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도 악화일로 치닫는 국‧내외 경영환경…생존 위한 고군분투


[스페셜경제 = 선다혜 기자] 지난 시간 우리는 송년특집을 통해서 재계의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2019년은 말 그대로 재계와 기업들에게는 암흑과 같은 시간이었다. 정부가 시시각각 내놓은 각종 규제와 미‧중 무역전쟁, 그리고 한‧일 갈등까지 겹치면서 한숨도 쉽게 내쉴 수 없는 한 해였다. 


그렇다면 얼마 남지 않은 경자년(庚子年) 새해는 어떨까. 재계에서는 새해도 2019년의 연장선상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내년 초에는 ‘사법리스크’로 정기인사까지 뒤로 미뤄진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공판이 기다리고 있고, LG전자와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전쟁’ 결과도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고(故) 조원태 회장의 타계 이후 ‘조원태 체제’ 안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한진그룹 역시 갑작스럽게 불거진 남매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연초부터 시끄러울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일본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 호텔롯데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롯데그룹과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한 HDC현대산업개발 등 재계의 각종 이슈가 꼬리에 꼬리를 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잿빛 전망만 나오는 ‘경자년’ 새해를 준비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했다.

‘사법리스크’로 발목 잡혔다




이재용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공판이 내년 2월로 예정되면서 삼성전자의 모든 일정은 올스탑 됐다. 통상적으로 12월 첫째주에 진행되는 정기 인사 단행도 무기한 연기됐으며, 최악의 경우 이 부회장이 재구속되면 인사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통상적으로 ‘오너 공백’이 생기면 기업들은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투자‧고용‧인사 등의 부문을 최대한으로 축소하기 때문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어 내년 경영 전략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법리스크’로 인해서 내부적인 분위기가 침체된 가운데서도 내년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집행유예를 받았던 2심에 대해서 일부분 ‘파기환송’이 내려진 만큼 재구속에 대한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지난 10월 사내이사 연임도 하지 않았다. 이 부회장의 리스크를 그룹 전체로 확대시키지 않기 위함이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다고 해도 실제로 구속이 집행될 경우 리스크는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정부의 대대적인 투자를 받으면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신생기업들과 거리를 벌리고, 글로벌 시장에서 1위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는 인텔를 견제하기 위해서 ‘초격차 전략’을 수립했다. 

 

초격차 전략이란 말 그대로 대규모 투자를 기반으로 경쟁업체들과 기술차이를 벌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구속된다면 초격차 전략을 위한 투자 역시도 좌초될 수 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재구속 여부가 삼성전자의 내년 경영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매년 힘들었다…내년엔 ‘변화’와 ‘혁신’에 초점?
 



롯데그룹은 2015년도 경영권 분쟁이 불거진 이후 ‘매해마다’ 힘들었던 기업으로 꼽힌다. 경영권 분쟁 이후인 2016년도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경제보복이 본격화된 이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2017년과 2018년에는 국정농단에 휘말리면서 신동빈 회장이 약 8개월가량 구속되기도 했다. 4년 동안 끊이지 않고 굵직한 이슈들에 휘말려왔던 것이다. 심지어 2019년에는 외교적인 문제로 불거진 ‘한‧일 갈등’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불매기업 1호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만큼 2020년에 롯데는 호텔롯데 상장을 비롯한 미래먹거리 발굴 등을 위해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 롯데그룹은 연말 정기임원 인사에서 쇼핑과 호텔·서비스 등 2개 핵심 BU(사업부문)장 교체를 비롯한 계열사 대표 22명을 바꾸고, 롯데쇼핑 산하 5개 계열사를 통합 법인으로 묶는 초고강도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올해 상황이 좋지 않았던 만큼 정기인사에서 외부 인사를 영입하는 등의 ‘변화’와 ‘혁신’ 보다 ‘안정’에 무게를 뒀던 것하고는 정반대인 셈이다.
 

롯데 신동빈 회장은 계열사 사장단, BU‧지주사 임원 등 10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도 VCM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예측과 상황별 준비를 철저하게 거쳐야 한다”면서 “기존의 틀과 형태를 무너뜨릴 정도의 혁신이 필수다”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또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의 한국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롯데그룹이 변화된 사회에서 어떤 회사를 될 것이며 이를 위한 명확한 비전과 구체적인 전략 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변화와 혁신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미래 생존’을 위함으로 풀이된다. 롯데그룹은 다른 기업들에 비해서 유난히 풍파가 많았고, 이에 따른 경영환경 역시 녹록치 않았다. 일례로 국내 기업들에 대한 중국정부의 경제보복이 가시화됐을 때 롯데그룹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피해가 복구되기도 전에, 한‧일 불매운동이 불거지면서 타격은 더 커졌다. 이외에도 정부의 사업 확장 규제와 온라인 업체들의 시장 잠식 등의 문제로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롯데그룹은 내년 상반기 온라인 통합 플랫폼을 론칭해 시장 점유율을 늘려오는 온라인몰 공세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 롯데의 온라인 쇼핑몰은 백화점, 마트, 닷컴, 하이마트 등 등 7개 계열사가 각각 운영됐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새롭게 선보이는 애플리케이션(앱)인 ‘롯데온(ON)’을 통해서 한데 모아서 선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합전략으로 2023년까지 e커머스 취급 규모를 현재의 3배 수준인 20조원까지 확대한다는 것이다.

희비가 엇갈린 대어급 ‘M&A’…결과는?
 

 

올해는 코웨이, 아시아나항공, 이스타 등 대어급 매물들이 M&A 시장에 쏟아지는 기현상이 많았다. 또 입찰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던 후보들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면서 ‘이변’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주목을 받았던 것은 금호그룹의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이었다. 국내 항공업계에서시장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었던 아시아나항공이었던 만큼 새주인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그러나 약 2조원에 달하는 몸값과 많은 부채로 인해 대기업들은 ‘유력 인수 후보’에 거론되는 것조차 꺼려했다. 이후 매각전이 난항이 예상된다는 우려도 나왔지만 본입찰에 HDC현대산업개발-대우미래에섯 컨소시엄이 뛰어들면서 항공업계 2위 항공사로서의 체면은 차릴 수 있게 됐다. 


HDC현산 컨소시엄은 금호산업이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지분 31.05%에 대한 주식매매계약(SPA)를 체결했다. 따라서 31년 만에 아시아나항공은 범(凡)현대가 일원으로 거듭나게 됐다. 새주인이 된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600%를 넘는 높은 부채율에 허덕거리고 있다. 


이에 HDC현산은 인수금액 2조 5000억원 가운데 3200억원만 금호산업이 보유한 구주에 투입하고, 나머지 2조원이 넘는 금액은 유상증자를 통해서 아시아나항공 재무구조 개선 등 기업정상화 자금을 쓴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구조조정도 단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HDC현산 정몽규 회장은 “구조조정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말했지만, 업계에서는 최근 항공업계가 업황 악화를 겪고 있는 만큼 예정된 수순이라는 반응이다. 


또 다른 대어급 매물로는 코웨이도 들 수 있다. 웅진그룹에 재인수 된 지 3개월 만에 M&A시장 매물로 나온 코웨이 역시 캐시카우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던 매물이었다. 하지만 최근 국‧내외 경영환경이 좋지 않다는 점과 인수유력후보로 떠올랐던 SK네트웍스가 공정위의 기업결합심사 등의 문제로 입찰을 포기하면서 코웨이 인수 역시 난항에 빠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생각하지도 못했던 후보자인 넷마블이 입찰에 참여하면서 단숨에 우선협상대상자까지 됐다. 현재 코웨이와 넷마블은 ‘인수 대금’을 놓고 약 두 달 가량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두 가지다. 인수전 초반만해도 양사는 코웨이가 주장해왔던 1조 8000억원 선의 인수대금에 대해서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뤄냈다. 


이후 약 한달 동안 실사를 거친 뒤 주식매매예약(SPA)을 체결할 것으로 예상됐던 인수전 판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넷마블이 1000억원 가량 인하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넷마블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후 코웨이 측에서 노무 리스크 터졌다.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된 코웨이 CS닥터노조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것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M&A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지난달 27일 넷마블이 코웨이 인수를 최종확정하면서 이 역시도 일단락됐다.  


아시아나항공 놓친 애경그룹 이번엔 ‘이스타항공’  

 

이스타항공은 올해 M&A시장에서 가장 뒤늦게 나온 매물이지만 시장에 나오기 무섭게 인수 유력 후보가 정해진 곳이기도 하다. 바로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서 실패의 쓴 맛을 봐야 했던 애경그룹이다. 

 

애경그룹은 아시아나항공 본입찰에서 HDC현대산업개발-대우미래에셋 컨소시엄에 밀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되지 못했다. 이후 경영난으로 인해 저비용항공사(LCC)인 이스타항공이 M&A시장 매물로 나오자 애경그룹은 바로 경영권 인수 협상에 착수했다. LCC업계에서 이스타항공은 업계 5위다.
 

현재 이스타항공의 대주주는 이스타홀딩스로 전체 지분의 약 40%를 소유하고 있으며, 최대 주주는 이상직 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의 자녀 2명이 지분 전체를 나눠 가지고 있다. 애경그룹은 이스타홀딩스가 보유한 이스타항공 지분 대부분을 인수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사 인수에 애경그룹이 열을 올리는 것은 사업포트폴리오 ‘확대’ 목적이다. 핵심 계열사 중에 하나로 꼽히는 제주항공은 그동안 노선 확대 등 양적 성장을 통해서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성장 전략을 추진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제주항공을 비롯한 진에어, 이스타, 에어서울 등 저비용항공사들이 많아지면서 시장 경쟁도 심화됐다. 또 올 상반기부터는 한‧일 갈등으로 인해서 일본 노선이 대폭 감축된 것도 실적 부진에 영향을 미쳤다. 이에 애경그룹은 항공사를 인수함으로서 슬롯(특정 시간대에 공항을 이용할 수 있는)과 단독 취항지 등의 자산을 활용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려고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다른 기업들이 ‘업황 부진’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항공사 인수를 꺼려하는 것과는 아예 반대되는 행보인 셈이다.

‘공격적인’ 경영 행보



올해 유난히 기업들 간의 갈등과 분쟁이 많았던 만큼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그 중심에는 LG그룹이 서 있다. LG화학은 올해 4월 2차 전지 사업과 인력탈취에 대한 영업비밀 침해를 놓고 SK이노베이션을 미국 ITC에 제소했다. 


이후 지난 9월 LG전자는 베를린의 가전박람회 IFA 2018에서 삼성전자가 출시하는 8K TV 화질이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면서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이후에도 LG전자는 유튜브 등을 통해서 삼성전자의 QLED(양자점발광다이오드) TV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광고를 올리는 등 삼성전자와의 ‘TV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LG그룹이 국내기업에 국한되지 않고 중국‧유럽 등 해외 기업들에게도 법정소송 등을 불사하는 이유가 구광모 회장의 젊은 패기와도 연관돼 있는 것이라고 봤다. 지금까지 LG그룹은 재계에서도 손꼽히는 ‘모범 기업’으로 불렸다. 다른 기업들과의 마찰이나 갈등을 유발시키려고 하지 않는 등의 정도를 지키는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광모 회장 취임 약 2년 만에 보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는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모범기업 LG그룹의 광폭 행복는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스페셜경제 / 선다혜 기자 a40662@speconomy.com 

<사진제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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