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구실 제대로 못하고 참패’…‘본인 지역구 수성’ 책임론↑


[스페셜경제=김은배 기자]무리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며 바쳐지는 고기만 먹던 사자가 왕좌에서 내쫒기면서 반년 넘게 배만 곯다가 한 해 가장 큰 사냥에서 조차 먹잇감을 강탈당하고 말았다. 여당생활 9년만에 야권으로 내쳐진 자유한국당 얘기다.


한국당은 2018년도 예산안 처리과정에서 시종일관 민주당과 국민의당에 끌려 다녔으며 막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되는 법인세법조차 수성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100여명의 의원이라는 적지 않은 군세로 본회의장에 입장했음에도 모든 표결에 보이콧을 놓은 탓이다.


한국당이 본회의장에서 보여준 성과(?)는 정우택 대표를 위시한 60여명이 국회의장석을 포위하고 성토의 장을 만든 것이 거의 유일했다. 실질적인 성과 없이 빈 수레가 요란하기만 했던 퍼포먼스라는 비아냥만이 남았다.


반면, 민주당은 호남지역 SOC 예산 등으로 국민의당을 매혹시켰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를 포함한 예산안 국회 본회의 통과 하루 전인 4일 여야3당 논의에 앞서 30년 지기로 알려진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와 조찬을 하며 물밑작업을 진행했고, 이는 실제 표결로 이어져 정부원안에 가까운 예산안을 통과시키며 한국당을 상대로 압승을 거뒀다. 특히 통과 된 예산안에서 통상 4000억 수준을 넘지 않던 SOC 예산이 이례적으로 1조3000억이 오르면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성대한 예산 만찬을 나눠먹게 됐다.


여야3당 중 한국당만 멀찌감치 구경하며 입맛만 다시게 된 것은 9년간 편안히 왕좌에 앉았던 맹수가 야생에서의 생존법을 잃은 탓이다. 마침 한국당은 원내대표 선거가 오는 12일로 예정 돼있다. 당 내부에선 이미 정우택 원내대표의 무능함을 성토하는 목소리에 야(野)성이 있는 원내대표의 필요성을 부르짖는 염원이 섞여들고 있다. 이에 <스페셜경제>는 야생 적응 실패로 아사 직전에 쳐한 한국당이 쳐한 현 상황을 진단하고 향후 활로를 전망해봤다.



막을 것도 못 막은 ‘법인세법’ 정우택 무능 질타세례


임박한 원내대표 선거 野성 피력 열전 호랑이 누구?


2018년도 예산안이 지난 5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78명 중 찬성 160표, 반대 15표, 기권 3표로 가결됐다.


예산안의 정부 총지출은 428조8339억원이다. 액면가만 보면 당초 정부안인 429조에 비해 1375억원 줄어든 것이지만, 내용물을 보면 당초 정부안에서 4조3251억원이 깎이고 새롭게 4조1876억원이 증액된 것이다. 각 당의 이해관계에 의해 전체 예산의 1.9%에 해당하는 8조5127억원이 조정됐다는 얘기다.


주목해서 볼 점은 도로·철도 등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이 1조3000억원 증가했다는 것인데 호남지역 SOC 예산이 크게 늘면서 호남을 기반으로 한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이해관계가 정확히 일치하는 포인트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당으로부터 ‘국민의당은 위장야당’이라느니 ‘양당이 뒷거래 야합을 한다’는 등의 비난이 쇄도했던 것은 이에 대한 방증이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민주당은 국민의당의 니즈(needs. 필요성)를 충족시키는 제안을 했고 국민의당은 이를 받아들여 손을 맞잡고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한국당은 닭 쫒던 개 신세를 면치 못했다.


정우택 ‘본인 지역구 수성’ 한국당 참패…책임론 과열


물론 충북 청주 상당구를 지역구로 둔 정우택 원내대표는 오송-청주공항 연결도로에 대한 93억원 증액으로 자신의 지역구만은 확실하게 지켜낸 모양새지만 한국당 전체로 봤을 땐 그야말로 지난 대선패배를 뛰어넘는 한 편의 처절한 완패 드라마를 썼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당 내부에선 정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정 원내대표의 무능함을 꼬집는 성토의 목소리가 봇물을 이뤘다.


정 원내대표 입장에선 억울한 모양새다. 그는 본회의 직후 “일부 언론이 우리가 얻은 것이 없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석수도 모자라고 힘도 없어 허망하고 무기력하게 통과를 바라만 봤다”고 의석수 탓을 하기도 하고 “116석 가진 정당(한국당)이 본 회의를 참석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본 회의를 (정세균 국회의장이) 연 것은 국회의장의 실책”이라고 책임을 정세균 의장에게 돌리기도 하면서 항변했다.


다만, 한국당 내부의 불만을 불식시키기엔 많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초 정 원내대표를 향한 당 내부의 불만은 ‘협상력 부족’에 대한 부분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산안 가결 전일이자 민주당-한국당-국민의당 여야3당간의 예산안 잠정 합의안을 도출한 4일부터 이같은 불만이 터져나온 것으로 관측됐다.


정 원내대표는 잠정합의안에 공무원증원과 법인세 부분에 대해 ‘유보’라는 입장을 넣는 데 만족했는데 국회법에 따르면 의원 50인의 동의로도 예산안의 본회의 상정은 충분하고 잠정합의안에서 국민의당이 민주당에 동의한 이상 양당 의석수 합인 160석이 과반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본회의 상정 전부터 예산안은 이미 무난한 가결이 예상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4일은 물론 예산안 상정 당일인 5일까지 수차례 비공개 의총에서 이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5일 의총에선 다수 의원들이 3당 원내대표 잠정합의문을 원천 무효화해야 한다든가, 본회의 참석을 하지 말아야 한다든가 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져 나왔고 필리버스터가 거론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정 원내대표를 향해 직접 “물러나라”고 언성을 높이는 의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막을 수 있었던 법인세법, 원내사령탑 전략부족?


이러한 불만은 공무원 증원과 더불어 한국당이 핵심적으로 반대한 법인세법 개정안에 대해 ‘막을 수 있었는데도 못 막았다’는 일부 언론의 평가가 널리 알려지며 정점을 찍었다.


이날 본회의는 재적의원 298명 가운데 177명이 참여했으며 법인세법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들은 133명밖에 되지 않았다. 예산부수법안이 재적의원 과반 출석상태에서의 과반찬성으로 통과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반대 33표와 기권11표를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당 전원이 참석했다면 이를 의식한 국민의당 등이 찬성표를 좀 더 끌어냈을 여지도 있지만 한국당 전원이 반대표를 던질 경우 쉽게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그림이 그려졌던 건 사실이다.


이에 한국당 내부에선 전투력, 협상력 등을 포괄한 의미를 지닌 야(野)성이 강한 후보에 대한 갈망이 어느 때보다 진한 상황이 됐다.


특히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공조로 재미를 톡톡히 본 뒤인데다, 국민의당이 민주당 측에 협조하며 반대급부로 얻어낸 선거구제개편과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같은 부분에 양당이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 때문에 ‘또다시 한국당은 무력하게 먹잇감을 강탈당하고 말 것인가?’ 라는 내부의 우려감이 일파만파 확장되고 있다.


아울러 선거구제 개편 및 공수처를 수비해내지 못한다면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시쳇말로 쪽박을 차는 수가 있다. 정치권에서 아무리 한국당을 종이호랑이에 빗대기로서니 지금은 116석으로 덩치라도 크니 맹수 취급이라도 받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강제 다이어트라도 하는 날엔 초식야당 취급을 받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당, 연쇄패배 위기 ‘야성 필요성’ 절실


한국당의 원내대표 경선일은 12일로 상당히 임박해 있다. 현재 출마를 선언했거나 선언이 확실 시 되는 인물들은 김성태, 홍문종, 유기준, 이주영, 한선교, 조경태 의원 등이다.


김성태 의원은 당권을 쥐고 있는 홍준표 대표와 과거 비박계 수장으로 불렸으며 최근 복당한 김무성 전 대표의 측근으로 이들의 지원이 예상된다. 김 의원은 새누리당 시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 국면에서 최순실 국조특위(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청문회 출석을 거부하는 최순실을 찾아 그가 수감 된 구치소까지 찾아들어간 바 있다. 현재는 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의 정치보복을 막겠다며 설치한 정치보복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홍문종·유기준 의원은 과거 친박계 핵심으로 꼽히던 인물들로 홍 대표 집권이후 혁신의 일환으로 진행 된 친박청산으로 다소 힘이 빠진 상태다. 아울러 과거 여당생활의 핵심 인물들로 대여투쟁 능력에 대한 기대감이 낮게 평가되고 있다.


6일 단일화에 성공한 한선교 의원은 당초 단일화에 합의한 이주영·조경태 의원과 함께 최근 한국당이 친박청산에 사활을 건 홍 대표와 이에 와해위기에 처한 친박계의 내전양상을 띈 것을 십분 활용해 ‘중도파’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나왔다.


다만 이들은 과거 범(凡)친박계로 분류 되 온 이력이 있다. 이 의원은 박근혜 정권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직을 맡은 바 있고 최근엔 친박계 초선의원 모임인 ‘새벽’이 이 의원의 출마를 독려했었다. 조경태 의원도 민주당에서 넘어왔다고는 하나 이 과정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누나’라고 부를 만큼 측근으로 분류됐던 윤상현 의원이 이를 물밑에서 도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른바 중도파 대표선수가 된 한선교 의원은 새누리당 시절인 작년 8·9 전대 현장에 후보로 서서 “나는 천막당사 정신을 갖고 있는 원조 친박”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을) 끝까지 지킬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다.


물론 그는 지날 달 28일 원내대표선거 출마 선언에서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당일 체육관 현장 투표에서는 9,000여 명의 대의원 가운데 83표를 얻는 데 그쳤으므로 친박으로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중도파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명분이 충분할 수도 있다.


친박 홍문종 의원은 한선교 의원이 단일화에 성공하던 날 한 발 앞서 cpbc 가톨릭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김혜영 입니다’에 나와 “과연 그분들이 중립이었던가. 지금 그렇게 생각하면 글쎄”라고 비꽜다.


그는 “조경태 후보 같은 경우는 중립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민주당에서 오셨다”라면서도 “두 분(한선교·이주영)은 무슨 계파가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싶다”고 지적했다.


아사(餓死)직전의 상태지만 한국당은 과거 왕좌를 차지했던 긍지만큼은 버리지 못한 모양새다. 급박한 생존의 기로에서도 ‘머리가 될 것이냐 꼬리가 될 것이냐’의 이해타산적 투쟁본능 만큼은 아직 죽지 않았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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