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세타2 GDi 등 엔진 품질 개선 비용에 3조대 책정
3분기 영업익 2배 이상 ‘역대급’ 규모‥대규모 적자 전환 불가피
잇따른 품질 논란으로 홍역‥타협없는 기술력으로 브랜드 가치 제고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우리는 항상, 고객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소통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품질경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현대·기아자동차가 3조대의 품질비용(충당금)을 올 3분기 실적에 반영하기로 한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속에서도 현대·기아차는  신차 출시와 정부의 개별소비세 인하, 내수 시장의 회복에 힘입어 3분기 1조원 중후반대의 영업이익이 예상됐었다. 그러나 역대 최대 규모 충당금이 이번 실적에 반영됨에 따라 적자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눈 앞의 이익보다 고객 가치를 높여 브랜드 공신력을 강화하겠다는 오너의 책임을 보여준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19일 각각 2조1352억원, 1조2592억원의 품질 비용을 3분기 실적에 충당금으로 반영한다고 공시했다. 이는 기존 충당금을 제외한 비용으로, 3조3944억원이 손실로 반영된다. 

 

현대·기아차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투자 설명회를 이날 진행했다. 오는 26일 공식 실적 발표에 앞서 설명회를 개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품질 경영’ 의지를 강조하고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충당금은 세타2 GDi 엔진 결함과 관련, 고객 보상을 위한 비용으로 쓰일 예정이다. 앞서 현대·기아차는 2차례 세타2 GDi 엔진 리콜 관련 충당금을 실적에 반영했었다. 2018년 3분기에 현대차 3000억원, 기아차 1600억 등 총 4600억이, 지난해 3분기에는 현대차 6100억원, 기아차 3100억 등 9200억원을 실적에 반영했다.

 

그러나 리콜 이후에도 엔진 교환 사례가 예상보다 많아진데다 폐차가지 예상되는 차량 운행기간도 12.6년에서 19.5년으로 증가했다. 또 리콜 대상은 아니었지만 세타2 MPI·HEV, 감마, 누우 엔진에 대한 고비자 불만사례가 접수됨에 따라 추가 충당금 반영이 불가피했다는 게 현대·기아차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보증기간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앞서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세타2 GDi 엔진 집단소송 합의 이후, 엔진 진동감지 시스템(KSDS) 적용을 확대하고 평생 보증하기로 했었다. 당시 대상 차량은 미국 417만대, 국내 52만대 등 모두 469만대에 달했다. 

 

세타2 MPI 엔진 등 소비자 불만이 제기된 기타 엔진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KSDS(엔진 진동감지 시스템 소프트웨어) 장착 캠페인 시행을 검토하기로 했다.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은 총 3조6566억원으로, 구체적으로 현대차에선 세타2 GDi 차량 240만5000대·기타엔진 132만4000대가, 기아차에서는 세타 GDi 180만9000대·기타엔진 183만5000대 등 총 737만7000대의 품질 개선에 쓰인다. 

 

세타 엔진은 현대차가 독자개발한 엔진이다. 2002년 개발돼 일본 미쓰비시, 미국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공급되며 자동차 엔진 수출의 길을 열었다. 

 

이후 2009년 나온 세타2 엔진은 강화된 배기가스 규제를 맞췃음에도 출력도 좋아 호평받았다. 그러나 2015년 세타2 엔진을 장착한 차량이 주행 중 엔진 진동과 시동이 꺼지는 사고가 잇따르면서 결함 논란이 불거졌다. 현대차는 그해 9월 차량 47만 대를 리콜했고 2017년 한국과 미국에서 약 136만대가 또다시 리콜 조치됐다. 

 

현대·기아차가 조 단위의 품질 개선 비용을 책정함에 따라 3분기 적자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3분기 실적 전망 평균치는 현대차가 매출액 26조6895억원, 영업이익 1조1338억원이다. 기아차는 매출액 15조452억원, 영업이익 5768억원으로 예측된다. 

 

영업이익보다 많은 액수를 충당금으로 책정한 것은 품질 경영에 대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의자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정의선 회장 체제로 전환하면서 지금까지 쌓아올린 ‘품질 경영’에 타협은 없다는 의미에서 강력한 조치를 시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현대·기아차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현대스럽다’ ‘기아답다’는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디자인과 첨단 사양으로 편의성은 높아졌지만 내수용 차, 가성비 차라는 지적도 많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자동차기업을 꿈꾸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평가와 논란은 브랜드 가치를 갉아먹는 요인이다. 

 

정의성 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고객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안전하고 자유로운 이동과 평화로운 삶’이라는 인류의 꿈을 함께 실현해 나가고, 그 결실들을 전 세계 모든 고객들과 나누면서 사랑받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며 그룹의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모든 활동은 고객이 중심이 돼야 한다”면서 “고객 행복의 첫걸음은 완벽한 품질을 통해 고객이 본연의 삶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제네시스 GV80 3.0 디젤모델 진동 현상, 팰리세이드 전복 사고, G80 2.5 가솔린 터보 소음, 더 뉴 그랜저 엔진오일 감소, 코나 EV 화재 등 연이어 품질 논란이 제기되면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내년부터 전기차 생산이 본격화되고 미래차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며 현대·기아차는 향후 모빌리티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공들이고 있다. 그런 만큼 품질 논란은 타격이 크다. 

 

더욱이 현대·기아차는 세타2 GDi 엔진 논란으로 법정 소송에 휘말린 전적도 있다. 미국에서는 발화 위험과 관련해 집단소송이 제기됐다가 지난해 10월 합의했다. 국내에서도 자발적인 리콜이 이뤄졌지만 미국보다 시기가 늦어지면서 엔진 결함 축소 의혹이 불거져 전·현직 현대·기아차 임원들이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 재판은 현재 진행 중이다. 

 

정 회장은 이익보다 신뢰를 택했다. ‘품질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현대·기아차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높일 수 있어서다. 

 

특히 고객 중심 경영을 펼치는 기업에 대해 소비자와 시장의 호감도가 높아진 점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품질 개선 비용을 투명하게 공개한 것도 시장·소비자와 소통하고 이를 반영하겠다는 의지는 향후 잠재적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데 유용하다. 

 

현대·기아차는 “앞으로도 유사한 품질비용 이슈가 재발되지 않도록 철저한 품질관리와 비용 예측에 대한 정확도를 개선하며 관련된 정보를 투명하게 시장에 공개해 투자자 및 고객과 소통할 계획”이라며 “근본적인 개선책 마련과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품질 이슈의 재발 방지에 주력하고, 소비자 신뢰 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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