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대재해기업처벌법
- 당론 채택 여부 등 오락가락
- 강은미“연내 국회 통과해야”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시스

 

[스페셜경제=원혜미 기자]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처리를 당론으로 채택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민주당은 중대재해법에 대한 입장을 수차례 번복해 정의당과 노동계의 반발을 사 왔다. 

 

당론 채택 여부 등 오락가락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 11일 강원 현장 최고위원회의 후 중대재해법 당론 채택 여부를 묻는 취재진에게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답했다. 그러나 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원장은 같은날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 후 ‘어제 이 대표가 당론 채택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는 질문에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닐 것”이라고 답했다. 사실상 당론 채택을 부정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후 이 대표는 고(故) 전태일 열사의 50주기 하루 전날이었던 12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전태일 열사 묘소에서 “과연 우리 사회가 50년 동안 노동자들을 위해 얼마나 나아졌는가 (생각하면) 열사님께서 편하시지 않을 것 같다”면서도 중대재해법에 대해선 “집중 협의를 하도록 얘기를 해뒀다”며 말을 아꼈다. 


이 대표는 중대재해법 제정과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 중 방향을 정할 것으로 알려진 지난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중대재해법 제정에 대해 침묵하는 모습을 보여 논란이 일었다. 중대재해법을 새로 제정하는 대신 기존 산안법을 고쳐 벌금을 부과하는 선에서 이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안팎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지난 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중대재해법 제정에 대해 “이번 정기국회 안에 매듭짓겠다”며 “어제(16일)도 최고위원회의에서 중대재해법과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을 이번에 처리한다는 (당의) 원칙을 갖고 소관 상임위원회 심사에 임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중대재해법을 민주당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고 산안법 개정안과 같이 논의하느냐’는 패널의 질문에는 “중대재해법은 하나의 법안만 나와 있는 게 아니다”라며 “좀 의견이 다른, 또는 쟁점이 포함된 몇 개의 법안이 나와 있어서 어차피 논의를 해야 된다. 그 법과 저촉되거나 중복될 수 있는 다른 법들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당론이냐 아니냐를 쟁점으로 삼는데, 지금 과거 정당의 틀로 보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 민주당의 당론 법안은 지금까지 3개뿐”이라며 “중대재해법은 법안 내용에서도 상임위에 나와 있는 법안 자체도 서로 간 쟁점이 많이 있다. 조정을 해야지 어떡하나. 조정도 하지 않고 이게 당론이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경직된 처리 자세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거듭 말하지만 그런 법(중대재해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제정에 찬성한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산안법 개정보다 중대재해법 제정에 힘을 싣는 발언을 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장철민 민주당 의원은 이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장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은 예방 중심의 법 개정으로 노동계가 요구하는 처벌 위주의 중대재해법과는 차이를 보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이 대표는 20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중대재해법과 관련해 “노동자를 비롯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는 법안”이라며 “법 이름에 ‘예방’을 넣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원칙을 지키며 법안을 처리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재계를 비롯한 여권 내에서도 경영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명시된 법안에 대한 반발이 거세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어 “관련법과의 정합성, 법적 완결성 등은 법사위가 판단해주기 바란다. 그러나 중대한 재해를 예방하고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신은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법안의 세부안이나 명칭에 대해선 소관 상임위원회 논의를 통해 조정될 수 있음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 대표는 중대재해법의 당론 채택에 대해서는 거리를 뒀다. 그는 회의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과거의 틀로 당론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시대가 아니다”라며 “공수처법도 당론이 아니지만, 당이 대단히 힘을 들이고 있지 않나. 옛날 방식으로 그렇게 보지 말길 바란다. 당이 국회보다 위에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중대재해법 제정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병행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것은 상임위에 맡기겠다”며 “뭐가 된다고 해서 이쪽을 포기하는 방식은 결코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간 야당과 노동·시민사회계에선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민주당이 중대재해법과 관련해 ‘제정 공언(9월)→연내 처리(11월16일)→산업안전보건법 개정(11월17일)→연내 처리 불가(11월20일)’로 수시로 말을 바꾸며 입장을 번복해왔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중론은 노동자 사망 등 재해 사고 발생 배경에 기업과 정부 책임자에 대한 중대한 과실이 드러났을 때 사업주나 원청의 처벌을 강화하는 정의당의 중대재해법 법안이 ‘너무 세다’는 것이다. 


이는 민주당이 당론으로 섣불리 채택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재계는 산안법이 전면 개정된 지 1년도 안 돼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이 ‘과잉 입법’이라고 지적하며 거세계 반발하고 있다. 


과잉 입법이라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사람의 생명 앞에 어떻게 과잉이라는 말이 붙을 수 있냐”며 “사람 목숨이 크레인값보다 가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국회의 역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대재해법은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을 모태로 한다. 산재가 발생했을 때 경영진의 법적 책임을 더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해당 법안은 올해 4월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에서 화재로 38명이 숨지면서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의 원인이 사업주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현재의 산업법으로는 안전에 문제가 된 사람들을 처벌하는데 불충분하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자 중대재해법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유다. 


큰 틀에서 중대재해법과 산업법은 공직자를 포함한 다양한 문제에 있어서 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사회적인 처벌 조항을 포함하느냐가 가장 큰 차이다. 


이와 관련,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 최명선 중대재해법 재정 운동본부 상황실장은 지난 13일 SBS CNBC ‘경제현장 오늘-집중진단’에 출연해 “현재의 산업법은 말단 관리자와 노동자를 처벌하고 있지만 중대재해법은 경영 책임자를 처벌해야 (책임자가) 현장에 투자하고 (재해가) 재발 방지된다고 하는 게 가장 큰 차이”라고 말했다. 해당 법안이 나오게 된 배경이 기존 산업법이 처벌에 많은 한계가 있어서라는 것이다.


아울러 지난 24일 전남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폭발사고로 노동자 3명이 숨지자 노동계에서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중대재해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 민주노총 광주본부는 25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동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앞에서 총파업 총력투쟁 대회를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이른바 전태일 3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뉴시스

민주노총은 지난 25일 코로나19 확산 우려에도 노조법 개정 저지 등을 내걸고 총파업을 진행했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중대재해법 제정안으로는 지난 6일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가 발의한 법안과 이달 12일 박주민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 등이 있다. 


노동계에 따르면, 강 원내대표 법안은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주에게 최소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5000만∼10억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반면, 박 의원 안은 사망 시 사업주에게 2년 이상 징역 또는 5억원 이상의 벌금을 부과하게 돼 있다. 두 안 모두 기업이 안전 의무를 소홀히 했을 경우 매출액의 10%까지 벌금을 물릴 수 있는 가중처벌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정의당의 발의한 중대재해법에 대한 공감을 표한 상태다. 그러나 이 법안이 연내 정기국회에서 처리될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에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어서다. 


이와 관련,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출연해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은 언제 처리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중대재해법은 제정법이라서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면서 “올해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긴 물리적으로 어렵다”고 답했다. 


이어 “반대하는 게 아니라 처리해나가는데 공청회, 논의, 법안소위, 전체회의, 본회의가 있기 때문에 기간이 물리적으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은미“연내 국회 통과해야”
이에 대해 강 의원은 26일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지금 시간이 한 달도 넘게 남았는데 왜 못하겠느냐”며 “물리적인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당 대표가 여러 차례 말씀하신 바가 있는데 추진의 속도가 문제였을 것이고 원내에서 조금 다른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며 “계속되는 사고로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하는 국민의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집권 여당이 당론으로 결정했어야 할 부분이고 연내 안에는 통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페셜경제 / 원혜미 기자 hwon611@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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