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타계 이후 회장직 공석…승진설 꾸준히 제기
코로나 변수에도 역대급 실적으로 경영 능력 입증
4대 그룹 오너 중 유일한 부회장
대외 명함보다 경영인으로서 본질에 더 관심
관례적 승계·과거와 결별..뉴삼성 구상과도 어긋나
“이건희 회장 영구결번..경영에만 매진”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월 6일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및 노동조합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스페셜경제=변윤재 기자] “앞으로 일어날 일이라 확정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앞으로 그룹 회장이란 타이틀은 없을 것이라고, 와병 중이신 이건희 회장님께서 마지막으로 삼성그룹 회장님이란 타이틀을 가진 분이 되실 거라고 저 혼자 생각했었다.” (20171227일 국정농단 항소심 결심공판 피고인 신문에서)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약속드리겠다. 이제는 경영권 승계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 (202056일 대국민사과에서)

 

최근 재계의 화두는 삼성 임원 인사. 부친 이건희 회장의 타계로 명실상부한 삼성의 1인자로 올라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첫 인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 부회장의 회장 승계에 대해 재계는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그룹 총수의 자리를 오랜 시간 비워둘 수 없는데다 이 부회장의 경영 능력도 입증됐다는 게 중론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보호무역주의는 고개를 더욱 강화됐고, 수출입 비중이 높은 미국과는 대중국 견제, 중국과는 사드 보복의 여파가, 일본과는 강제 징용 배상 문제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이러한 복합 위기 속에서도 매출과 영업이익을 늘렸다. 3분기엔 메모리반도체가 최대 호황을 누리던 지난 2018년 이후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12조원을 돌파했고, 영업이익률도 18%를 넘어섰다. 여기에는 이 부회장의 공이 컸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은 시스템반도체와 전장, 5G(5세대 이동통신), AI(인공지능), 바이오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선언한 뒤 사업 고도화를 위해 직접 움직였다. 올해의 경우, 상반기에만 20번이 넘는 현장 경영을 통해 반도체와 스마트폰, 가전 등 핵심 먹거리를 직접 챙겼다. 

 

코로나 확산세에도 해외 출장에 나서 ASML 경영진과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추가 공급을 타진하는 한편, 휴대전화 등 제품 원가경쟁력 확보와 연구개발 강화방안을 모색했다. AI 석학인 승현준 삼성리서치 소장 영입을 위해 나서는 한편,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사업 협력을 강화했다. 그 결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는 퀼컴, IBM과 같은 대형 고객사를 빠르게 확보 중이고, 세계 최대 통신시장인 미국에 8조원의 5G 장비 수출을 성사시켰다.

 

명분도 충분하다. 그동안 선대 회장의 타계한 뒤 한 달 안팎으로 회장에 취임하는 게 관례였다. 최태원 SK 회장은 부친이 작고한 지 1주일만에 회장에 올랐고, 구광모 LG 회장도 구본무 회장 별세 이후 1달여 만에 회장직을 승계했다. () 이건희 회장 역시 이병철 창업주 타계 이후 약 20일이 지나 회장에 취임했다. 게다가 4대 그룹 오너 중 이 부회장만 아직까지 회장직함을 달지 못했다. 4대 그룹 간 협력이 강화되면서 오너 회동이 잦아진 만큼 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회장에 올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정적 경영 환경 확보 측면에서도 부회장의 회장 승진은 빠를수록 좋다는 지적이다.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IT 기술경쟁이 심화됐다. ‘총수는 위기를 말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이 부회장이 가혹한 위기 상황이라고 말할 정도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 AMD IT·전자 기업들은 공격적으로 인수·합병(M&A)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삼성도 승계를 마무리짓고 M&A 등을 통한 사업 재편과 기업 가치 제고에 집중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재계 안팎의 승진론에도 불구하고 삼성 내부에서는 다른 기류가 읽힌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마지막 회장이라는 게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 부회장은 2014년부터 실질적으로 총수 역할을 수행해왔다. 2018년엔 공정거래위원회가 동일인으로 지정해 공식적으로도 총수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삼성의 구심점으로도 자리매김했다. 그런 만큼 직함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삼성 관계자는 “‘오너 회장은 이건희 회장이 마지막이라는 것이 이 부회장의 확고한 생각이다. 스포츠의 영구결번과 같은 격이라며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함께 겸손한 자세로 경영에 매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 부회장은 경영인으로서 인정받는 것에 더 관심을 드러내왔다. 그는 국정농단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앞으로 그룹 회장이란 타이틀은 없을 것이라며 재벌 3세로 태어났지만, 오로지 제 실력과 제 노력으로 회사를 더 단단하고 강하게 더 가치 있게 만들어서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의 리더로 인정받는 것이 제 인생의 꿈이자 기업인으로서의 목표라고 밝혔다. 지난 5월 대국민 사과에서도 제대로 된 평가도 받기 전에 제 이후의 승계 문제를 언급하는 것이 무책임한 일이라며 능력으로 인정받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삼성 전직 임원의 발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은 국정농단 항소심 공판에서 이 부회장은 그룹 회장은 부정적인 이미지라 싫다. 전자 회장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이 회장이 쓰러진 뒤 이 부회장에게 회장직을 승계해야한다고 여러 차례 채근했지만 고사했다고 증언했다. 지난 8월 삼성 총수들이 도맡았던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난 것도 사법리스크보다는 회장직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니었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극한 효자로 소문난 이 부회장의 성향도 한몫했다. 국정농단 공판에서 그는 회장님이 중병으로 와병중이시고 의식이 없지만 생존해 계시니 아들로서 (경영승계는)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이 부회장은 바쁜 일정 중에도 부친의 병실에 들러 간병을 도왔고, 사찰을 찾아 쾌유를 빌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더욱이 회장 승계는 뉴삼성 구상에도 맞지 않는다. ‘뉴삼성출발점은 과거와의 결별로, 준법 경영과 노동권 강화, 시민사회와의 소통 확대를 통해 삼성의 체질을 변화시키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이 부회장은 이와 관련, 삼성준법감시위원회의 독립적 운영을 약속한 데 이어 지난달 위원들과 만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재차 공언했다. 만약 이 부회장이 스스로의 말을 번복한다면,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재판에서 검찰에 공격의 빌미를 줄 뿐만 아니라 국민 여론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경영에 복귀할 때부터 회장에 오르지 않을 거라는 얘기가 돌아 내부에서 불안해했던 것으로 안다경영도 안정적으로 궤도에 올렸고, 직함 없이도 충분히 삼성을 이끌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 같다.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면서 (회장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굳힌 듯 하다고 말했다.

 

다만 재계는 여전히 이 부회장의 승진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상속 문제와 사법 문제, 그룹 승계 등 문제가 산적한데 회장에 오른다면 난감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그러나 부회장은 회장의 직무를 대리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시일이 걸리더라도 회장에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페셜경제 / 변윤재 기자 purple5765@speconomy.com

저작권자 © 스페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