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한산성’의 역사인식부재와 한·중 관계정상화 유감

장순휘 정치학박사 / 기사승인 : 2017-11-10 21: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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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경제=장순휘 정치학박사]영화 ‘남한산성’은 시대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영화의 장르는 역사물로서 소재는 병자호란(1636년12월28일~1637년2월24일)으로 조선과 청(淸)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청의 홍타이지가 명(明)을 정벌하기 전에 배후의 안전을 확보할 목적으로 조선을 침략하였고, 인조의 조정이 남한산성에서 항전하였으나 청군의 포위전술에 무조건 항복을 한 치욕의 패전이었다.


병자호란 9년 전 정묘호란(1627년 1월~3월)이 있었다. 정묘호란은 후금(여진족)이 친명사대외교정책의 조선에 대한 침략으로 교역의 활로를 열고자했던 전쟁이었다. 광해군은 후금이 만주에서 강성해지는 것을 인식하고 현명한 외교정책으로 전란을 피하였으나 당시 청의 명정벌을 위한 남진정책은 대세였기에 조선으로서는 전란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1623년 인조반정으로 즉위한 인조는 친명배금(親明排金)정책을 노골화하다가 후금의 견제를 받았으며, 1624년 이괄의 난을 일으킨 주모자들이 후금으로 투항하여 조선침략을 종용함으로써 발생한 점에서 내란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는 사실(史實)이 있다.


정묘호란(1627년)으로 후금과는 ‘형제지맹’관계를 맺었으나 강성해진 후금은 1632년 조선에 ‘군신지의(君臣之儀)’를 강요하였다. 이때 인조의 조정에서는 최명길의 화친론(和親論)과 김상헌의 척화론(斥和論)으로 국론이 분열되어 외교정책의 일관성을 갖지 못했다.


기울어져가는 명나라를 믿고있던 조선은 척화론을 내세워 후금을 적대시하다가 1636년 4월(음력)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황제에 오른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전쟁의 빌미를 잡힌 안보외교의 실패로도 분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전쟁은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전형적인 불법침략전쟁으로 우리의 입장에서는 오랑캐인 청에 대하여 척화하는 것은 국가적 대의명분이었다. 결과적으로 병자호란은 인조가 엄동설한 중 1월 30일(음) 남한산성에서 나와서 청 태종에게 ‘3배9고두례(三拜九叩頭禮)’로 항복한 패전이었다.


인조는 목숨을 부지하는 대신 조선은 일방적으로 11조항의 화약(和約)을 접수해야하는 치욕을 당했다. 그 화약 11조항에는 형제관계에서 군신관계로, 명과 단교, 왕족 인질, 명정벌시 원군파견, 귀족간 혼인, 세폐(歲幣) 상납, 백성포로 60만명 심양이송 등 주권박탈과 내정간섭의 비통한 요구가 담겨있다.


‘역사영화’로써의 관점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인식에 근거한 관점에서 영화 ‘남한산성’의 문제점을 몇 가지 지적하자면 첫째, 병자호란의 역사적 배경을 외면하고 누락한 점이다. 영화 ‘남한산성’은 ‘프롤로그’에서 당시 역사적인 사실에 입각하여 작품의 배경을 객관적으로 전제한 후 시나리오가 전개되었어야한다.


당시 청의 침략은 인접국가에 대한 패권주의적 도발행위를 분명히 해야했다. 영상의 시작이 피해국인 조선의 무기력한 패배분위기보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오랑캐를 섬멸하겠다는 애국적 저항의식에서 출발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시나리오 작가나 제작감독은 역사에 대한 시대적 인식을 좀 더 심도있게 고민해야만 하는 책임이 있다.


둘째, 왕명에 따른 근왕군의 군사적 반격동향을 무저항으로 왜곡한 점이다. 영화에서 근왕병이 전혀 오지않은 것으로 묘사가 되는데 사실적으로 감원감사 조정호가 7000여명, 원주 권정길이 1000여명, 함경감사 민성휘 7000여명, 충청감사 정세규, 전라감사 이시방은 6000여명, 화엄사의 승병 200여명 등 많은 근왕병이 진격하여 광교산전투, 김화전투, 쌍령전투, 강화부전투 등 강력한 저항을 하였다. 결코 청군이 무혈입성하거나 무저항으로 전승한 것은 아니다.


셋째, 국가의 존망이 더 소중하다는 애국적 사회가치를 폄훼한 점을 거론할 수 있다. 한 대장장이의 무용담을 삽입하여 당시 권력층의 무능함을 비웃었고, 한 여아의 안전을 찾아주는 것이 국가의 존망을 지키려는 전쟁보다 의미있다는 메타포를 복선(伏線)으로 전개하여 무정부주의를 주장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민들레가 피는 봄을 이미지화하여 백성을 위한 굴욕적 평화가 국가를 위한 전쟁보다 낫다는 불편한 영상이 곳곳에 있었다. 전투장면에서 청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군사들과 백성들의 모습과 당시 조정신료들의 탁상공론을 비교하면서 무능한 왕과 대신들의 위기관리능력을 비판하기도 했으나 그 모든 비극의 제공자는 우리가 아니라 침략자 청이라는 점과 적에 대한 피해자의 적개심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 ‘남한산성’은 역사영화로서 함의되어야 할 역사인식의 부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작품이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면 개봉 후 사회적인 영향력에 대한 후유증은 고스란히 관객인 국민의 몫이 된다.


순수한 관객은 영화작품의 상업성, 흥행성에 중점을 두기보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문화예술적 창작성이 함축된 영상작품이기를 기대한다. 자칫 국가라는 운명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모든 애국적 행위가 무용지물로 폄훼되는 허무주의적 국민정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중국과의 관계정상화 협의과정에서 밝힌 ‘3불정책’은 마치 영화 ‘남한산성’의 속편을 보는 듯 했다. 중국의 외교적 겁박에 대하여 ‘화약 3조’를 받치며 국가의 자존심을 내팽개친 것은 아닌지 국민적 의구심을 갖게한다. 근본적으로 사드배치는 한미동맹에 근거하여 북한 핵ㆍ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주한미군의 전력을 보호하기위한 방어시스템으로서 한국의 책임이 아닌 미국의 권한인 것이다. 중국의 사드보복으로 20여조원 이상의 피해를 받고도 사과 문구도 없이 사드 추가배치 배제, 미국의 미사일 방어(MD)체계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의 거부를 수용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북한의 점증하는 핵·미사일 위협은 추가적인 사드배치를 요구하는 상황 전개가 도외시되었고, MD불참은 동맹불신의 단초가 될 수 있기에 경솔한 합의가 아닌가싶다. 물론 한·미·일 군사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은 중국의 입장을 수용한 외교안보전략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전자의 2개 조항은 국익의 관점에서 매우 불리한 합의를 한 것으로 지적하고자 한다. 이 외교합의가 자칫 남한산성에서 항전을 포기한 삼전도의 굴욕속편이 안 되는 길은 최첨단 소강군(少强軍)을 육성하여 자주국방의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는 것이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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