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격차 경쟁 인텔·TSMC 실적 호조
"삼성도 잃어버린 10년" 우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 가운데)이 지난 6월 세메스 천안사업장을 찾아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장비 생산 공장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삼성전자의 시름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사법리스크가 계속되는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독주가 주춤하고 있다. 

 

6분기 만에 영업이익 5조원대를 회복했지만, 경쟁자인 인텔과 TSMC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라는 악재는 비단 삼성전자에만 해당되지 않았던 터. 시장의 전망을 뛰어넘는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고도 삼성전자가 편히 웃지 못한 이유다.

 

이재용 부회장이 상반기에만 국내외 현장을 13번이나 찾아 핵심 먹거리를 챙긴 것이나, ‘경쟁에서의 도태에 언급하며 불안감을 드러낸 것도 삼성전자가 놓인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상반기 영업이익, 세계 2위에서 밀려난 듯

 

세계 반도체 시장은 내년 다시 호황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메모리 수요가 급격히 준 데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세계 반도체 시장은 하락세였다. 그러나 비대면 문화의 확산과 IT 수요 증가로 인해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최근 발표한 자료에서 내년 반도체 시장 규모가 4560억달러로 올해 예상치(4090억달러)보다 11.5%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도 유력 시장조사 단체 9곳의 내년 시장 규모 예상치를 취합한 결과, 평균 12%대의 성장을 예측했다.

 

이처럼 시장의 성장세는 낙관적이지만, 삼성전자를 둘러싼 상황은 밝지만은 않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 영업이익에서 경쟁사들에 밀릴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 따르면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는 올 상반기 매출액 207억달러(25조원), 영업이익 86500만달러(104000억원)을 기록했다. TSMC는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로, 삼성전자와 초격차 경쟁을 벌이고 있다. TSMC의 지난해 상반기 매출은 179000억원, 영업이익은 55000억원이었다. 삼성전자에게 매출(306000억원)과 영업이익(75000억원)에서 크게 뒤졌다. 그러나 올해 삼성전자의 상반기 반도체 영업이익이 93000억원 수준일 것으로 점쳐짐에 따라 TSMC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영업이익 2위로 올라섰다.

 

인텔도 삼성전자에 뺏겼던 1위를 탈환했다. 인텔은 지난 23(현지시간) 실적 발표에서 올 2분기 매출 1973000만달러(236200억원), 영업이익 57억달러(68200억원)를 달성했다고 공개했다. 상반기 실적 역시 매출 395억달러(476000억원), 영업이익 127억달러(153000억원)에 달했다. 세계 1위를 찾은 것이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는 상반기 영업이익에서 TSMC에 밀렸을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의 전망치는 매출 185000억원, 영업이익 54000억원이다. 2분기 영업이익만 놓고 보면 TSMC와 비슷하지만, 1분기 영업이익이 TSMC1조원 이상 밀리면서 올 상반기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영업이익 2위를 지키지 못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 쫓기고 시스템 반도체 격차 벌어지고

 

삼성전자는 1992년 세계 최초로 64Mb D램 개발에 성공하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30년 가까이 1인자로 군림해왔다. 이처럼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초격차 기술로 시장을 선두해 오던 삼성전자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세계 반도체 업체들은 기술 경쟁의 속도를 올리며 삼성전자를 추격 중이다.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양쯔메모리테크놀러지(YMTC), 푸젠진화반도체(JHICC) 등 메모리 반도체 업체와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SMIC 등은 반도체 자립화를 꿈꾸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기술 격차를 좁혀나가고 있다. CXMT는 연내 17나노급 D램을 양산할 것으로 알려졌고 YMTC128단 낸드플래시 제품을 올 연말께 양산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SMIC14나노 공정을 7나노 공정으로 높이기 위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현재 7나노 이후 공정으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파운드리는 TSMC와 삼성전자 뿐이다.

 

TSMC의 약진 역시 삼성전자에겐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이 부회장은 2030년까지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 반도체 시장 1위가 되겠다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서는 TSMC와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 그러나 TSMC와의 격차를 더욱 벌어질 전망이다. ·중 무역갈등 속에서 TSMC는 매출의 14%를 차지하는 화웨이와 결별한 대신 AMD와 인텔을 한꺼번에 잡았다.

 

중국 시나닷컴 등에 따르면 인텔은 TSMC6나노 반도체 위탁 생산을 의뢰했다. TSMC가 확보한 위탁 생산량은 웨이퍼 18만장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TSMC은 인텔의 경쟁자인 AMD로부터도 7나노 위탁 생산을 진행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2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51.5%, 삼성전자가 18.8%. 인텔의 위탁 생산을 확보하면서 TSMC는 삼성전자와 격차를 더욱 벌리게 됐다.

 

퍼스트 무버에서 다시 패스트 팔로워되나

 

최근 이 부회장은 경쟁에서 도태될 가능성을 공공연히 언급하며 불안감을 드러낸다. 1년 전에는 긴장하되 두려워하지 말자던 이 부회장은 가혹한 위기 상황이다. 미래 기술을 얼마나 빨리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에 생존이 달려있다. 시간이 없다고 강조하더니 경영환경이 우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자칫하면 도태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는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었고 일본 징용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를 앞두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삼성전자의 경영 시계를 어둡게 하는 불씨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경영 불확실성을 더하는 요소다.

 

검찰은 수사심의위원회가 수사 중단 및 불기소 권고 결정을 내린 지 한 달이 넘도록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당초 검언유착 수사권을 둘러싼 검찰 내부의 갈등이 일단락되면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받아들일지 결정할 것으로 점쳐졌지만 여즉 장고가 계속되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르면 8월 초 이 부회장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하면서 기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검찰은 18개월간 기간에 걸쳐 삼성에 대해 50여 차례 압수수색, 110여 명에 대한 430여 회 소환 조사 등을 진행했다.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권고를 받아들이면 과잉수사를 해왔다는 점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여당과 진보 성향 시민사회단체 등이 이 부회장 기소를 압박하는 형국인 것도 부담이다. 표적수사,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무릅쓰고서라도 면피용 기소를 강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이 부회장은 비상경영의 고삐를 더욱 죄고 있다. 그는 올 상반기에만 국내외 현장을 13번이나 찾았다. 1달에 두 번 꼴이다. 지난 5월에는 코로나19 확산세에도 불구하고 직접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을 찾았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로서는 첫 중국 출장이었다. 또 반도체, 가전, 스마트폰 등 주력 사업 외에도 인공지능(AI)·5G·전장부품 등도 두루 챙기며 삼성의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임직원과 하루에 3번 간담회를 갖는 강행군도 이어졌다. 특히 이 부회장이 직접 나서 AI 분야 최고 석학으로 꼽히는 승현준 프린스턴대 교수를 삼성리서치 소장(사장)으로 영입한 데 이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과 두 차례 만나며 미래 모빌리티 사업에서의 협업을 모색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이 올 하반기 들어 하락세다. 20일 기준으로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7% 감소했다. 전달까지 수출 증가세였던 것과 대비된다. 이럴 때일수록 적기에 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결단해 시장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지만, 이 부회장이 재판에 불려 다니느라 시간을 할애하면 뉴삼성을 위한 성장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삼성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의 경영 공백이 삼성전자를 퍼스트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워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들린다. 김현석 소비자가전(CE)부문장(사장)과 권오현 상임고문이 총수 역할론을 강조하며 위기감을 드러낸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경영이 국제 정세에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최고경영권자의 신속한 대응만이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서 수사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는데도 검찰이 기소를 강행한다면, 삼성도 일본처럼 잃어버린 10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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