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터진다...이탈리아 헬스케어 시한폭탄 ‘째깍째깍’

▲ 기사내용과 무관한 사진임 (사진제공=뉴시스)

 

[스페셜경제=윤성균 기자]한 때 잘 나가던 사모펀드가 금융회사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라임자산운용 펀드, 디스커버리 자산운용 펀드 등이 잇따라 환매중단 사태를 일으키며 대규모 손실을 낳았다. 투자자들은 판매사의 불완전판매를 주장하며 완전 보상을 주장하고, 판매사들은 손실액 일부를 보상해 준다며 고객 달래기에 나섰다. 한 때 금융업계 ‘효자 상품’으로 통했던 사모펀드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커지는 모양새다. 

 

엎친데 덮친 펀드대란…환매 중단만 2조원
떠나는 개인투자자들…“고객 신뢰 잃을라”


또 터진 환매중단 사태
라임자산운용 펀드와 디스커버리 자산운용 펀드에 이어 또 다른 해외사모펀드의 부실 사태가 벌어졌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모펀드는 하나은행이 지난해 판매한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다. 지난해 9개 펀드에 총 1100억원어치를 팔았는데 반토막 가까이 원금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해당 펀드는 이탈리아 병원들이 지방정부 산하 지역보건관리기구(ASL)에 청구하는 진료비를 유동화한 채권에 투자한 상품이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병원에서 환자의 자기부담금을 제외한 진료비를 지방정부에 청구하는데, 지방정부 재정 상황에 따라 보험료 지급이 반년 가까이 소요되기도 한다. 이에 현지 운용사들이 병원들로부터 채권을 매입하고 이를 지방정부로부터 상환 받아 수익을 올리는 구조의 펀드를 운용해 왔다. 이를 국내 운용사들이 들여와 사모펀드로 만들어 판매했다.

최근 이탈리아 지방정부들이 코로나19 여파로 재정이 악화돼 채권 상환 연기를 요청하면서 일부 펀드에서 환매가 지연되는 등 부실이 발생했다.

하나은행이 실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9개 펀드에 1188억원가량이 투자됐다. 투자자는 400여명에 이른다. 하나은행은 투자 손실이 예상되자 투자자들에게 선제적으로 2가지 보상방안을 제시했다. ▲해당 펀드 수익증권의 현재 기준 가격 상당액을 지급하고 전체 수익증권을 인수하는 방안 ▲투자원금 50%를 가지급하고 나머지를 정산하는 방안 등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선제적으로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마련한 것이라 큰 틀만 만들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하나은행이 제시한 사적 화해 방안을 거절하고 원금 전액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법무법인을 통해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다. 

 

▲ (사진제공=뉴시스)

 


문제는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를 판매한 은행이 하나은행 한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나은행 펀드와 기초자산이 같은 상품을 신한은행도 판매한 것으로 나타나 사태가 확대될 조짐이다.

신한은행은 지난 2018년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120억여원 가량을 판매했다. 만기는 오는 7월로 운용사는 DB자산운용이다. 이 상품 또한 이탈리아 지방정부의 예산을 재원으로 지급되는 보건의료비를 유동화한 채권에 투자한 상품이다. 운용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기초자산은 하나은행 펀드와 같아 원금손실이 예상된다.

신한은행 측은 펀드 만기에 비해 채권 만기가 더 빨라 상황이 다르다고 해명한 상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채권 만기를 받아놓고 있다가 펀드 만기 때 원금을 보내드리면 되기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며 “앞서 판매한 상품은 정상 환매가 끝났다”고 설명했다.

발길 뚝 끊긴 사모펀드
이처럼 해외 채권에 투자한 사모펀드의 부실사태가 이어지면서 사모펀드 판매가 크게 줄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의 종합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개인 투자자들의 사모펀드 판매 잔액은 21조8659억원이다. 한 달 전보다 8345억원 감소한 규모다. 개인의 사모펀드 판매잔액은 지난해 6월 사상 최대치인 27조258억원을 기록한 이래 9개월 연속 내리막길이다.

은행들의 사모펀드 판매 규모도 덩달아 줄었다. 올해 3월 말 국내은행의 사모펀드 판매액은 23조5805억원으로 지난해 7월부터 8개월 연속 하락세다.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책임으로 지난 3월부터 사모펀드 판매가 6개월간 금지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감소폭이 특히 컸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7월말 7조5533억원이었던 판매 잔액이 올해 3월말 기준 3조7499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하나은행은 같은 기간 3조8301억원에서 2조7067억원으로 29.3% 감소했다.

지난해 라임자산운용 무역금융펀드부터 기업은행 디스커버리채권펀드, 하나은행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등이 잇따라 대규모 환매중단 사태를 일으키며 사모펀드 인기를 뚝 떨어뜨렸다.

현재 환매가 중단된 부실사모펀드 액수만 해도 ▲라임펀드 1조6679억원 ▲디스커버리펀드 1805억원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 1528억원 ▲알펜루트자산운용 헤지펀드 1800억원 ▲아름드리자산운용 무역금융펀드 240억원 등 약 2조2000억원에 달한다. 이 피해액은 조정 과정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부실사모펀드 분쟁조정 신청만 600건이 넘는 등 개인 투자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들 판매자들은 은행에서 불완전판매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판매수수료 욕심이 폭탄 키워
윤리충당금 등 체질개선 필요

판매 수수료 욕심 사태 키워
일반적으로 사모펀드는 투자자를 공모하는 공모펀드와 달리 비공개로 투자자들을 모집해 주식·채권 등에 운용하는 펀드를 말한다. 사모펀드는 투자정보를 공유한 고액자산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라임펀드 피해자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그렇지 않다.

이경임 신한은행 라임CI펀드피해고객연대 간사는 “피해자 대부분이 직장인이나 중소기업 경영자, 소상공인 자영업자, 주부들이거나 몸이 불편한 은퇴자와 환자들이다”라면서 “고객들은 ‘100% 신용보험으로 원리금이 보장되는 안전한 상품’이라는 문자와 카톡, 이메일 제안 내용들을 보고 가입했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판매처에서 투자자들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모펀드 투자 추천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은행들이 사모펀드에 적극 나서게 된 것은 사모펀드의 판매수수료와 관련 있다. 은행은 사모펀드를 판매하면서 1%가 넘는 선취 수수료를 챙겨왔다. 그 결과 작년 은행권 비이자이익은 전년도에 비해 1조원 늘어난 6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이중 5조2000억원이 펀드 판매 등 수수료 이익이다.

사모펀드의 경우에는 공모펀드와 달리 투자자 보호를 위한 엄격한 규제가 면제되거나 완화돼 있다는 점도 은행의 입맛에 맞았다. 시중은행뿐만 아니라 국책은행도 이런 시류에 편승했다. 환매 중단된 디스커버리 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한 곳은 다름 아닌 기업은행이다. 디스커버리 펀드 피해액 1805억원 중 절반에 가까운 914억원이 기업은행 판매분이다. 기업은행은 라임펀드에도 300억 가량 물려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원회가 2015년 내놓은 사모펀드 활성화 대책이 지금의 사모펀드 사태를 낳았다는 지적이 있다. 당시 금융위는 전문투자형 사모펀드(헤지펀드) 최소 투자금액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낮추고, 사모펀드 운용사 진입 문턱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완화했다.

그 결과 2015년 238조원 수준이던 사모펀드 판매잔고는 지난해 478조원으로 두 배 넘게 몸집을 불렸다.

선제보상 나선 판매사
사모펀드 몸집이 커진 만큼, 환매 중단 사태가 불러온 파장도 크다. 환매 중단 사태가 사모펀드를 비롯한 자산관리시장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까지 번지자 판매사들은 피해자 보상에 나섰다.

신한금융투자는 지난 20일 라임사태와 관련해 자발적 보상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라임 국내 펀드와 무역금융펀드 개방형은 30%(법인전문투자자 20%), 무역금융펀드 폐쇄형은 70%(법인전문투자자 50%)를 보상하기로 했다. 무역금융펀드 중 자발적 환매가 불가능한 폐쇄형 펀드는 투자설명서에 대한 충실한 설명이 필요했음에도 설명이 미흡했던 점을 감안해 보상비율을 다르게 적용했다.

국내펀드는 손실액기준, 무역금융펀드의 경우 원금을 기준으로 보상하며, 추후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 결과에 따라 재정산하기로 했다.

신한금투 관계자는 “그동안 신한금융투자는 라임펀드에 투자한 고객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고민해 왔다”며 “책임경영 실천과 고객 신뢰회복을 위해 선제적으로 자발적 보상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한금투의 라임 펀드 피해액은 총 3248억원 규모다.

라임 펀드 19개 판매사 중 대형사인 신한금투가 보상안을 확정하면서 다른 판매사도 조만간 보상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을 비롯해 신한은행, 하나은행, 기업은행, 부산은행, 경남은행, 농협 등 주요 은행들도 손실액의 30%를 선보상하는 등의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선보상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선보상이 투자자 자기책임원칙을 훼손하고, 당초 제기된 불완전판매 등의 책임 문제를 묻어 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보상 능사 아냐…체질 개선 해야
금융권에서는 투자손실액에 대한 선보상이 관례로 굳어질까봐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라임펀드 등 부실사태가 터질 때마다 분정조정위원회를 통한 고객배상, 사적화해 방식을 통한 선지급 등 투자손실에 대해 판매회사의 선조치가 하나의 관례처럼 이어지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액 손실을 보상해 주는 것은 자본시장법 위반”이라며 “투자자 자기책임원칙에도 맞지 않아 투자자의 도덕적해이가 우려 된다”고 말했다.

투자자가 선보상을 받으면 향후 판매자에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조창훈 한림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선보상은 마치 증권사에서 손실보전각서를 써주는 것과 같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효력이 없지만 고객과 신뢰회복에는 도움이 된다”면서도 “아예 판매 단계에서부터 불완전판매를 감안해 일종의 ‘윤리충당금’ 개념으로 적립해 손실액을 보상해 주는 제도를 검토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조 교수는 “내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상품 기획과 판매 조직이 분리된 구조에서는 불완전판매 행태를 막을 수 없다”며 “채권에 대해 미리 대손충당금을 설정하듯 불완전판매를 감안해서 일정 금액만큼 충당금을 쌓게 하면 금융회사도 펀드 판매와 리스크 관리에 책임감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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