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경제=선다혜 기자]오는 19일 스위시 제네바에서 열린 한‧일 2차 양자협의를 앞두고 일본 정부가 액체 불화수소 (불산액)의 수출을 승인했다.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행한 이후 액체 불화수소 수출 승인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렇게 일본은 한국의 수출 규제 철회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서 규제 대상 품목의 수출을 찔끔찔끔 허가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절차에 돌입했을 때를 대비한 포석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3종의 수출을 모두 허가하면서도, 규제 자체를 유지해 한국과의 분쟁에서도 주도권을 잃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의 품목별 승인에도 “수출 제한적 상황이 발생한다는 본질은 달라질 게 없다”면서 예정대로 분쟁해결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이다.
1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최근 화학소재 생산업체 ‘스텔라케미파’가 요청한 불산액 수출을 허가했다. 이번에 승인된 수출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지난 7월 수출 규제 발표 직후 주문한 물량 가운데 일부로, 일본 정부는 서류 보완을 이유로 반려해왔다.
때문에 산업계에서는 일본의 수출 승인이 WTO 소송전을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일본의 관련 법규에 따르면 한국에 대한 수출 심사는 최장 90일 걸리도록 돼 있다. 서류 보완 등을 이유로 차일피일 시간을 끌더라도 특별한 이유 없이 수출 허가를 미루면 WTO 협정에서 금지하고 있는 수출 통제가 된다. 따라서 조금씩 수출을 하면서, WTO 협정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일이 없도록 함으로서 한국과의 분쟁절차에서 고지를 점하려고 하는 것이다.
또 수출 규제에 따른 일본 기업의 타격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스텔라케미파는 세계 고순도 불화수소 시장의 70%를 하지하는 업체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시행 이후 지난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1%, 88%가 급감했다.
이번 불산액 수출 승인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종(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불화수소)의 수출 규제 넉 달 만에 수출길이 제한적으로나마 열렸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8월에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 수출 2건과 기체 불화수소(에칭가스) 수출 1건, 9월에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수출 1건을 각각 승인했다.
이 같은 행보를 보자면 일본 정부는 수출 규제의 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WTO의 분쟁에서도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실제로 일본 요미우리신문 측은 일본 정부가 한국의 수출 규제 철회 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최종 방침을 정하고, 이런 입장을 미국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오는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한·일 2차 양자협의에서 두 나라가 평행선을 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셜경제 / 선다혜 기자 a40662@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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