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빼고 하고 싶은 거 다 할래”...예금·대출에 후불제까지 넘봐

▲ 네이버통장 출시 한 달여 만에 명칭이 변경됐다.

 

네이버 통장, 논란 끝에 이름 변경…단순 해프닝?
금융상품 판매하지만 중개업자는 아니라는 네이버

[스페셜경제=윤성균 기자]네이버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이 미래에셋대우와 손잡고 만든 ‘네이버통장’이 출시 한 달여 만에 이름을 바꿨다. 바뀐 이름은 ‘네이버통장미래에셋대우CMA’. 미래에셋대우와의 합작품이라는 것과 CMA통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일종의 해프닝이지만, 금융업계에서는 이런 해프닝마저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

출시 한 달 만에 이름 바뀐 사연
네이버통장이라는 이름은 출시 전부터 논란이 됐다. ‘네이버’+‘통장’이지만 네이버에서 직접 만들고 운영하는 상품이 아닐 뿐더러, 흔히 말하는 은행 통장도 아니기 때문이다.

네이버통장은 미래에셋대우에서 만든 종합자산관리(CMA) 계좌로, 네이버파이낸셜은 판매 플랫폼 역할을 맡았다. CMA는 계좌에 돈을 넣어두면 증권사가 안정성이 높은 국공채 등에 투자해 수익을 내는 상품이다. 은행 통장처럼 입출금이 자유롭고, 최소 가입금액, 만기, 거래시간 등의 제약이 없지만, 예금자보호가 안 된다.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최대 5000만원까지 원금손실이 보호되는 은행의 예금상품과는 엄연히 다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네이버통장은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의 카카오통장과 달리 예금자호보가 안 되는 금융투자상품이다”라면서 “네이버에서 만든 은행 통장으로 소비자들이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도 네이버통장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명칭 변경을 권고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네이버통장은 사실 미래에셋대우의 CMA 상품인데, 왜 네이버통장이라고 이름을 붙였는지가 논란의 핵심이었다”며 “미래에셋대우의 CMA계좌임을 명확히 해야 규정 위반 소지가 해소된다”고 말했다.

금융투자협회의 CMA 모범규준에 따르면, 네이버통장과 같은 RP(환매조건부채권) 투자형 CMA의 상품 광고 시, 입금액이 RP에 투자된다는 사실, 예금자보호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시해야 한다.

당초 네이버통장의 광고 배너에서는 CMA통장임을 명시하지 않았고, 예금자보호에 대해서도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상세 페이지 하단의 ‘꼭 알아두세요’ 란에 ‘네이버통장은 네이버페이와 미래에셋대우가 함께 제공하는 수시입출금 CMA(RP형) 통장입니다’는 설명을 달았을 뿐이다. 현재 이 문구는 ‘네이버통장은 미래에셋대우 CMA-RP형 통장입니다’로 수정됐다. 슬쩍 끼워 넣었던 네이버페이가 빠지고, 미래에셋대우가 운용하는 CMA 상품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다만, 네이버통장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혼용되고 있었다. 광고 배너에서 명칭은 네이버통장미래에셋대우CMA로 바뀌었지만, 광고 페이지에서는 버젓이 네이버통장이라는 명칭을 사용 중이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으로 네이버통장의 명칭이 바뀐 것은 아니다”라며 “네이버파이낸셜 측과 협의 과정에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파이낸셜, 전자금융업자인가 금융투자중개업자인가
네이버통장 논란을 계기로 금융당국은 네이버파이낸셜이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중개업자인지 따져본다는 입장이다. 현재 네이버파이낸셜은 전자금융거래법을 적용받는 전자금융업자이기 때문에 다른 금융기관에 비해서 규제가 느슨하게 적용됐다. 하지만 자본시장법의 적용을 받는 투자중개업자로 지정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투자중개업은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계속적이거나 반복적인 방법으로 금융투자상품의 매도·매수·중개·청약 등의 영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관점에 따라서 증권사의 CMA 통장을 판매하는 행위를 투자중개업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만, 금융당국이 당장 네이버파이낸셜을 금융투자중개업자로 지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달 30일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나 “네이버파이낸셜이 금투업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면 인가를 받아야 한다”면서도 “다만 아직은 비즈니스 모델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핀테크 기업의 혁신성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빅테크(대형 기술 기업)’ 기업인 네이버를 섣불리 규제하지 못하는 이유다. 규제는커녕 금융위는 지난달 4일 네이버파이낸셜을 미래에셋캐피탈의 ‘지정대리인’으로 지정했다. 또 이달 금융위의 혁신금융서비스에 네이버페이 후불결제 서비스가 최종 지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조만간 네이버통장에 이어 ‘네이버 신용카드’. ‘네이버 신용대출’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권에서는 카카오뱅크, 토스 등 핀테크 기업들이 금융업에 진출하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데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네이버파이낸셜에 대한 생각은 좀 다르다. 카카오뱅크와 토스가 필요한 금융업 면허를 취득해 직접 진출하는 반면, 네이버는 면허 취득 없이 기존 금융사와 제휴를 맺어 규제를 우회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업계 입장에서는 가장 두려운 핀테크 공룡이 우회로로 쳐들어오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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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뱅크와는 다른 길 걷는다
네이버는 지난해 11월 간편결제 사업부문을 분할해 네이버파이낸셜을 세웠다. 2018년 11월 네이버페이 사업을 사내독립기업(ICI)으로 출범한지 꼭 1년 만에 독립법인화함으로써 금융플랫폼 사업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네이버파이낸셜이 출범할 당시 금융업계에서는 네이버가 카카오처럼 은행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후 네이버는 카카오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카카오는 2017년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를 출범해 기존 금융권과 정면 대결을 펼쳐왔다. 증권업에서도 지난 2월 바로투자증권을 인수한 후 카카오페이증권으로 사명을 바꿔 직접 진출하는 방식을 택했다. 4000만명이 넘는 국내 카카오톡 이용자를 기반으로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해 기존 금융권의 견제를 정면돌파한다는 전략이다.

반면, 네이버는 기존 금융사와 제휴를 맺어 규제와 견제를 비껴가는 전략을 취했다. 네이버는 네이버파이낸셜 출범 이전에도 2018년 미래에셋대우와 함께 네이버페이CMA 통장을, 2019년 케이뱅크와 함께 제휴통장(케네통장)을 출시하는 등 기존 금융사와 제휴를 통해 상품을 출시해 왔다. 네이버파이낸셜 출범 이후에는 네이버통장을 시작으로 금융 플랫폼으로서의 정체성을 보다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올해 초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네이버 통장을 시작으로 신용카드 추천, 증권, 보험 등 이용자들이 결제 속에서 자연스럽게 네이버파이낸셜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궁극적으로 축적된 양질의 데이터 기반으로 대출 등 고관여 금융서비스로의 확장을 통해 종합 자산관리 플랫폼으로 진화해 나가겠다”고 청사진을 밝힌 바 있다.

 

▲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다음 ‘네이버OOO’은?
네이버의 사업전략도 결국 카카오와 마찬가지로 막강한 포털 사용자 수를 기반으로 플랫폼 ‘락인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네이버통장이 네이버페이·네이버쇼핑 등 네이버 주요 서비스 이용자에게 금리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계속해서 추가될 새로운 네이버OOO도 비슷한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윤곽을 드러낸 것은 연 10%대의 중금리 신용대출 서비스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지난달 4일 미래에셋캐피탈의 지정대리인으로 선정되면서, 신용대출 서비스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하반기에는 네이버쇼핑 입점 업체의 판매실적과 반품률, 소비자 평점 등을 신용으로 평가하고 미래에셋캐피탈을 통해 연 10%대의 중금리 신용대출 서비스를 내놓을 계획이다.

또 예정대로 네이버페이 후불결제 서비스가 이달 금융위의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면, 하반기에는 후불 결제시장에도 진출한다.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면 인가, 영업행위 등의 규제 적용이 최대 4년간 유예·면제된다.

현재 네이버페이 등 간편결제업체는 최대 200만원 한도의 선불결제만 가능하지만, 후불결제가 허용되면 소비자가 당장 돈이 없어도 신용카드 쓰듯 결제가 가능해진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지난해 2월 ‘금융결제 인프라 혁신 방안’에서 핀테크 결제사업자에 소액 후불결제 서비스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반기에 보험업 진출도 앞두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지난 3월 이사회를 열고 보험상품 설계 및 상담 서비스를 위한 ‘NF보험서비스(가칭)’ 법인 설립을 의결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보험 서비스를 선보일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래에셋생명과의 제휴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오는 8월 정식 허가 절차가 시작되는 마이데이터 사업에서도 네이버가 두각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마이데이터 사업은 고객 동의하에 은행·카드·보험 등 각 금융사에 흩어진 금융거래 정보를 통합해 관리하고, 기업들이 해당 데이터를 활용해 상품 등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네이버파이낸셜은 마이데이터의 결제 내역을 네이버 영수증 리뷰와 연결해 고객이 방문한 가게의 별점과 평가를 다른 이용자와 공유하는 방안을 사업 아이템을 공개했다. 또 자동차 보험·할부 금융이나 해외 주식 투자를 네이버 서비스와 연결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규제 피하기에 혈안인 핀테크 공룡
국내 최고의 IT 기술력과 자본력, 막강한 포털 이용자를 거느린 네이버가 파죽지세로 금융업에 뛰어들고 있으니 금융권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업계에서는 공정한 경쟁을 해도 모자랄 판에 네이버가 규제를 우회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네이버는 과거 제3인터넷은행 사업자 후보로 꼽혔지만, 자기들이 안 한다고 하더니 우회적으로 다른 방법을 찾아서 금융업에 진출하려고 한다”며 현 사태를 꼬집었다. 이어 “네이버는 해외에서 다른 금융사들과 제휴를 통한 사업 경험이 많다”며 “한국에서도 제휴 사업으로 금융업을 확장시킬 자신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네이버는 해외 계열사인 라인파이낸셜을 통해 일본을 비롯해 대만·태국 등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일본의 노무라홀딩스와 합작해 라인증권을 설립하는 등 라인 메신저를 바탕으로 금융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또 다른 금융업계 관계자는 “제일 무서운 것이 제휴사업이다”라면서 “처음에는 제휴사업에서 네이버가 주가 되지 않지만, 제휴가 확대되고 주도권을 네이버가 쥐게 되면 다른 제휴사가 종속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네이버파이낸셜의 금융서비스가 본격화되고, 본 궤도에 오르면 네이버는 정공법으로 전략을 수정할까? 업계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핀테크 기업으로 규제를 피해 영업할 수 있는데 굳이 라이선스 등록을 하겠느냐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새로운 진출 방법을 모색하는 게 네이버의 스탠스다”라며 “단지 금융 하나 때문에 네이버 사업 전체를 규제의 위험에 빠트리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사진제공=뉴시스, 네이버)

 

스페셜경제 / 윤성균 기자 friendtolife@speconom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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