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국민’ 그들은 어떻게 찰떡이 되었나


[스페셜경제=김은배 기자]‘찰떡’.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언제부터 찰~ 하면 떡! 하고 붙을 것 같은 이 이름만 들어도 쫀득하고 찰진 한국인의 전통 후식을 별칭으로 갖게 된 것일까. 올 초 대선시즌까지만 하더라도 국민의당의 별명은 ‘민주당 2중대’였다. 제식군인의 행렬처럼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이름은 상명하복적인 의미를 내포한 탓에 양당이 일사분란하게 공조할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막상 친근감이 결여 된 느낌 때문에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관계설정을 애매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아무래도 한국인의 작명 감각은 탁월한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이는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초 이 두 당은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형제정당이라는 것 외에 특별한 교감이 없었다. 오히려 국민의당이 권력을 독점한 ‘친문’세력에 학을 뗀 의원들이 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와 창당한 당이라는 점에서 양당은 라이벌 내지는 꺾어야 할 적에 가까웠다.


다만, 막상 집 밖을 나서 타지 생활을 하다보면 미운 형제라도 그리워지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인지 국민의당은 분가 이후 도리어 민주당에 대한 의존도가 급속도로 높아져갔다. 민주당 2중대라는 별칭도 이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이 국민의당을 조롱하며 붙인 것이다. 친문과 척을 졌으면서도 친문이 주류를 이루는 민주당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꼰 셈이다.


국민의당은 적극적으로 이같은 호명에 반발했으나 이러한 흐름은 대선이후 더욱 가속화 돼 결국 국민의당은 2018년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증액한 ‘호남 SOC 예산’을 민주당과 나눠먹으며 2중대를 넘어 찰떡 하는 사이가 됐다. 이들은 이후로도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 등을 매개로 함께 손 붙잡고 나아갈 것을 다짐한 상태다.


올 한해 민주당과 국민의당을 끈끈하게 뭉쳐준 사건들은 무엇이 있었는가. <스페셜경제>는 연말을 맞아 이 데면데면했던 형제의 이야기를 조금 풀어볼까 한다.



정부 조각 길 터준 국민의당, 미워도 형제


김이수로 몸값 부풀리고 호남 SOC로 만찬


형님 가시지요! ‘조각의 시작’ 총리인준 길 터주기


캐스팅보터 국민의당이 여당 더불어민주당에게 표면적으로는 데면데면한 모습을 취하면서도 중대사안 처리에 직면하게 되면 힘을 보태주는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이낙연 국무총리의 인준과정이 그 기점이다.


국무총리는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 등과 더불어 헌법상 대통령이 국회의 신임을 얻어야 하는 몇 안 되는 직위이며, 장관을 비롯한 국무위원에 대한 제청권을 행사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조각의 시작이다.


요컨대, 국무총리만 순탄하게 임명할 수 있다면 이후 조각 국면은 탄력을 받게 되는 상황이었다. 국민의당은 당시 부인의 ‘위장전입’사실을 인정한 이낙연 총리후보가 민주당의 ‘5대비리관련자 원천배제’ 공약에 위배되는 인사라고 야권의 목소리를 함께 내며 질타했지만 막상 이 후보의 임명동의안 처리에는 ‘대승적 인준 협조’방침을 내세워 힘을 보탰다.


이 총리 임명동의안은 5월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188명의 의원이 참여(재적의원 299명)한 가운데 찬성 164표, 반대 20표, 기권과 무효 각각 2표씩으로 일반정족수를 채워 가결됐는데 이 후보의 인준에 반대한 한국당 107석이 전원 퇴장한 상태였으므로 사실상 국민의당의 힘으로 이 총리의 인준을 만들어 낸 셈이 됐다.


겉으론 까칠해도 속내는 애정…강경화·김상조 눈감아 주기


강경화 외교부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임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의당은 이들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과정에서 6월 8일 당시 강경화 후보자에 대해선 보고서 채택 거부 결정을, 김상조 후보자에 대해선 조건부 찬성을 내걸면서 문재인 정부 고위공직자 후보자 인선과정에 위기감을 조성했다.


물론 장관의 임명은 국무총리 임명 등과는 달리 사실상 국회의 보고서 채택 절차가 단순한 심사역할에 그치기 때문에 임명 자체에 제동이 걸리는 일은 아니었으나 국회의 동의 없이 장관임명을 강행할 경우 가뜩이나 조기대선으로 집권한 정부가 협치의 명분을 잃어 향후 국정동력에 차질이 생기게 될 우려가 있었다.


고심하던 문 대통령은 당시 80% 근처를 오르내리던 자신의 지지율을 바탕으로 6월 13일 김 공정거래위원장의 임명을 강행했다.


이에 한국당은 “협치 포기선언”, “좌시할 수 없는 폭거”등으로 문 대통령을 힐난했지만 한발 앞서 반발기조를 누그러뜨린 국민의당은 “국회청문보고서 채택 없는 공직후보자 임명 강행은 이번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 정도로 넘어갔다. 사실상 야당으로서의 본분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후 18일 진행된 강 외교부장관 임명도 문 대통령이 비슷하게 강행하면서 국민의당도 다소 대응 온도를 높이는 모습을 나타냈지만 야권 전체가 들끓는 분위기 탓이 강했다.



동생 다룰 줄 아는 형님 민주당, 적극적 손 내밀기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국민의당 스스로가 국정운영에 힘을 실어주길 바라는 지지기반 호남의 민심을 고려해 문 대통령의 행보를 막지 않았다면 이후부터는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국민의당을 컨트롤하는 움직임을 취했다.


여당 민주당과 제1야당 한국당 사이에 낀 국민의당이 40석이라는 절묘한 숫자로 캐스팅보터 입지를 다지게 되면서 민주당은 국정운영을 위해 이를 컨트롤 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 상황이었다.


민주당은 대선기간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씨의 취업특혜 의혹을 제보한 것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며 국민의당을 고소·고발 조치했고 사상초유의 위기를 맞은 국민의당은 민주당과의 관계가 경색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당근과 채찍 전략을 절묘하게 구사했다. 제보조작 의혹으로 국민의당을 비판하며 압박해 국민의당의 힘이 빠지는 상태가 되자 곧장 손을 내밀어 끌어당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영수회담에서 국민의당 박주선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선거 전의 일은 모두 잊자’며 협치를 제안했다. 추가경정예산안 처리에 캐스팅보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익일인 20일 박 위원장은 청와대와 여당에게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고, 이용호 정책위의장도 “협상, 협의에도 골든타임이 있다”며 추경합의를 촉구했다.


‘형님 날 내버려 두시오!’ 국민의당의 반격…그러나 ‘제자리 걸음’


문준용 제보조작 사건 이후 국민의당이 민주당에 종속된 것처럼 판이 굳어져 가자 국민의당은 속국의 독립선언처럼 재차 탈(脫)민주당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안철수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부터다. 양당은 “더 이상 형제정당이 아니다”, “누구 맘대로 형제인가”라며 갈라설 것처럼 으르렁댔다.


이른바 ‘잊혀진 남자’로 불릴 만큼 국회 계류기간이 길었던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인준안 부결 사태 때문이었다. 김 후보자의 인준안은 무한계류 끝에 9월 11일 찬반 표결에 부쳐졌지만 2표 차이로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이는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이 반대표를 대거 투척한 결과로 분석됐다.


다만 민주당의 어르기에 곧장 아우의 위치로 되돌아갔다. 김이수 부결 사태로 위기의식을 느낀 민주당이 국민의당 박지원·손금주·이용주 의원 등에게 대선과정서 제기했던 고소·고발 10여건을 취하해주면서 김명수 대법원장 국회표결을 성공적으로 이끈 모양새가 나타난 것.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뒷거래”, “전형적 야합”, “매수행위”라고 비난세례를 퍼부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형제의 따뜻한 연말…‘호남 SOC’ 만찬


이러한 호남 형제드라마의 최신작은 ‘호남 SOC’ 예산 나눠먹기다. 2018년도 예산안이 12월 5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78, 찬성 160, 반대 15, 기권3명’으로 가결된 가운데 도로·철도 등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이 1조3000억원 증가하면서 민주당과 국민의당 지지기반지역인 호남지역 예산이 크게 늘어난 것.


한국당은 국민의당이 “민주당에 굴욕적으로 무릎 꿇은 것”, “추악한 뒷거래를 통해 수적우위를 앞세운 것” 등으로 표현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한 발 더 나아가 ▲개헌안 마련과 선거제도 개편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개헌 추진▲ 자체단체장의 체육단체장 겸임 금지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 처리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 처리에 합의하기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향후 정국에서도 끈끈한 공조를 이어갈 것임을 시사했다.


해당 내용은 민주당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와 국민의당 권은희 원내수석부대표가 주고받은 카카오톡 메시지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찍혀 복수 언론을 통해 공개 된 것으로. 이 때문에 ‘이면 합의’ 논란이 크게 번지기도 했다.


형제의 애증 드라마…그들은 어떻게 찰떡이 되었나?


한 때 국민의당은 캐스팅보터로서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그 가치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됐으나, 사실상 올 한해 ‘캐스팅보트’의 존재로 가장 이득을 본 것은 민주당으로 평가되고 있다. 검술에 기예가 절륜한 칼잡이의 칼은 사실 칼잡이에게 주는 이득보다 칼잡이를 다루는 군주에게 더 큰 이득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결국 금년 정치권은 무예는 별 볼일 없어도 지략과 재력이 뛰어난 군주가 채찍과 당근으로 칼잡이를 능숙하게 다뤄 전국을 재패한 모양새가 됐다. 어쩌면 칼잡이에게도 군주와 대등한 위치에 오르는 것 보다 그의 오른팔이 되어 등 따숩고 배부른 한 해를 보낸 것이 더 가치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칼잡이도 계속 군주의 오른팔로 살아갈 것이냐 또 하나의 군주가 될 것이냐에 대한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호남을 매개로 내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까지 민주당과 공조를 잇는 것이 배곯지 않고 살아가는 묘수라고 보는 호남계 의원들이 있는 반면, 대권을 노리기 위해서 문 대통령의 대항마로서 자리 잡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보는 안철수 대표간의 반목이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국민의당이 친안과 호남계 반안이 이혼절차를 밟는다면 그것은 사실상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태생적인 역학관계가 그린 나비효과일 수도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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