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연히 달라진 대통령의 대처…‘해경 대응 여전히 미숙’

[스페셜경제=박고은 기자]‘대통령만 바뀌었을 뿐인데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대통령을 잘 뽑으니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네티즌의 반응이 최근 영흥대교 낚시배 전복사고를 겪으면서 새삼 실감난다.


전(前) 정권에 대한 국민적 ‘물갈이 태풍’이 거셌기 때문이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적 위급 상황에서는 늘 신속한 지휘와 기민한 대응을 보여주면서 전(前) 정권과 차별화된 역할과 기능이 확대된 점을 보여줬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일명 ‘세월호 학습효과’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하드웨어만 바뀌었을 뿐 소프트웨어는 바뀌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정부라는 껍데기를 벗기니 아직 정신 못 차린 해양경찰청의 민낯이 그대로 나왔기 때문이다. 1분1초가 급한 상황에 골든타임이 지나고서 현장 도착한 점이나 부실한 장비 등 해상안전 시스템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재난구조 지시와 피해자 중심 지원, 현장 중심 대응에 무게를 두고 있어 전(前) 정부보다 진일보 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세월호와 비교되는 문재인 정부의 영흥도 낚시배 사고 대응에 대해 들여다봤다.


해상 사고 문제는 ‘되돌이표’…변한 것은 무엇인가


세월호 비해 현장 도착 시간?대통령 보고 시간 단축


지난 3일 인천 옹진군 영흥도 영흥대교 주변 해상에서 22명이 탑승한 낚시배(9.77t)와 유조선(336t)이 충돌하면서 낚시배가 전복, 승객 22명 가운데 13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다.


출항 6분만에 일어난 이번 사고는 수로가 좁고 평소 물살이 거세 인명피해를 줄이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유조선이 낚시배의 측후면을 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기시감이라는 말이 있다. 데자뷰라고도 하는데 인천 낚시배 사고를 보면 세월호 참사가 겹쳐 보인다. 세월호 참사 당시 대형참사를 막지도, 구조를 제대로 하지 못한 죄로 해체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해양경찰청은 다시 부활했다. 제64주년 ‘해양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세월호를 5번 언급하며 ‘해경의 분골쇄신’을 주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당부가 무색해질 만큼 인천 낚시배 사고를 통해 해양 안전 시스템에 구멍이 뚫려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최초 신고 접수는 6시 5분으로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영흥파출소에 출동 명령이 내려졌다. 출동 지시에 4분, 준비에 13분, 이동에 16분을 사용해 사고 발생 37분 만인 6시 42분 영흥파출소 구조대가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계류장에 도착하니 주위에 민간선박 7척이 계류돼 즉각 출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소방서 긴급출동 차량이 주변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출동 하지 못한 것과 같다.


특수 구조대 경우에는 야간 운항이 가능한 신형 구조함은 고장나 있었고 구형 구조함은 가동 중이었지만 기상 상황 등을 고려했을 경우 운항이 어렵다고 판단, 육상으로 50km 이동한 뒤 민간선박을 타고서야 현장에 도착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160여분이 걸렸던 것에 비해서는 단축된 시간이겠지만 세월호 보다 훨씬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인명구조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박근혜 정부와 무엇이 달랐나


이처럼 분명 사고 대응에 대한 문제점은 있지만 전(前) 정부보다 진일보 했다는 평이 전반적이다.


박근혜 정부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재난컨트롤타워로서 상황통제와 빠른 대처, 신속한 정보 전달 그리고 사고에 대한 책임·사과를 분명히 한 점에서 박근혜 정부보다 좋아졌다는 말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사고 발생 56분이 지난 오전 7시1분 위기관리 비서관에게 1차 보고를 받고 즉각 “해경 현장 지휘관의 지휘하에 해경과 해군 등이 합심해 구조작전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지시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현 상황과 관련, 두 차례의 전화보고와 한 차례의 서면보고를 받았다. 이후 9시25분 위기관리센터에 직접 도착, 해경·행안부·세종상황실 등을 화상으로 연결해 상세보고를 받았다. 무엇보다 눈길이 가는 것은 피해자의 의료조치는 물론 신원 파악된 희생자 가족에게 연락을 취하고, 심리적 안정 지원 등을 조치할 것, 현장 구조작전에 관련 한치의 의구심이 들지 않도록 언론에 공개할 것을 지시한 점이다. 현장 중심의 대응 외에도 현장에서 미처 챙길 수 없는 부분에서의 지시였다. 문 대통령의 ‘사람이 먼저다’라는 국정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박근혜 정부 당시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등 294명 탑승객의 사망, 10명이 실종됐을 때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중앙재난대책본부(이하 중대본)의 재난대응체계로 인해 온 국민은 분노해야 했다. 가장 기본적인 탑승자 수도 판단하지 못해 승선인원 477명에서 459명, 462명, 475명, 476명으로 계속 번복됐고, 구조자 수도 179명에서 174명으로 바뀌는 등 승선인원, 구조자 집계에 소홀한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승선자 명단에 없는 사람이 사망자로 발견되기까지 했다. 구조 현장에서도 중대본을 중심으로 해경, 해군 등 관계기관의 컨트롤타워의 기능은 커녕 손발조차 맞추지 못했다. 거기에 중대본과 해경의 정보전달이 이원화돼 혼란만 야기시켰다.


특히 사고의 안타까움만을 느꼈던 국민들이 ‘이게 나라냐’고 분노했던 시점은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발언 때문일 것이다. 사고 101분만에 선체가 완전히 침몰되고도 한참 뒤인 5시 15분 중대본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보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이라는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발언하면서 ‘대체 지금까지 무엇을 했나’라는 의구심을 들게 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참사를 대하는 자세…朴, 눈물 VS 文, 묵념


세월호 당시 박 대통령은 참사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참사 관련 비판 여론이 과열되자 참사 13일 후인 4월 29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사고를 예방하지 못하고 초동대응과 수습이 미흡했던 데 대해 뭐라 사죄를 드려야 그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 받을 수 있을지 가슴이 아프다”고 밝히기만 할 뿐이었다.


유가족들은 “박 대통령은 몇몇 국무위원만이 국민인가. 비공개 사과,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비판 여론이 더욱 확산되던 5월이 되어서야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를 통해 생존자와 피해자들을 돕다 숨진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다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유가족들의 요구 사항에 대한 답변 뿐 아니라 무엇보다 실종자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어 잠재울 수 없을 정도로 비판은 계속됐다.


이와 달리 문 대통령은 사고 다음날인 4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 비서관·보좌관 회의 전 청와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제안으로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을 한 뒤 “구조하지 못한 것은 결국 국가 책임”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국민 생명과 안전에 관한 국가의 책임은 무한책임”이라며 “수습이 끝나면 낚시 인구의 안전 관리에 관해 제도와 시스템에서 개선하거나 보완할 점이 없는지 점검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부의 위기관리 시스템이 개선된 것 외에도 대통령의 인명 피해 사고를 대하는 자세와 인식이 확연히 달라졌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일명 ‘세월호 학습효과’가 발휘됐다고 분석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 정부 차원에서의 사과와 진상규명을 우선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선봉을 당시 문재인 의원이 섰기 때문에 신속한 재난구조와 피해자 중심 지원, 현장 중심 대응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듯 국정 최고 지도자가 재난 상황의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신뢰와 국가?정부의 존재 이유를 되새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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