위를 차지해 내부통제의 부실을 드러냈다.

 

▲ 금감원 증권사 미스터리쇼핑 평가 결과 (자료제공: 박용진 의원실) ⓒ강민철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최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증권사를 상대로 한 미스터리 쇼핑 결과 증권사 17곳 가운데 IBK투자증권이 최하 점수인 31.0점을 받았다. 전체 평균인 72.7점에서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이다.

모회사인 기업은행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이 지난해 금융사 28곳을 대상으로 자체실시한 ‘2019년 펀드 판매회사 평가’에서 기업은행은 27위를 머물렀다. 이 조사는 미스터리 쇼핑을 통한 영업점 모니터링과 펀드 수익률 등 특성, 사후관리를 종합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기업은행은 수익률 측면에서 비교적 높은 점수(A)를 받았지만 투자자보호 측면에서 최하 등급(C)을 받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기업은행과 IBK투자증권은 미스터리쇼핑에서 각각 28개 금융사 중 27위, 17개 증권사 중 17위를 기록했다. 두 기업의 판매 시스템과 내부통제에 구조적으로 문제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책 타이틀 무색…고객 신뢰 잃어
이런 평가를 의식해서였을까, 윤종원 행장은 지난 7월 기업은행 창립 59주년 기념식에서 무엇보다 신뢰회복을 강조했다. 윤 행장은 “어려운 경제상황을 맞아 지금처럼 중소기업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한다”며 “디스커버리·라임으로 손상된 신뢰회복에도 역점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윤 행장은 미래를 개척할 앞바퀴로 ‘혁신금융’을, 조직의 균형과 중심을 유지하는 뒷바퀴로 ‘바른금융’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바른경영의 주요 과제로 ▲IBK 바른경영지수 신설 ▲IBK윤리헌장 제정을 내놓았다. IBK윤리헌장은 기업은행은 물론 모든 자회사에도 적용되는 윤리경영 체계다.

그러나 윤리헌장이 선포되고 불과 한 달 여 만에 직원의 셀프대출 사태가 벌어지면서 그 의미가 퇴색됐다. 이 직원은 가족이 대표이사로 있는 회사에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는 방식으로 총 29건, 76억원을 대출받았다. 대출 받은 돈은 경기도 일대의 아파트, 오피스텔, 연립주택을 매입하는 데 쓰였다.

기업은행은 즉각 해당 직원을 면직하고, 사기 등의 혐의로 형사고발과 대출금 회수에 나섰지만, 여론은 차갑다.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린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은행 직원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했는데 이것은 이 국책은행 내부관리에 뭔가 커다란 구멍이 있다라는 것이다”라며 “‘내 돈 안심하고 맡겨도 되나’라는 생각이 안 들면 이상하다”라며 기업은행이 처한 현 상황을 꼬집었다.

 

스페셜경제 / 윤성균 기자 friendtolife@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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